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730분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강의동에는 겨울방학 특강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과 로마제국이라는 주제의 안용성 목사(그루터기교회)의 강의가 교실을 가득 메운 열기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날 안목사는 많은 질문을 쏟아내면서 수강생들을 긴장 시켰다. “복음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인데, 왜 교회에 다닐수록 더 깊은 죄책감에 빠지는가?” “그렇게 율법적인 한국교회에 왜 삶이 없는가?” “한국교회의 신앙은 내세지향적인데, 삶은 왜 그리 세속적인가?” 하는 것이다.

▲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이 모든 결과는 복음에 관한 오해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서두로 강의를 시작했다.

 

법정적 관점과 관계적 관점

법정적 관점: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교회가 법정적 관점에서 십자가의 대속의 복음을 이해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우선 바울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내 죄 사함을 받았다"는 명제를 두고 대속은 내 죄로 인해 예수께서 대신 징벌을 받은 것으로 알고 구원은 죄사함과 칭의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은 삶과 단절되어 있다. 복음을 믿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물으면 답을 못한다는 것이다. 입으로 시인만 하면 됐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말씀대로 산다면서 율법으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결국 교회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고 복음화는 기독교화 하는 것이라고 알게 된다.

관계적 관점: 죄의 지배를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이다. 구원은 죄의 지배를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관계회복이다. 대속은 속전을 지불하고 노예에서 해방됨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는 삶이다. 즉 믿음 자체가 삶이어야 한다. 그 주되심이란 개인, 사회, 즉 교회와 세상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아직 과정이다. 주 되신 예수께 우리를 내어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것이다.

 

▲ 안용성 목사가 강의하고 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하나님의 나라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소식이다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왕 되심, 주 되심, 다스리심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소식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되심을 받아들임이다. 구원은 그 결과로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 아닌 것을 주로 섬기던 삶으로부터 전향하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복음: 복음은 신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약 창세기에서부터 예언자들을 통해 이어져 온 것이다. 이사야는 이사야 40: 9-10절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다. “주 하나님께서 오셔서 다스리실 것이다복음이다.

바울의 복음: 로마서 1:1-4절의 말씀에서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으로 정의하면서 이는 예언자들을 통해 미리 약속하신 것인데, 그것은 그 아들에 관한 것이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지만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었다.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가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되시는 길이다. 바울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바울의 믿음

과연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단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죽음과 부활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 받는 것일까? 믿음은 마음과 입으로 하기만 하면 완성되는가? 그렇지 않다. 믿음은 십자가와 부활을 인정하는 것 뿐 아니라 예수가 나의 주 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입으로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처녀가 총각에게 나의 주라고 할 때 그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그 남자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것이며 복종하며 일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지 고백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의 주 되심의 영역: 그렇다면 예수는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주이신가? 그것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가 왜 복음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신앗리아-신바빌로니아-페르샤-헬라-로마로 이어진 이스라엘의 고난 속에서 이스라엘은 그들을 해방 시켜줄 또 다른 나라를 기다렸다.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되리라 믿은 것이다.

영적 세계와 현실: 그러나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사탄의 세력, 즉 죄와 죽음, 어두움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현실적이며 사회적 복음을 영성화한 것이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사탄의 세력은 만연하다. 사탄은 현실을 매개체로 활동하고 있다. 죄와 죽음, 어둠의 세력은 현실 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파라오의 질서(5): 그것은 출애굽 때에도 그랬다. 이스라엘은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겨도 모세를 원망했다. 파라오의 질서에서는 잘사는 것이 그들의 기도제목이었다. 그들은 파라오의 질서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러지 않는가? 심지어 선교를 하다가 순교하는 일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 교회마저 등을 돌리고 왜 우리 모두를 욕먹게 하느냐고 말한다. 그것으로 우리가 손해 본다고 난리다. 세상질서에 갇혀있는 모습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확실한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는 파라오의 질서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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