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1() 오후2시부터 26회 정암 박윤선을 기억하는 제 26회 정암신학강좌가 목동 지구촌 교회(조봉희 목사)에서 개혁교회와 신앙교육이란 주제로 열렸다. 정암신학강좌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정암신학연구소)와 그 총동문회가 주최하여 합신의 현역학생들과 동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신학과 생활을 이야기 하는 자리이다.

▲ 설교 박영선 목사

1부 개회 예배에서 설교자인 박영선 목사(남포교회)는 정암이 죽도록 기도하고 공부하라는 시대적 요구는 사람이 부족했던 시대에 애국과 교회 사랑의 표상이라면서, 오늘날에 정암의 요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조용히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1:1-14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말씀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배신당하고 죽으셨다. 정암의 싸움이 있었다면 오늘 우리 시대의 싸움이 우리 각자에게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다가 아닌 것으로 죽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육신 즉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의 연장성이다. 이런 하나님의 방법에서 부활이 나온다. 우리는 자기의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문답해야 한다. 그때 그 시대가 아닌 우리의 시대에 진실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2부 강좌는 개혁교회와 신앙교육이란 주제로 진행되면서 세 강좌가 있었다. 첫째는 안상혁교수(합신 역사신학)가 제네바교회와 신앙교육에 대해서, 둘째는 박상봉 교수(합신 역사신학)가 취리히 교회와 신앙교육에 대해서, 셋째는 이남규 교수(합신 조직신학)가 팔츠(하이델베르그) 교회와 신앙교육에 대해서 강의를 하였다. 각 지역교회들의 신앙교육서(교리문답서)를 중심으로 성도들과 그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을 어떻게 했는가를 살펴보면서 현실적인 적용점을 찾았다.

 

▲ 안상혁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제네바 교회와 신앙교육: 칼뱅의 제1,2차 신앙교육서를 중심으로/ 안상혁교수

칼빈이 신앙교육서 없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보존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칼뱅은 신앙교육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목적이 무엇인가? 제네바 교회 개혁을 이해 칼뱅이 사용한 신앙교육서의 방법론과 내용, 그리고 특징은 무엇인가? 칼뱅의 신앙교육서를 한국에 적용가능하며 어떻게 적용할수 있을까? 이상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역사적인 배경: 종교개혁은 성직자들에 대한 교육개혁과 같다. 미사의 의식이 아니라 설교가 강조되었기에 설교자를 위한 교육이 강조되었고 교육이 대학에서 철저히 이루어졌다. 제네바 교회도 도시 전체의 개혁을 각 교구단위에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설교자의 수도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의 장애요인이 되었다. 1546년에 이르러서야 목사회가 조직되고 도시 전체의 개혁이 파급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칼뱅은 1536년에 도착해서 이듬해 불어로 신앙교육서를 작성하였다. 목적은 성직자들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구민과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서 작성했다. 3년간 추방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1541년 이듬해에도 역시 2차 신앙교육서를 교리의 일치를 통한 교회의 연합을 위해서 작성했다. 도시의 신앙교육을 위해서 목사와 교사의 직분이 이를 감당했다.

1.2차 신앙교육서의 특징: 1차 신앙교육서는 해설형식이라면 2차 신앙교육서는 문답형식으로 바뀌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본질적으로 같다. 1차 신앙교육서의 특징은 기독교강요의 신학적 주제의 범위가 일치한다. 그리고 루터의 대소요리문답에 영향을 받았다. 이신칭의와 율법의 제 3용법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로마 카톡릭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논박보다는 바른 교리를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신앙교육의 특징으로 삼았다.

2차 신앙교육서(1542)는 스트라스부르크의 영향을 받았고 문답식의 구조를 취했다. 특징은 어린이를 위한 학습효과가 효율성의 측면에서 더 증가하고, 내용의 변화도 있다. 율법을 사도신경 뒤에 배열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나온다. 어린이가 이해하도록 어려운 신학적 주제를 쉽게 대답하도록 배렸다. 예정론은 삭제하였지만 여러 부분에서 이해하도록 했다.

칼뱅의 신앙교육서의 한국교회 적용: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교재로 활용가능하다. 그리고 성경진리의 전체를 가르칠 필요성이 있고, 적용은 유연성 있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목회 사역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설교는 강해설교를 했지만 이를 보완하는 것이 교리의 신앙교육이었다.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이해시킨다.

정암의 하나님의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의 목표를 생각하는 것과 칼뱅이 신앙교육서를 통해서 공교회의 교리적 일치와 연합에 봉사한다는 목표는 다른 차원이 아니다.

 

▲ 박상봉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취리히 교회의 신앙교육/ 박상봉 교수

개혁뿐 아니라 개혁된 교회를 유지 보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신앙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다. 본 강의는 취리히의 개혁자들이 신앙교육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전달했는가에 관심을 가진다.

종교개혁 시대의 문학적인 장르로서 '신앙교육서': 개혁이후에 거짓된 신앙에서 벗어나 신앙생활과 사회 생활의 이상적인 모범을 위한 설득력있는 신앙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신앙고백적 전환을 삶으로 드러내도록 만드는 것에 신앙교육이 중요하였다. 개혁된 교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방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문답식의 형식을 통해서 교육의 효과를 추구하였다.

