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고신교회 안에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그것은 신대원의 위상에 대한 고신인들의 존중심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아직은 일부이긴 하지만 신학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학교가 교회의 중심사역자들을 훈련하는, 교회 내의 핵심기관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또 하나의 고등교육 기관일 뿐이라는 인식이 차츰 퍼져나가고 있다.

고신의 경우 공적 기도에 거의 빠져본 적이 없는 선지학교에 대한 기도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어떤 노회에서는 총회가 상회비를 거두어 신학교를 직접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자는 건의안을 총회에 상정한 일도 있었다. 거기다 1-2년 전부터는 앞으로 큰 어려움이 예상되는 고신대학교를 살리기 위해 신대원 캠퍼스를 팔아 영도캠퍼스로 통합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이런 주장이 지난 총회 때에는 공적인 기관에 의해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어 큰 논란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그 동안 당연히 받아들여 왔던 고려신학대학원의 원장의 연임을 이사회가 아무런 객관적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부결시켜 신대원은 물론 교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신대원 교수들이 만장일치로 추대하고 총장이 제청한 김순성 원장의 연임여부를 다루면서 영적인 권위는 완전히 무시한 채 법적인 권한만 가지고 이런 결의를 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김순성 원장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차원 문제가 아니라 신대원의 위상에 대한 차원의 문제이다. 신대원에 대한 이사들의 인식의 어떠함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이사들은 자신들이 신대원 원장과 대학 총장을 지도하고 지휘하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소위 관료적 권위주의이다. 기독교의 권위는 섬김의 권위이지 주장하는 권위가 아니다.

한 때는 대학총장이 신대원 원장을 임명할 법적 권한이 있다고 해서 임명권을 행사하려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법보다 총회가 신대원의 독립성을 보장한 결의내용이 있고 또 신대원의 존재론적 우월성과 우선순위에 대한 교회들의 인식과 분위기 때문에 그런 시도는 아예 공개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사회가 총회의 이런 결의정신을 무시하고 소위 "법적 권한"을 행사해버렸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지도자들의 신학교의 위상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라면 어떻게 교회 안에서 신학교가 제대로 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학교가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교회의 중심 사역자인 목회자가 과연 제대로 배출될 수 있으며, 목회자들이 교회 안에서 그 중심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우리는 이 문제를 은퇴목사회가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회원이 300여명이나 되는 고신 은퇴목사회의 대표들이 이사장을 만나 원장 연임 부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재심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원로들이 단순히 현 원장의 연임여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신대원의 위상에 대한 이사회의 인식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회가 신학교의 위상을 존중하고 바로 세우지 않으면 교회 자체가 건강하게 설 수 없다. 신학교수들이 탁월한 영적 리더십을 가지고 신학교의 위상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런 위상은 사람에 따라 좌우될 뿐이다. 교회 안에서의 신학교의 중요성과 그 위상은 본질적인 요소이므로 개인이 아닌 교회공동체가 신학교에 대해 그 위상에 맞는 합당한 존중심을 가져야 한다.

목사들이 신학교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신학교 교수들을 귀히 여기고 아껴야 한다. 교인들은 과거처럼 신학교를 위해 공적으로 사적으로 항상 기도함으로 영적인 지원을 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할 곳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신학교 지원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신학교를 튼튼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교회의 미래가 밝아지고 든든히 설 수 있다.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했을 때 벤 작카이라는 이름의 랍비가 디도 장군에게 나아가 모두 파괴하더라도 토라를 가르치는 선지학교만은 남겨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교가 살아남아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신적 전통을 이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선지학교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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