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개념과 의의는 기독교의 중심 가치이며 핵심 요소이고 기독교 철학의 기반이다.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

▲ 김영수 장로 고신대 前사무처장 부산노회 부평교회

탈레스와 하녀플라톤의 대화편 중 인식론을 다룬테아이테토스에 따르면 어느 날 탈레스가 천체를 보면서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를 본 영리한 하녀 트라키아가 깔깔 대고 웃었다.‘주인님은 하늘의 이치를 알려고 하기보담, 발밑의 우물이나 잘 보세요.’하면서 탈레스를 비아냥거렸다고 전한다.

아르케의 질문을 던진 자 흔히 탈레스(기원전 624~546)를 철학의 기원으로 말한다. 그는 오늘날 터키의 밀레토스에서 태어났으며, 철학자들의 최초의 스승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와 수학자 피타고라스와 아낙시메네스로 이어 지는 스승과 제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탈레스는 올리브 농장을 경영하면서 시들고 메말라 죽어가는 식물에 물을 주면 곧바로 소생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 그래서 그는 만물의 근원은 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여기에서 탈레스의 궁금증과 의문을 풀어준우주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이 한 물음이 나오게 되었고, 이 물음은 인류 역사상 의미심장한 물음이 되었다.

탈레스의 이 질문은 우주와 만물과 천체의 주인이 누구냐?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다시 돌아가는가? 를 포함한 자신의 존재와 우주의 근원(아르케)에 대한 질문이 되었다.

arche 는 그리스어처음시초라는 뜻으로 초기 그리스 철학에서는 만물을 지배하는 우주의 근본 원리로 이해하였다. 탈레스는 물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철학의 발전이 기독교에 공헌을 하다. 이후 철학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철학이 이성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처음 철학은 논쟁과 대화법에서부터 시작하여 존재론과 인식론, 형이상학, 논리학, 언어철학, 윤리학, 미학, 정치학, 사회학 등으로 발전하였다. 지금은 모든 학문분야에 걸쳐서 교육,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있어서도 철학적 기초를 학습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이를 기반으로 이념과 가치, 목표를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성이나 철학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나, 우리가 신봉하는 기독교 교리나 개혁주의 신학 역시도 철학이라는 학문의 발전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 소망은 선민의 중심 목표이며, 가치라는 데에는 어떤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이처럼 기독교교리를 논증하고 변증하거나, 이단이나 이교도의 주장을 반증하는 등의 논법에 철학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 주후 100년이 지나면서 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 이론(논증이나 변증법 등)을 도입하고 적용하여, 기독교의 교리를 수호하고 변증하는데 적극 활용하였다.

 

허망 되고 덧없는 인생이지만 낙담보다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어느 철학자가 한 말칸트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말하기를 어떤 하는 일이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엇인가에 희망을 가졌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상적인 행복의 조건은 인생무상(흔히 설리홍조, 수료운공, 일장춘몽)이며 너무나 허무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솔로몬 왕의 탄식 전도서 1:2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헛됨을 다섯 번이나 강조한다. 이런 탄식은 그것도 다윗이라는 왕의 아들이요, 그 자신도 또한 솔로몬이라는 왕이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부귀와 영화를 누린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탄식한다. 성경은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가 들에 잠시 피었다가 시들고 지고 마는 꽃 한 거루, 풀 한포기에 비유하면서, 솔로몬의 영화가 이 보다도 못하였다고 일깨워 준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무상함을 애기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아옹다옹하고 열전을 벌리는 투우사로 전락하여 살아가는 것이 인간들의 모습이다. 가진 자들의 지배욕이 세상을 더 시끄럽게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전도자(preacher)는 그런 모든 것은 다 가져보았지만, 정녕 헛된 것이었다고 탄식한다.

헛됨의 어원모든 것이 헛되도다. all is vanity’의 헛됨, 무의미(vanity)는 원어 heh'bel 로서 수증기(vapour), 입김(breath)), 한번 들이쉬는 숨을 비유적(figuratively) 상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인생을 수증기와 같다고 하거나, 입김이나 한번 들이쉬는 숨에 비유하는 것 자체는 인생의 무상함(transience)과 헛됨(vanity)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뜻은 명령이며 엄중하고 강제성이 있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고 말씀하셨을까? 깊이 새겨듣고 금년 한 해 동안도 내가 하는 일이 무난히 잘되어지던 아니면 실패를 하든 간에, 이 말씀을 실천하기위해 항상(at all time) 그리고 쉬지 말고(without intermission) 범사에(every thing)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될 것 같다.

 

우리는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된다.

어거스틴은 어떠했는가? 새해 벽두 세상 사람들이 주고받는 문안 인사와 화두는 건강, 재물 그리고 행복한 삶을 소원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스도인들 역시도 내심으로는 별반 다르지를 아니하다고 한다.

