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헌옥 목사

세상의 질서유지를 위해 많은 정치형태가 있어왔다. 가장, 족장정치에서 시작하여 군주정치로 이어졌고 어쩌면 왕족을 중심으로 한 독재정치와 다름없는 군주정치가 무너지면서 공화정치가 시작되었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에도 구 한 말 상해임시정부가 임시헌장을 만들었는데 제1장에 민주공화제를 한다고 명시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형태가 자리를 잡아갔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런 가운데 이광수는 신윤리의 중심인 개성이라는 사상과 신정치사상의 중심인 민주주의라는 사상은 실로 야소교리와 자연과학의 양원에서 발한 일류이다.’라고 말해 이 개념은 기독교의 사상이 개입되었음의 가능성이 높다.”고 김명구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 상임연구원)가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민주주의가 새삼 논란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다. 소위 이석기 파문으로 인해 불거진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지하 혁명 조직) 사건으로 인해 법무장관이 헌법재판소에 통진당 해산청구 사건을 제소하여 재판관 9명 중 무려 8명이 찬성함으로서 법률에 의해 당이 해산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들의 주장은 명백하다. 국민들이 지지하는 당은 국민들이 해산하게 하여야지 국가권력이 해산을 명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논리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통진당은 10.3%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는데 이를 어찌하여 헌법기관에서 해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마땅히 국민이 심판하여 해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민주공화제의 정치원리라는 논리다.

서독은 5년간의 심리 끝에 공산당을 해산시켰다. 1953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지지율 2.2%, 의석수 ‘0’의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뒤에야 관 뚜껑에 못질을 했다. 우리 헌재도 2016년 총선에서 우리 사회의 면역능력을 지켜본 뒤 해산 결정을 내렸어도 늦지 않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를 독일 나치즘 사건으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분들의 논리도 무시할 수 없다.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 후 맺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자존심을 구길 대로 구겼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에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내세운 나치스, 즉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이 결성된다.

그리고 1921년 나치스의 당수가 된 아돌프 히틀러는 뛰어난 대중 연설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그는 나치스의 이념인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내세운 독일민족 지상주의, 반유대주의, 반공산주의, 베르사유 조약철폐 등 강력한 국가 건설을 주장하였고, 1932년 총선에서 승리한다.

결국 그는 수상이 되었고 히덴 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과 수상을 겸한 총통이 되어 독재정치를 펴기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로 인한 세계적 폐해는 실로 말할 수가 없었음은 기정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민의에 의한 것이었다. 민주주의 결실로 나치즘이 정치권력을 잡았고 그 결과는 독일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다.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지금도 독일이 사죄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가 미국놈들 하고 붙는 대민족사의 결전기에서우리가 선두에서 저놈들의 모략책동을 분쇄하고 군사적 파열음을 끝내야 하는데, 여기 동지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즉각 전투태세에 들어갈 준비가 됐습니까?”

이석기가 추종자들에게 한 말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 제창 등을 하지 않는 것보다 전쟁이 나면 우리와 함께 할 미국을 때려 부수자는 말은 곧 대한민국을 패망케 하고자 하는 엄청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거기 이석기가 한 말 중 미국 놈들과 붙는 '우리는' 대한민국 편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미국이 혈맹관계에 있는 대한민국을 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석기의 발언에 대해 통진당은 한 번도 잘못되었다는 논평을 내지 않았다. 선긋기도 하지 않았다. 물론 당에서 제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판에서는 적극적인 변호를 했다. 그러므로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리가 더 우세해 보인다. 그리고 국민 60% 이상이 통진당 해산을 지지하였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성경은 민주주의에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필자는 모세를 떠올린다. 신명기 1:19절에서부터 보면 모세는 홍해를 건너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였을 때 이제 일주일이면 들어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은 다 모세 앞으로 모여 나아와서 반대하는 대신 한 가지 안을 제안한다. 그것이 가나안의 정탐이다. 그 이유는 매우 합리적이다. 어느 길로 올라갈 것인지, 어느 성읍으로 올라가야 할 것인지 정탐하자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알아보지도 않고 덜렁 그들의 말을 선히 여겨(1:23) 열두 정탐꾼을 보내게 된다. 백성들의 거의 전부였고 들어보니 그 제안이 그럴듯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열 정탐꾼의 말을 들은 백성들이 낙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므로 그로 인하여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다 광야에서 죽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또한 가나안 정복도 40년이나 지체되었다.

압도적 다수의 민의가 이끌어낸 결과의 한 단면이다. 이는 민주정치의 처절한 실패를 의미한다. 히틀러의 나치즘도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도 모두 다 민주정치에서 나온 실패작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유일무이한 선한 정치형태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민주주의를 찬성하면서도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