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오후 4시부터 종로 5가 기독교학술원 1층 세미나실에서 기독교학술원(대표 차영배)이 주최하는 제43회 기독교학술원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가 열려 1부 예배 후 성령의 신학자 요한 칼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국제신학대학교 김재성 박사가 발표를 하였다.

▲ 논문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김재성 박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발표했는데첫째 부분은칼빈이라는 인물이 기독교 역사에서 차지하고 의의를 소개하고 최근의 평가를 다루었다둘째 부분은 칼빈이 어떤 의미에서 성령의 신학자라고 불리울 수 있는지 이유를 밝히고 그 역사적 의미와 실천적 함의를 소개한다.셋째 부분은 칼빈의 영향과 칼빈주의 성령론의 발전을 다룬다.  

▲ 김재성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칼빈새로운 기독교 신앙인의 모습칼빈주의자의 등장

칼빈은 지난 2천년간의 기독교 신학과 교회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5대 인물의 반열에 올랐다암브로스제롬어거스틴그레고리그리고 칼빈이다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칼빈은 이들 초대교회 교부들을 훨씬 능가하는 업적을 남겼다그는 누구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기독교 신학과 성령론을 제시하여 교회를 하나님의 반석 위에 세우는데 기여했다.

20세기 저명한 개신교 역사학자 에밀 레오나르드(Emile G. Leonard. 1891-1961)는 칼빈의 업적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새로운 신앙인의 모습칼빈주의자(a new type of man the Calvinist)”라는 명칭이 그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되어 졌다고 평가한다칼빈주의자는 (1)윤리적으로 엄정하고, (2)고난과 박해와 시련에도 새로운 교회를 중심으로 믿음을 견고히 지켜내며, (3)직업의 소명의식을 가진 성도들을 말한다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당대 종교개혁자들의 장점들을 종합한 것이다.

칼빈주의자라는 별칭은 칼빈이 원했던 것은 아니다그리고 16세기에는 별로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것도 아니다찰스 5세 치하의 유럽 전지역에 새로운 종교개혁이 퍼져나가면서 루터를 따르는 독일 지역과 쯔빙글리를 따르는 스위스 동맹으로 구별되는데이들과는 다른 새로운 개신교 그룹이 칼빈의 제네바를 통해 등장한 것이다차츰 세계로 퍼져나간 칼빈주의는 영국에서는 장로교회유럽과 다른 지역에서는 개혁교회라는 이름으로, 17세기에는 청교도 신앙인들이 계승하였고한국에서는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이 세운 평양신학교를 중심으로 소개되고 정착되었다.

그는 기독교 강요와 성경주석을 집필하였고 이것은 칼빈주의자들의 교과서가 되었다칼빈은 중세 로마 가톨릭의 왜곡을 지적하면서 애매모호한 교회전통을 털어내고 성경적인 신앙진리를 밝혀주었다.

▲ 좌로부터 논평자 김요셉 박사, 진행 김영한 박사, 발표 김재성 박사, 논평자 김윤태 박사

성령의 주권을 회복시킨 종교개혁자

칼빈을 일컬어 성령의 신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칼빈을 깊이 연구한 신학자들 사이에는 무려 백여년이 넘게 이 칭호를 사용해 왔으니 공인된 칭호가 된지 오래됐다.

칼빈은 비밀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교황이나 모하메드나직통계시를 받는다는 재세례파신령주의자들을 단호히 배척한다그들이야말로 성령 하나님의 역할을 모독하는 것이요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총체적 오류에 빠진 교회를 살려내다.

성경적 신학자로서 칼빈이 당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문제점들을 수정하고자 제시한 핵심적인 내용 중에는 성경관신론기독론교회관구원론성례론설교론 등이 있는데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었다.

칼빈은 새로운 종교개혁의 신학특히 결정적으로는 구원과 교회론을 새롭게 제시하였다면죄부와 고해성사미사참여로 혼돈을 겪고 있던 중세 말기 로마 가톨릭 교회의 모순과 미신적인 신앙행태를 제네바 교회에서는 완전히 철폐했다구원은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들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구원은 오직 성령의 적용사역에 의하여 결정된다성령이 사용하는 믿음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인간의 심령에 심어지고 그 미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생겨나고 만들어진다.

▲ 단체사진

워필드 박사, “칼빈은 성령의 신학자다.”

