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원호 목사 광주은광교회

사람은 가치비교에 따라 선택과 포기를 합니다. 가치가 많은 것을 얻기 위하여 가치가 적은 것을 포기합니다. 고귀한 것을 위해서는 값싼 것을 포기합니다. 어린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보면 먹고 있던 비스킷 조각은 던져 버립니다. 청소년은 새 컴퓨터나 게임을 보면 어릴 때 갖고 놀던 조립식 장난감은 던져 버립니다. 공부하느라 바빠서 친구 만날 시간이 없던 젊은이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만날 시간은 얼마든지 생깁니다. 사람의 시간과 돈과 열정은 더 가치 있는 것을 향하게 마련입니다.

영광스런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세상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무가치한지 알게 됩니다. 그는 두 가지의 가치를 비교해서 영원한 것을 선택하고 일시적인 것을 포기합니다. 진주를 찾던 상인이나, 보물을 발견한 농부의 이야기는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사람은 환난을 무릅쓰고라도 그 길을 갑니다. 또한 환난중에도 즐거워하게 됩니다(5:3). .

환난이라는 단어와 즐거워한다는 단어는 흥미롭습니다. 환난이라는 단어는 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내듯이 피와 땀과 눈물과 고통을 짜낸다는 뜻입니다. 환난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도록 짓누르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환난입니다. 즐거워한다는 것은 기뻐 날뛰다”, “의기양양해 하다”, 또는 자랑하다는 뜻입니다. 환난이라는 단어와 즐거워한다는 단어는 극과 극의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이 둘은 공존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소망 때문에 공존합니다. 최고의 소망은 최고의 즐거움을 만들어냅니다. 그 즐거움은 환난도 감수하게 만듭니다. 소망은 환난과 즐거움의 연결 고리입니다.

영원한 소망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입니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특별한 행복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높고 고귀한 기쁨입니다. 8:18의 말씀처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영광을 소망하면서 환난의 때에도 춤추며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로마서를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얻습니다. 그런데 롬8: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같은 로마서인데 믿음이 들어갈 자리에 소망이 들어가 있습니다. 믿음을 소망으로 바꾸어 넣어도 뜻이 같다는 말입니다. “오직 믿음을 주장하는 로마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신약에서 소망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책도 로마서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믿음은 곧 소망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곧 소망의 여정입니다. 믿음과 소망은 함께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소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소망의 사람입니다. 믿음 없는 그리스도인은 말이 안 됩니다. 소망 없는 그리스도인도 말이 안 됩니다. 믿음 없는 소망, 소망 없는 믿음은 기독교 신앙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인데도 소망이 없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면 소망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소망을 키우면 믿음도 자랍니다. 영광의 소망을 누릴 때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달려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늘 가치비교를 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바른 소망에 초점을 맞추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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