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히 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잘 먹고 편히 있어요. 아프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보가 무엇일까?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사람이 생명을 양보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양보가 있을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된 이지영씨는 자신이 풀려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친구를 위해 양보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이 사실은 현지 가이드를 맡았던 이지영(36) 씨가 자필로 쓴 쪽지가 23일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이 쪽지는 이 씨와 함께 있다 먼저 풀려난 김경자(37), 김지나(32) 씨가 석방 직전 전달 받은 것으로 이날 오후 이 씨 가족에게 전달됐다. 이 씨의 작은오빠 종환 씨는 “탈레반이 두 명을 석방하면서 내 동생에게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으라고 해 쓴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랍어 글귀가 인쇄된 흰색 바탕의 종이쪽지에 간결한 글씨체로 5줄의 ‘편지’를 짧게 썼다. 그동안 쪽지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를 전해 받은 이 씨의 어머니 남상순(66) 씨는 북받치는 그리움과 슬픔을 참지 못하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 해운대에서 이지영씨
남 씨는 “지영이의 필적이 맞다”며 “이것을 받는 순간 지영이를 만난 것 같았다. 자기도 힘들 텐데 엄마 몸 아프지 말라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아프간으로 출국해 현지 인솔자 중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이지영(36.여)씨는 통역사로 봉사단에 참여했었다.  
 
이씨는 2년 전 아프간에 처음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 지난해 12월 아프간으로 떠나 현지에서 교육 및 의료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지 유치원 등에서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병원에서 간호보조역할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부산 동래여자전문대학 마케팅과를 나와 인제대 사회교육원에서 출판 관련 웹디자인을 배웠다. 이후 직장을 서울로 옮겨 8∼9년간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지난해 말 일을 정리하고 아프간으로 떠나 2년간 체류한 뒤 2008년 말 돌아올 예정이었다.

한편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탈레반에 억류됐다 먼저 풀려난 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입원 중인 김경자, 김지나 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이날 오후 8시(한국 시간) 영어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했다.

아랍계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23일 방송한 김경자, 김지나씨와의 인터뷰에서 “이들 인질 2명이 이지영씨가 ‘내가 아프간에 오래 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머지 18명과 함께 남겠다’며 석방할 기회를 양보하는 놀라운 희생 정신을 발휘했다”고 보도했다.

김경자, 김지나씨는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이지영씨의 뜻대로 김경자씨를 대신 석방하고, 남은 이지영씨가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도록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알자지라와 인터뷰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23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먼저 풀려난 김지나(왼쪽), 김경자 씨와 한 인터뷰를 내보냈다. 연합뉴스

두 김 씨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환자복 차림으로 나란히 나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은 인질 19명의 석방을 호소했다.

김지나 씨는 “우리가 먼저 풀려나 가족과 함께 있어서 기뻐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은 사람들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제발 우리 동료를 하루빨리 풀어 달라”고 말했다.

김경자 씨도 “풀려났다는 기쁨보다는 남은 인질 19명 생각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듯하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된 이들에게 알자지라와의 인터뷰가 허용된 데 대해 “석방된 2명과 가족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자신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남은 인질 19명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경자, 김지나씨 인터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ㆍ억류됐다 풀려나 현재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입원 중인 김경자(37), 김지나(32)씨가 아랍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와 독점 인터뷰를 갖고 한국 인질들의 석방을 호소했다.

이들은 23일 오후 8시(한국시간) 알-자지라 영어방송 뉴스 프로그램에 국군수도병원의 환자복 차림으로 등장, 탈레반에 붙잡혀 있는 나머지 인질 19명의 조속한 석방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김경자씨와 김지나씨는 침대에 나란히 앉아 있었으며 김지나씨는 담담한 얼굴로 "저희가 돌아와서 가족을 다시 보게 돼 기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남은 동료들 생각에 한 숨도 못 자고 있다"며 "그들도 빨리 가족의 품에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과 가족을 가장 우선하는 게 이슬람의 가르침이라고 들었다"며 "우리 동료를 제발 하루 빨리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김지나씨는 이어 "우리는 이지영씨가 남겠다고 자원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매우 걱정했다"며 "그러나 탈레반은 (스스로 남은) 이지영씨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가족에게 편지를 쓰도록 허락했고 곧 풀려날 것이라는 희망도 약간 비쳤다"고 설명했다.

