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박은조 목사가 시무하는 샘물교회는 그야말로 큰 위기를 만났다. 단기선교봉사 활동을 떠난 2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창졸지간에 가장 지독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중의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고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니 가족들은 물론 지인들과 교회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위험은 또 다른 위험을 부르는 법. 피랍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교회 바깥의 세상 사람들은 선량한 보통 시민들로 구성된 봉사단원들을 향하여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정부도 가지 말라는 위험한 곳에는 왜 갔느냐?’, '비행기를 보내도 왜 오지 않았느냐?', ‘유서를 쓰고 갔다니 죽어도 좋은 것 아니냐?’는 등 어디서 들은 풍문을 조합하여 전혀 맞지도 않은, 그러면서 매정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안겼다.
그러는 중에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가 살해당한 소식이 잇달아 날아들었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잦아지는 듯 했으나 정부 대표단이 대면 협상에 나서자 ‘정부가 왜 나서냐?’, ‘내가 낸 세금으로 왜 그들을 살리려느냐?’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극단적인 소리를 하는 자들이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다. 알고 보니 이들은 ‘반기독교시민운동’이니 ‘한국반종교클럽’이니 하는 역사가 제법 오래된 4개의 반기독단체들이 그들의 ID로 집중적인 공세를 펴고 있었다. 그들은 호시탐탐 교회에 대한 공격의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샘물교회는 이 위기의 때에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담임 박은조 목사 자신도 교회의 잠재력에 놀랐다고 말한다. ‘교회는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다는 확신을 다시 갖게 되었노라’고도 했다. 그래서 혼자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도 너끈히 견뎌내고 있었다.
매일 새벽, 오전 11시, 밤 8시, 그리고 밤 11시에 사람들은 교회로 모여들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 밤을 깨우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줄을 이었다. 분당에 자리 잡은 샘물교회는 그렇게 기도하는 체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교회가 지역따라 무슨 특별한 체질을 갖는
것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한 달이나 지속되면서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저녁 8시만 되면 7~800명의 성도들이 그냥 교회로 나온다. 지난 수요일 기도회, 찬양과 기도가 어우러지고 성도들은 말씀에 잠겨든다. 기도의 통곡소리가 예배당을 울린다. 수요기도회가 마친 후 양미희 사모는 철야파들과 함께 밤을 교회에서 지내고 새벽에 고3 아들이 잠들어 있는 집으로 향한다.
박은조 목사는 밤 11시면 당회를 열어 하루하루의 상황을 나누고 집으로 들어가 새벽에 나온다. 아내조차 남편의 얼굴을 볼 시간이 제대로 없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교파적으로 관심 있는 이웃교회의 목사들이 교인들과 함께 기도회에 참여한다.
그러다가 아예 뜻을 함께 하는 목사들을 설교자로 초빙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메시지가 들려지고 기도에 몰입하면서 성도들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매일 피랍자 가족을 비롯해 1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하루 두 끼씩 식사를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권사들이 앞장서 즐겁게 감당하고 있다. 김경자, 김지나 두 사람의 돌아오는 경비에 정부 동행자의 비행기 삯까지 교회가 감당해야 했지만 각지에서 사랑의 물질이 답지하여 감사가 넘친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이제 아프간에 선교사 파송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일본인 당신들이 나서주어야 할 것 같다.’ 이동원 목사가 최근 일본의
한 집회에서 그렇게 말했더니 200명의 일본 그리스도인들이 아프간으로 가겠다고 헌신을 약속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미국의 한국교포사이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복음을 위하여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헛되이 버려질 수가 없다. 무례한 사람들 앞에서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리스도인들만이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는 법이다.
어떤 이들은 23명의 인질이 피랍된 것은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기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경고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무지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되어지는 것이 교회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교회들이 회개의 기도를 했던가 아니면 복음이 승리하기를 기도했던가? 도대체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이 불쌍해서 도움의 손실을 들고 봉사를 갔던 저들이 하나님 앞에 무슨 죄를 지었으며 샘물교회가 그 일로 회개하여야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차라리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회개하여야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겠는가?
‘719 샘물교회 봉사단 사건’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모습을 보인 한국교회로 하여금 헌신과 섬김, 사랑과 봉사, 선교와 교회의 본질을 차분히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샘물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교회의 참된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 진정 기독교 부흥운동이 아니겠는가?
전국에서 말없이 간절하게 기도하는 수많은 간구가 하늘 보좌를 움직일 것입니다.
다수의 세상 사람들이 비난할지라도...하나님의 더 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샘물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고 믿음으로 소망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에 위로와 소망을 든든히 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