전쟁의 화염과 환난기의 성 어거스틴은 항상 불안한 마음과 두려움 같은 것으로 여생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다고 한다. 어떤 입장이나 환경에 있던 지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건강, 재난, 빈곤 등을 염려하는 경우가 있지만, 낙심하거나 쉽게 포기하지 말고 헤쳐 나아가면 선한 길이 열린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역사의 수례 바퀴는 변함없이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어김없이 한해는 가고 다시 2015년 새해가 밝아왔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벌써 하루, 이틀, 사흘, 닷새가 지나갔다. 이 한해 동안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영위하고, 주님께서 인도하고 계심을 체험했으면 한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다. 선민의 가슴에서 묻어나는 감사와 기쁨의 열매이다.

뉴질랜드가 발표한 행복 열쇠 얼마 전에 뉴질랜드의 한 연구소는 행복의 열쇠는 과일을 습취하고, 자연환경에서 살면서, 하루 종일 햇빛을 쬐일 수 있고, 충분한 잠을 잘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행복의 조건이라고 연구 보고하였다. 얼른 듣기는 쉬운 것 같지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런 풍요로운 조건 자체가 갖춰졌다고 한다는 것은 진정 행복을 체감해 보지 못한 자의 역설에 불과하다.

인간 행복 조건 사람들은 흔히 행복의 조건을 아래 표와 같이 8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행복이 지속되려면 양자는 서로 일정한 밸런스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균형이 깨어지면 행복 조건은 소멸하여 감소된다.

 

행복 조건이 다 채워진다고 하여도 그 여부는 장담하지 못한다.

                                       인간의 8가지 행복 조건

▲ 행복 조건과 균형

 

                                OECD 주요국가 34개국 행복지수 현황

▲ 지수 10에 가까울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다. /자료 보건사회 연구원

위 통계를 보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일수록 아마, 행복 만족도 지수가 올라가는 것 같다.

 

선진들은 고통가운데서도 최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선진들은 모진 핍박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난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천국소망이 있었기에 고난을 견디면서 승리하는 삶을 이어갈 수가 있었다. 네로 황제(5대 로마황제, 37~68)가 기독교를 핍박할 당시 화형을 시키거나, 사자 굴에 던져 갈기갈기 찢기는 참상을 목격하면서도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스런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하기 위해 앞을 다투어 화염으로, 사자 굴로 뛰어 들었던 전래된 역사는 믿음을 지킨 선진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대적 사탄은 골리앗과 같은 모습으로 갑옷을 입고 큰 창을 들고 우리 앞에 당당히 나타나지 않는다. 교활한 악마의 모습은 감추고, 순한 양처럼 접근하여 마음 한 언저리에 조금씩 파고들었다가 슬그머니 몸통체로 성도들의 몸 안으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사탄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인간을 완전 노예로 만들기도 하고, 공격 수법은 혼란을 주는 변칙을 잘 사용한다. 사탄의 궤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참담한 신세가 되어 질질 끌려 다니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사탄노릇을 하기도 한다. 매일같이 깨여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선한 일을 사모하지 아니하면, 대적 사탄은 항시 틈새를 노리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군사 된 자로서 전투적인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 던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매일같이 발버둥을 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 나라 왕국 도래에 대한 기대 우리 인생이 비록 이 땅 위에서 때로는 지리멸렬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악순환 가운데서 헉헉거리면서 죽을 쑤지만, 영원한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견디면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상교회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와 만물 역시도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계를 현세적 의미에서의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지만,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하나님 나라 개념은 내세 천상천국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이 단어는 신약성경 중심의 테마이다. 등장 횟수는 마태복음에서 4,(하늘나라 34)가 나며, 마가복음에서는 14, 누가복음에도 22회가 나온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2, 사도행전 6, 바울서신서 8, 요한계시록에서 1, 총 하나님 나라 단어가 57, 하늘나라 단어가 34회 나온다. 마가복음 4:11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서 basileia 는 왕국(kingdom)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 개념하나님 나라는 다가 올 미래적이고, 그리고 현재적인 하나님의 다스림 (주권, 통치와 지배)을 뜻한다. 하나님 나라는 영어 kingdom 왕국으로 번역한다. 히브리어는 말쿠트 야웨, 아람어는 말쿠타 디스마이아(malkuta dismayya)라는 문자적인 번역이 존재한다. 이 용어는 바벨론 포로 이후 하나님 성호에 대한 완곡어법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말한다. 제자 마태가 유대 그리스도 인 독자들을 존중하여 이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23:43 에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한 낙원(paradise)은 원어 paradeisos(語義 울타리 - 울타리 친 정원, 동산을 뜻한다.) 로서 천상(heaven), 천국(paradise)을 의미한다. 현상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낙원의 위치와 장소고후 12:2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자라.’ 는 말씀이 나온다. 셋째 하늘(the third heaven)은 천국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첫째, 둘째, 다음에 셋째 하늘이라고 한 것은 천국의 위치와 장소 거리를 말해 주는 것 같다. 하늘(heaven, oo-ran-os')의 어원은 우주적이며(the universe), 세계적(the world)이라는 의미와 뜻을 가진다.