취리히 교회와 신앙교육: 쯔빙글리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가를 위한 책을 저술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기 자신을 훈련하는 것과 삶의 책임에 대한 세 부분을 말했다. 개혁 이후의 새로운 신앙과 진리 지식에 따라서 살도록 하는 지침이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속에서 이웃과 시대를 섬기도록 했다.

레오 유트는 1532년에 발표된 어린 세대를 위한 신앙교육에 대한 규정에 따라서 대소요리문답과 목회자 교육을 받는 학생을 위한 짧은 신앙문답집을 만들고, 아주 작은 어린이들을 이한 문답들도 만들었다. 가장 먼저 신앙교육서를 만들 인물이다.

하인리히 불링거는 1550년대에 두권의 신앙교육서를 집필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요해와 성인들을 위한 신앙교육서이다. 전자는 신학적인 논쟁을 목회적으로 설명하는 책이고, 후자의 신앙교육서는 레오 유트의 신앙교육서를 대체했다. 7개의 신학적 주제를 다루었다. 블링거는 교회 학교 가정의 신앙교육을 통해서 신앙지식과 경건을 분리시키지 않았고, 연령에 대한 고려도 했다.

취리히 교회의 신앙교육의 실천적 의미는 신앙교육의 목적이 기독교 신앙의 인식과 교리적인 무지에 대한 극복이었다. 오늘날은 다원화된 사회이다. 기독교의 진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신앙적인 원리와 삶의 절대가치를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가정과 교회의 협력과 조화가 필요하다. 오늘날 방식으로 전달하는 좋은 교재 개발이 시급한 과제이다.

 

▲ 이남규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팔츠(하이델베르크)교회와 신앙교육/ 이남규 교수

팔츠 지역 너머 오늘날까지 많은 개혁교회에 영향력이 살아있는 교리문답서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방식으로 교육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역사적 배경과 과정: 루드비히 5세 이후 프리드리히 2세가 선제후가 되면서 개신교입장을 가졌다. 이후 오트하인리히가 선제후가 되면서 그 제후의 그 종교의 아욱스부룩 화의 정신을 따라서 개혁을 가속화했다. 지역 교회 시찰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명 교수를 초청했다. 이후 프리드리히 3세가 집권하면서 멜란히톤의 도움을 받아 개혁을 진행하였다. 루터파보다는 개혁파 입장을 지지한 멜란히톤의 도움으로 순수하 교리를 지키고 보호하려 했다.1561년 나움베르크 회의에서 프리드리히 3세는 아욱스부룩 신앙고백서 수정판도 인정을 받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떡과 잔 아래에 현존한다는 1530년 판을 멜란히톤이 살과 피가 떡과 잔에서 제시된다로 1540년 판에서 수정을 하였다. 프리드리히 3세는 수정판으로 기울었고 이를 공식으로 받게 했기에 개혁파 신앙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한 후에 팔츠 지역의 순수한 신앙을 위해서 바른 교회법과 신앙교육서를 작성하려고 했다. 신앙교육서인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는 우르시누스가 초안을 하고 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확정되었고, 교회법은 올레비아누스가 주도해서 작성했는데, 교회법 전체에 교리문답서의 내용이 흐르고 있다.

필요성과 목적: 교리문답서는 내용이고 교회법은 실천의 방법을 규정한 그릇과 같다. 교리와 예식에서도 하나님의 바른 지식으로 인도되기를 원했다. 교회법이 말하는 교리문답서의 필요는 오류와 불일치 때문이다. 바름과 같음을 만들어 내어야 했다.

팔츠의 신앙교육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과 경외이다. 이것이 소명의식이다. 그런데 팔츠에서의 더 나은 개혁과 젊은이들이 처한 형편을 언급하면서 하나님 경외와 바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교리문답서의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지향점은 바름과 같음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교리문답서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기에 삶 전체의 개혁을 지향하였다. 교회와 학교와 가정이 함께 신앙교육에 참여한다.

▲ 신학 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팔츠 교회법에 나타난 신앙교육: 교회법에서 교리문답서를 활용하는 방식은 낭독하고, 요약 낭독하고, 교리문답설교로 정리한다. 일반 설교에서도 교회법은 교리문답의 삼구분 죄의 비참과 구원과 감사가 있어야 했다. 세례 교육에서 교리문답서의 중요성을 보게 된다. 세례 규정 다음에 교리문답서가 나오고 이어서 성찬이 나온다. 성례를 분리한 것은 유아 세례 이후에 교리문답서의 신앙교육을 이어서 성찬에 참여함을 말한다. 성찬에 있어서도 준비와 자기 살핌에서 교리문답서의 비참과 구원과 감사를 살피도록 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네덜란드와 프랑스, 헝가리 등으로 사용지역이 번져갔다. 현재도 독일과 네덜란드 개혁교회들이 사용한다. 오늘날에 한국교회에 이런 교리문답이 암송, 반복 낭독 그리고 교리문답 설교 등은 적용가능하다. 바른 지식을 통한 경외를 지향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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