성령의 사역이라는 교리는 칼빈으로 인해서 그리스도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다.”라고 말한 그는기독교 강요는 죄악된 인간을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로 인도하며죄악된 인간에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논술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신학실존주의신학에큐메니칼 운동 등은 칼빈의 성령론을 덮어 버렸다특히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기독론 중심의 신학체계로 제시되면서 칼빈의 성령론은 완전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워필드 박사는 성령은 구원의 적용자로서 그 사역에 대해서 정확하게 서술하여 주었다.성령은 모든 생명의 창조자요저자요수여자라는 칼빈의 이해를 수용했다위필드를 이어 죤 머레이리챠드 개핀퍼거슨 등도 칼빈의 성령론을 주장하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칼빈의 영향과 칼빈주의 성령론의 발전

칼빈의 신학사상은 한 사람의 독백으로 그치지 않고 이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오늘날 거대한 유산과 교회들을 형성하였다칼빈주의자들은 구원의 적용을 전적으로 성령께 의존하는 가운데서만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칼빈주의자들의 핵심적인 신학사상이 되었다.

17세기의 신학서론은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첫 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인?”에 대해 연속적으로 발전시킨 해답들이라고 볼 수 있다삼위일체론신론하나님의 경륜언약성경과 계시의 이해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사역신인으로서의 그리스도구원론의 전체 과정과 예정론의 이해기도의 실제와 이론교회의 직분과 권징세례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영적임재 등 기독교신학에서 다루는 핵심 분야 전반의 발전이 칼빈 사상과의 연속성에서 이루어졌다.

성령론은 정통신학을 세우려는 17세기 기독교 교리학자들과 퓨리탄들그리고 최근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칼빈주의자들은 연속성을 가지고 발전시켜왔다.

마치 20세기 초엽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이 성령론을 부활시킨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오순절파 교회들만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좁은 시각이다.

1907년 미국에서 오순절파의 방언운동 이후로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가 주어졌다는 주장도 잘못된 표현이다이미 칼빈주의자들도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지하여 믿음생활을 했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경건을 힘써왔다. 장로교회은 성령이 없어서 힘이 없고 나약하다는 선입견은 버려야만 할 것이다.

하일델베르그 교리문답: 하이델베르그의 교리문답의 핵심적인 교리들은 모두 다 성령에 연계되어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구원사역승천중보자의 사역에서 성령의 동역과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중생성화믿음기도확신영적전쟁종말론의 기대설교성례들에 관련되어 있는 선령의 적용적 사역을 다루고 있다.

돌트신경: 1618년 알미니우스파와 신학논쟁을 통해서 톨트신경을 작성하였다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을 강조한 다섯 가지 조항을 담고 있기에 성령에 관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지만 칼빈의 핵심 강조점들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발견한다특히 회심에 있어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강조한 칼빈의 입장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부흥운동그 갈림길

개혁주의 부흥운동: 죠나단 에드워드와 죠지 휫필드가 이끌던 개혁주의 부흥운동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회심체험이었다설교를 통하여 역사하는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칼빈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지만 이들은 부흥운동이라는 중요점에 무게를 두었다지금도 부흥운동은 성령의 특수한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으며주권적인 개념에서 볼 때에도 일상을 넘어서는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강조한다또 다른 체험을 유발하고 있고 그것은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중심적 부흥주의와의 충돌: 개혁주의 신학에서 성령론이 점차 소원하게 다루어지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 일어난 잘못된 부흥운동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개혁주의 신학이 강조하는 기본적인 주제를 보다 많은 사람들의 현장체험으로 치우지게 되었다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을 거부하고 인위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난 찰스 피니가 주도한 19세기 초기 부흥운동은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하도록 자극했다피니의 인본주의적인 부흥설교는 성령에 대한 신학적 곡해이자 나쁜 방법론을 만들어내고 말았다다만 무디의 부흥운동은 피니와 다르다고 확신하였던 찰스 핫지 박사는 무디를적극 후원하였고 신학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지도해 주었다.

 

토의

▲ 손기철 장로가 열심히 경청하고 있다.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참가자들과 김재성 박사 간에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었다그 핵심은 방언에 관한 것이었다.

김재성 박사는 워필드 박사가 성령의 신학자라고 하는데 동시에 그는 은사중지론을 주장하였다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김박사는 은사중지론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워필드는 기적중지론’(사도적 기적은 중지되었다)을 말했을 뿐이다용어가 잘못되었다.

"김재성 박사는 은사중지론자인가?" "내가 성령으로 부터 은사를 받아 가르치고 목회도 하였는데 그런 질문은 난처하다. 성령의 은사는 나타나는 것, 보이는 것에 국한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방언의 은사가 없는가?” “19세기 일어난 방언운동을 통하여 학습으로 방언하는 것은 인정하지 못한다.”

이날 세미나에는 특별히 손기철 장로가 참석하였는데그도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다지금도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임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김박사는 그러한 현상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에 함몰되면 소영웅주의에 빠지는 위험이 있다고 대답했다.(김재성 박사의 논문은 논문방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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