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가 동업을 했습니다. 세 명 모두 나름대로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준비도 철저히 했습니다. 다만 세 사람이 지금까지 종사해온 업종이 아닌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점을 염려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분야가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들 조금씩의 지식은 갖고 있었고, 그 업종 사람들과 거래도 해보았으니 직간접의 경험도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저기서 조언도 들었습니다. 현실은 다르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세 친구는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상호합의하에 적절한 비율로 투자금도 내고 거기 따라 직책도 정했습니다. 기획과 집행도 투명하게 진행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랑스러울 정도로 멋지게 출발했습니다. 그런데도 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못미더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세 친구의 동업을 보면서 부정적인 말들을 참 많이 했습니다. “세 사람이 서로 맞지 않는다. 저 누구누구 때문에 저 일이 될 턱이 없다. 저렇게 어설퍼서는 곧 망한다. 저 사업 벌이지 않는 것이 돈 버는 거다.” 세 친구는 그런 말을 듣고 화를 냈습니다. 오기도 생겼습니다. 더 잘해보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말 같은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자기들이 해 온 과정을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잘못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올바르다고 확신하는 방향으로 계속 밀어붙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그 회사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세 친구는 서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행여 공격이라도 받으면 자기가 얼마나 올바르게 했는지를 말하면서 억울해 했습니다. 세 친구의 사이는 금이 갔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비판하면서 소송 직전까지 갔고 결국 결별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억울해하면서 서로를 비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친구가 동업을 하는 또 하나의 회사가 있습니다. 그들 역시 공동투자를 해서 회사를 설립했고 각자의 영역을 정해서 일했습니다. 이 회사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대형 회사는 아니지만 탄탄한 중소기업이 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앞의 회사에 비하면 엉성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각자가 무엇을 잘하고 있다고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회사를 운영해갈 뿐입니다. 어떤 회사가 성공하고 어떤 회사가 망하는지 문외한인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공하든 망하든 거기에는 이유는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한 가지 드는 생각은, 망하는 이유 중에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반드시 들어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조심했을 테니까요. 자기가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고집에 불과할 때, 신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지에 불과할 때, 특출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 수준에서의 특출남에 불과할 때, 그럴 때 그 회사의 미래는 위험할 겁니다. 그러므로 실패한 이들은 억울하다고 말하기 전에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자신의 부족함을 사과하면서 아름답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재기의 가능성도 생기고 우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義)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자기 의에 사로잡혀서 교회를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지도자들이 자기 의에 사로잡혀 엉뚱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것, 그것은 개인과 공동체를 망치는 가장 큰 장애물 중의 하나입니다. |
- 기자명 전원호
- 입력 2015.01.21 20:48
- 수정 2015.01.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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