참으로 오랜만에 고려신학대학원의 채플 강단에서 이보민 박사를 만났다. 졸업 후 아마도 처음인 듯 세월은 우리의 외모를 너무나도 심하게 바꾸어 놓았지만(3,40대가 6,70대로) 속사람은 여전히 30여 년 전의 그 사람들이었다. 학기말을 앞둔 11월 6일 정오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는 신대원 재학생들과 교수들이 다 그의 제자로 돌아가 속된 말로 한방 얻어터지고도 속이 시원한 그의 설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 채플이 드려지고 있다.

김순성 원장은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선생의 선생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시겠다고 소개를 했다. 학생들은 그야말로 할아버지 교수의 설교를 듣게 된 것이다. 강단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모습은 옛날 꽃미남의 청년이 아니었다. 2년 전 심장마비가 와서 심장혈관을 뚫는 시술을 한 이후 회복이 늦어져 72세인데도 더 나이들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귀도 어둡고 말도 어눌하여 보였다.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염려하였는데 아니었다. 강단에 선 그는 어디서 오는 힘을 받았는지 우렁찬 목소리로 설교를 시작했다.

▲ 설교하는 이보민 박사

이보민 박사가 선택한 성경 본문은 마태복음 7:15-27절이었고 제목은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였다. 처음은 그야말로 평범한 성경해석을 해 나갔다. “주님은 제자들과는 저 멀리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향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다. 거짓 선지자는 제자인 우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주님은 거짓 선지자에 대해 정의를 내리신다. 말씀을 듣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다. 정말 우리가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뭔가를 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뭔가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실천하는 삶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도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는 삶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척은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다. 반석이 아니라 모래 위에 그럴듯한 집을 지은 것이다. 이런 자가 거짓 선지자요 거짓 선생이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호통하신다.

이 본문은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 예수께서 저기를 가리켜 말씀하시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이 바로 나였더라는 것이다. 설교를 할 때 마치 다 실천하고 있는 듯 말하지만, 실상은 나는 엉뚱한 이익을 챙기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는 않으니 그 거짓 선생이 내가 아니고 누구이던가? 우리는 부단히 내가 거짓 선생인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 주께서 저기 어디를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왜 내 마음이 뜨끔거리는 것일까? 그것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인가 내가 거짓 선생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종점이 거짓 선생이 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부디 우리 모두는 다 선생이 된 자로 이런 거짓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기를 날마다 각성하여 살아야 할 것이다.“

김원장은 통성기도를 하기를 원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말씀이 폐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칼에 찔리면 피가 나서 사람이 죽지만, 말씀에 찔리면 눈물이 나고 사람은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기념사진

교수들은 이박사와 함께 점심식사를 같이했다. 자연스레 학창 시절로 돌아가 그날들의 에피소드들을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박사 역시 그때의 이야기 하나를 보따리 속에서 꺼집어냈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가니까 칠판에 이런 글이 쓰였어요. ‘기도가 필요 없는 단 한 사람, 이보민이 글이 왜 쓰여 있었느냐 하면 제가 강의를 하다가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마나한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강조하기 위해 '이런'에서 탁자를 쾅 쳤는데 아마 그 학생이 자다가 마침 그 때에 깨어서 앞에 말은 못 듣고 '기도는 안 하는 것이 좋다'는 말만 듣고 그 글을 썼던 것입니다.” 하여 온 좌석은 박장대소하였다. 자다가 깨어보니 교수님이 '기도는 안하는 것이 좋다' 했으니 그 학생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 신대원 교정(크게 보세요)

신대원 입구에서 바라보니 학교에는 온통 가을빛이 내려와 있었다. 곱게 단풍이 들어 참으로 아름다웠다. 비록 병들고 약하여 불려감을 당할 때가 가까웠을지라도 마지막 단풍같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인생으로서도 선생으로서도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되내며 고속도로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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