이지영씨는 아프간 현지에서 통역 역할로 샘물교회 봉사단에 합류했었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지영씨가 "내가 아프간에 있었던 경험이 많다"며 석방 기회를 양보했다고 보도했다.

김경자씨는 울먹이며 "풀려났다는 기쁨보다 남은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이들이 빨리 풀려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탈레반이 음식, 약, 담요같은 기본적인 것을 제공하는 등 자신들을 나쁘게 대우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 두 사람의 모습은 그간 한국 정부가 언론의 접근을 통제한 탓에 국군수도병원 입원 뒤 외부에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날 알-자지라를 통해 처음으로 노출됐다. 카타르 도하에 있는 알-자지라 본사 관계자는 "어제 또는 오늘 인터뷰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바이=연합뉴스)< /FONT>

 

“평소 양보 잘했던 아이…19명 모두 무사히” 울먹

» 석방을 양보한 것으로 알려진 이지영씨의 어머니 남상순씨가 2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던 중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내 딸이지만 훌륭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딸들 제발 무사히 보내주세요. ….”

탈레반에게 함께 억류된 다른 인질들에게 자신의 석방 기회를 양보한 것으로 확인된 이지영(36·여)씨의 어머니 남상순(66)씨는 24일 하루종일 목이 메었다. 남씨는 “평소에도 남에게 배려와 양보를 잘했던 아이”라면서 “충분히 그렇게(석방 양보) 할 심성을 가졌다”고 울먹였다. 특히 먼저 풀려난 김경자·김지나씨를 통해 딸이 보낸 안부 쪽지를 건네받은 어머니는 자주 쪽지를 보며 “딸을 만난 것 같다. 보고 싶은 내 딸아 부디 건강하게 19명 모두 손에 손잡고 건강한 모습으로 활짝 웃으며 엄마랑 만나자”며 안타까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가족모임 “이슬람권 호소하려 알자지라 인터뷰 주선”

‘애타는 가족들’ 국내 온 파키스탄 의원들에 도움 호소도

탈레반에 납치된 지 37일째인 24일 이지영(36·여)씨가 석방을 양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피랍자 가족들은 ‘용감하고 아름다운 행동’에 숙연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석방된 뒤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김경자·김지나씨가 남아 있는 19명의 다른 인질들을 제발 무사히 보내 달라고 호소하자, 안타깝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발을 굴렀다.

이날 오전 피랍자 가족들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사회봉사의원연맹(IPSS) 제3차 총회에 참석한 파키스탄 의원 6명을 만나 도움을 호소했다. 이 자리에서 자히르 아완 파키스탄 상원의원은 “사회봉사단원들의 안전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억류자들의 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 폐막식에서는 ‘납치된 한국인 사회봉사자들의 안전보장을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결의문이 채택됐다.

한편, 피랍자 가족모임 차성민(30) 대표는 “탈레반 쪽이 인질들을 억류 장소에서 이동시킬 때마다 ‘석방되니 짐을 싸라’는 말을 했다고 두 김씨가 전했다”며 “인질들은 수시로 억류 장소를 옮겨다니기 때문에 두 김씨는 석방될 때도 또다시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석방 자체를 믿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두 김씨는 석방 당시 혼자 남게 된 이지영씨의 편지를 부모님께 전해주겠다고 탈레반 쪽에 요구해 이씨가 편지를 썼다”고 전했다.

그는 이와 함께 “그동안 석방된 두 김씨와 언론의 접촉을 막았지만, 이슬람권에 가장 효과적으로 호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를 주선했다”며 우리나라 언론의 이해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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