이끌려 간지라는 말은 채여, 다른 힘에 의하여 이끌림을 받았다는 뜻이다. 셋째 하늘을 삼천 층 더되는 거기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왕국을 의미한다.

바울은 엄청난 고난 가운데서 - 낙원으로 이끌러 가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말을 들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 (고후 12:4) 고 하였다. 이 낙원(paradise)의 위치와 장소는 생존하는 인간으로서는 찾을 방도가 없는 것 같다.

천국은 현상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며, 아주 멀리에 더 높은 곳에 있을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는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점이다.

 

유한하고 무지한 인간, 아담의 후예들

현상에서 셋째 하늘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주와 천체에 대해서 좀 알아보려고 해도 짧은 지식으로는 별로 알 길이 없다. 만원경도 없지만, 있다고 하여도 우주를 관찰하고 무엇을 찾아보기란 너무 넓고, 광활하고, 원대하여, 어려워서 도무지 못할 것 같다. 하늘 높이가 너무 높아서 사다리도 못 놓겠고, 사다리를 타고 한번 올라가보려고 해도, 도저히 엄두가 안 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광대한 우주와 천체 그리고 대기권 밖은 또 생명체 활동이 제한되고 우주 가운데서도 내가 살고 있는 지구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하면,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약 15,000km 이나, 원일점과 근일점에서의 거리 차는 약500km 정도가 난다고 한다. 태양으로부터 지구 까지 빛이 오는 데는 818초가 걸린다고 한다. 빛은 1초에 약 30km의 속도를 낸단다.

지구가 1년에 태양을 한번 돌듯이, 태양도 초속 25km 속도로 은하계 중심 둘레를 약 2억년 걸려서 한 바퀴를 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태양의 속도와 은하계의 둘레와 천체의 범위 등을 추정(가정)해서 산출한 자료인 것 같아 보인다.) 태양의 표면 온도는 5,700도 이며, 태양으로부터 복사 에너지 즉 태양열이 태양계의 행성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태양에서 가까운 행성일수록 온도가 높다. 빛이 1초 동안에 가는 거리는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돈다고 한다. (빛이 뭣이 그리 빠른지도 모르겠다)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거리는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400분의 1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달나라가 조금은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지구에서 달을 가려면 빛의 속도로 1.3(역사성 중력에 따르면 12.12) 걸린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가기위해 빛은 82초를 달려가야 한다. (그러니까 지구에서 달나라를 한번 같다 오려고 하면 390,000km <평균 384,400km> 길을 다녀와야 하는데, 어떻게 한번 움직여 볼 방도가 없다. 금성, 토성, 목성, 광명성은 커녕 북두칠성, 은하수에도 한번 놀러가 볼 방법이 도무지 없다.)

1969년에 인간이 우주선을 달에 처음 보냈으나, 2009년 물을 발견한 것이 고작이다.

여름 밤 하늘을 쳐다보면, 육 안으로 볼 수 있는 천체의 별들의 수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고 한다. 셋째 하늘 거기가 어디쯤,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셋째하늘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사후 불멸된 영혼으로서 영존하며 영생하며, 주님과 함께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위치이며 장소이다. 그곳은 미리 성도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곳이며, 주님께서 말씀하신 낙원이다. 바울이 본 셋째하늘 거기는 삼천 층 더 되는 곳으로서 처음 것은 다 지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곳임을 믿는다.

 

맺는 말

각 나라마다 시민권은 일반 국민이 누리고 가지는 권리이지만, 시민권 자의 첫 번 째 권리는 그 영토에서 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선민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일컫는다. 천국 시민권은 선민에게만 주어진다. 선민의 영예와 기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가 없는 고귀한 것이며 은택이고 특권이다.

선민 자격 하나님이 선택한 주의 백성들은 잠시 여기(세상)에 살다가 주님께로 가기 때문에 여기(세상)를 나그네 생활이라고 말하고, 저 세상을 본향(고향)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고 하셨다. 

be borne(ghennah'o)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는 아버지의 자녀들로 태어난 자라야만 한다는 것이다.(of men who fathered children)

선민 자격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0) 하셨다.

육과 혈(flesh and blood)은 타락한 인간의 육체이며, 사람이나 동물들의 피로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며(많은 것을 상속받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단정한다. 믿음(faith)의 발로는 하나님에 관한(relating to God) 그리스도와 연관(relating to Christ)된 것들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 천국시민이 될 수가 없다.

갈수록 더욱 분명해 지는 것은 우주와 만물과 천체가 창세 이래 어떤 혼란이나 사고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수십억만 년 동안이나 아니, 태초부터 지금까지 고장 한번 없이 천체가 잘 운행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이상하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세상만사가 창조자 신의 섭리에 의해 계획대로 차근차근 잘 진행되고 조정, 통제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한낱 피조 된 나약한 인간이 조물주 이신 창조자 야웨의 신께서 하시는 일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고, 어리석고,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한다.

초대교부 터툴리안(150~225)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고백은 오늘 우리가 함께 공감하는 고백이다. 하나님 나라 소망은 그리스도인이 꿈꾸는 최종 목표로서의 희망이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