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시대는 바야흐로 마지막 때가 아닌지를 걱정해야할 만한 일들이 끊이어지지 않고 있다. 교회 안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목사를 내보내기 위해 10억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사례1

거제시 ㄱ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교회당 건축을 빌미로 갈등이 불거져 장로들이 경찰에 목사를 고소한 상태에서 지난 주일에는 장로들이 강사로 온 타 교회 목사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강사가 설교 중 “목사에게 대항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폭행을 당한 강사는 이 교회 장로들을 노회에 고발할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사건에 사건을 더하고 있으나 속히 해결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교회의 근본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바깥에서는 겉만 보고 엉뚱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피할 길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례2

부산의 ㄱ교회도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전권위원회는 ㅇ목사에게는 사임을 권고하면서 동시에 ㄱ교회에는 퇴직금 6억원과 교회개척자금 4억 도합 10억을 지불하도록 권고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ㄱ교회는 현재의 교회당 부지가 도시정비계획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다른 곳에 새로운 부지를 마련하고 예배당을 신축 이전해야 하는 힘든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빚을 내어 10억을 지불하였다고 한다.

        

이미 년 전 회계집사의 헌금 유용으로 3억 7천여만의 재정손실을 입은 데다 다시 10억의 부채를 짊어지게 될 뿐 아니라, 20여년 전 1300여명이 회집하던 교회가 현재 천명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데다 담임목사 문제로 교인들이 양분되기까지 하여 수습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례 3

부산의 ㅈ교회는 목사가 교회 명의로 지불되는 각종 경조비를 유용한 혐의가 드러나 지루한 논란을 벌이다 목사가 떠나는 바람에 교회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그 목사 역시 아무런 제재조치를 받지 않아 동일한 사건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위험이 있으며 전체 교단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사례 4

충청도의 어느 교회는 개척교회를 하면서 오랫동안 여러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나 전부 목사 개인에게 주어진 후원금이라며 어느 교회가 어떻게 후원해 주었는지를 끝내 밝히지 않았으며, 계속 후원금 공개를 요구하는 장로를 아예 내쫓아버렸고 끝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회의 땅과 건물은 전부 목사 개인 명의로 등기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두고 노회나 시찰회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누군가가 나서야 하는데 그런 위험을 감내할 사람이 없다. 비밀을 유지하면서 알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사례 5

충청도의 어느 교회는 교인이 줄어들자 아예 예배당을 학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목사가 워낙 막무가내라 노회나 시찰회 그 어느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어느 교회는 목사가 예배당을 담보로 잡아 수 킬로 떨어진 곳에 건물을 얻어 개인명의의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노회에는 그것을 교회 교육관이라고 우기고 있으나 역시 속수무책이다.


사례 6

고신 소속이었으나 한 때 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소속이 없어져 버린 어느 목사는 자신이 아는 교인들 뿐만 아니라 목사들, 심지어 목사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사모에게까지 자녀 유학자금 핑계를 대며 거짓말을 하면서 백만원~수백만을 빌려 도박에 탕진한 것이 들통이 났으나 그를 제재할 방법이 없어 여전히 버젓이 목사 노릇을 하고 있다. 누가 다시 그의 그물에 걸려들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실을 알리고 재발을 막을 방안이 없다.


사례 7

인천 ㄱ교회 목사는 음주에 수백 수천만원씩을 성도들로부터 빌려 어디엔가 탕진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교회를 사임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데 그칠 뿐 징계를 하지 않아 여전히 목회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목사는 이미 다른 교회에서도 그와 같은 행태를 보였음이 드러났다. 만약 이전 교회에서 그 사실을 어디엔가에 알릴 수 있었다면 훗날 일어난 엄청난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목회자 윤리 위원회 설치 시급

이런 문제를 찾아 열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생각할 때 더 이상 극소수의 문제, 혹은 남의 문제로 치부하고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교회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여러 달, 심지어는 여러 해 동안 내부에서 다툼을 계속하다 어쩔 수 없이 사건이 확대되어 시찰회, 노회, 총회로 올라가면 세월만 소비하게 되고, 결국은 세력 싸움이나 정치력의 싸움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그러다가 어느 새 갈등의 본질은 사라지고 세력다툼에서 살아남는 자는 의가 되고 지는 쪽은 불의한 자로 비난을 받게 되며 진실은 끝내 묻혀버리고 말아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절망하게 되고 신앙에 커다란 손해를 입게 된다.


일반 사회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의사회구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고 정당이나 정치권에서도 윤리위원회가 있어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기 전에 자체적으로 정의롭게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사법적 권한을 갖지 못한 윤리위원회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평한 잣대를 가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차적으로 외부의 객관성을 띤 기구에 신속하게 사태를 알리고 일정한 조사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극한 대립을 막을 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제를 위한 법이나 인위적 제도가 적을수록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때가 악하고 사탄이 교묘하게 분란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영광을 훼손시키지 않고, 성도들을 애매한 고난을 당하는 피해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스스로 제도와 법을 정비하여 함께 순복하는 길을 열어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총회에서 제도적으로 접근하거나, 혹은 존경 받는 원로급 목사, 장로들과 교회법과 세상법에 능통한 분들로 이루어진 시민단체 같은 성격의 NGO 위원회를 구성해 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의 윤리문제, 교회 내부의 분쟁조정 등 문제가 확대되기 전에, 법적 대결구도로 나아가기 전에 적극적으로 자문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교회의 힘을 엉뚱한 일에 낭비하는 일을 방지하며, 신앙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고급스러운 교회를 만드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을 보일 때가 이미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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