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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타락상을 고발한다 (4)

한국교회 타락의 주범이 무엇일까? 지난 10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교회 개혁과 갱신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한국교회를 타락시킨 여러 가지 원인들이 지적되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가 두드러지게 지적되었는데, 첫째는 성장주의였고 둘째는 신앙의 보편적인 약화였다. 성장주의가 타락의 주범이란 지적은 토론회 강사로 나선 모든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타락의 주범인 성장주의

교회의 본질적 특성을 변질시키고 훼손하는 악한 사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한국교회의 경우 가장 현실적이고 대표적인 것은 성장주의다. 성장주의가 한국교회에 미친 악영향은 너무나 크다. 그런데 성장주의가 한국교회를 이렇게도 깊이 병들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교회의 성장 자체는 선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교회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부흥과 질적 성장은 물량적 성장에 의해 압도되고 희석돼버렸다. 특히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을 자신들의 공로를 자랑하고 세속적인 명예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성장주의가 교회의 교회됨을 파괴하고 부흥을 왜곡시키며 진정한 성장을 가로막는 악이 되었다.

곧 교회성장운동이 바벨탑운동이 된 것이다. 바벨탑운동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11:4)는 운동이다. 교인들을 많이 모우고 교회당을 크게 짓고 유명해지자는 운동이다.

한국교회가 성장주의에 사로잡힌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7-80년대부터 "많은 교인, 큰 교회당"이 우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전도는 사람 모으기 운동으로 전락했고,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전도를 상업적인 활동으로 여기고 있다. 목회자를 평가하는 교인들의 기준도 교회의 양적인 성장이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속어가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목사들은 자기 목회의 성공과 명예를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성장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교인수를 늘리기 위해 설교나 전도를 장사하듯 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목사나 교회들이 교인수를 과장한다. 더구나 회개도 없고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세례(침례)를 베풀고, 헌신과 충성을 바라며 교회직분을 매매한다. 소위 명예장로, 명예권사(혹은 명칭장로, 명칭권사)”의 임명 등이 그 예들 중 하나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사역"은 말뿐이고 속내는 큰 교회로 성장시켜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유명함에 따라 붙는 것은 권력이다. 일부 교회의 목사들은 교회의 주이시며 동시에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보다 더 큰 영광과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에 대한 신앙고백의 허구

한국교회를 타락시킨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신앙고백의 약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신앙이 희미해지면서 인본주의가 교회를 주름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고백의 기본은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스도가 만주의 주시며 자신의 주시라는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 입으로는 주여, 주여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주되심을 부정한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셨다고 말하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모든 일의 주관자는 자기 자신이다. 주님을 마음의 어느 한 곳에 잘 모셔놓았을 뿐 모든 일은 자신이 결정하고 주관한다. 개인도 교회도 범사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지 않고 사람들의 의견과 주장을 찾아 따른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신앙약화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인본주의, 현세주의, 물질주의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 특히 이것은 교회의 영적 권위를 추락시켜버렸고 신자들은 모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권징이 사라진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교회의 치리회가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을 따라 선악을 분별하려는 의지가 없는데다 영적 분별력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교회의 결정이 신뢰를 받지 못하므로 아무런 권위도 없다. 그래서 목사도 신자들도 교회의 판단과 치리를 믿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치리권을 국가기관에 이양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도, 신자 개인들도 모든 문제를 국가의 사법기관으로 가져간다. 따라서 지금 한국교회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법원의 판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판사들은 교회와 관련된 고소건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재판을 하려면 신학교에 가야겠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다.

심지어 고신총회마저 지난 64회 총회에서 불신법정 고소문제에 대해 부득이한 경우 고소할 수 있다는 종전의 결의에다 부득이한 경우재정과 형사상의 범죄인 경우를 구체화했다. 그러니까 재정적인 범죄나 형사상의 범죄는 교회 치리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사법당국에 가도 된다는 말이다.

사실상 신자들이 불신법정에 소송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풀어버린 것이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범죄들 가운데 형사문제가 아닌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교리나 신학문제가 아닌 경우는 다 재정이나 형사문제가 아닌가? 이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1815-17절과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61-7절에서 교훈한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의이다.

이는 가히 고신 신학의 변질로 여길만한 매우 심각한 결정이다.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겠다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라도 감수하겠다는 고신정신이 이렇게까지 추락해버린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권과 성경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리게 되면 타락은 무저갱(無底坑)에까지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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