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의 현장에서 바라 본 묵상 (1)

▲ 김윤하 목사 참빛교회

이집트를 가지 않고 이스라엘과 요르단만 순례하는 일정이 좀 낯설기는 했지만 성지에 대한 남다른 나의 설레임은 몇 주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을 구입해서 정보를 꼼꼼히 챙기고 그 동안에 소홀했던 성지 부분을 체크하기도 하고 아쉬웠던 장소에 대한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하나씩 노트에 적어 내려갔습니다.

지난해에 예기치 않은 폭탄테러로 중단했던 성지순례를 약속했던 분들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것이었기에 마음에 부담이 더했습니다. 그때 이집트의 룩소와 기자지역과 시내산 루트를 자세히 살피면서 준비했던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동안 방문하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곳에 대한 정보를 찾아가면서 공부하는 것이 즐겁기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성지 전문가의 사진을 보면서 어떤 각도에서 어떤 구도로 찍어야 할지도 연구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성지순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선의 자료를 사진으로 가져와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동행 할 성도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주제를 눈을 열어 보게 하시고 만나게 하소서.”(누가복음 2431) 라고 정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과 동행했지만 알지 못하다가 영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 본 것처럼 성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도록 준비시키고 성지에 대한 사전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순례 기간 동안 매일 아침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한 사람씩을 깊이 묵상하면서 메시지를 전하고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걸으면서 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순례 팀에는 총 32명이 참여하였는데, 제가 가르친 사역반 젊은 성도들이 19명이나 합류했기 때문에 제자 훈련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성원 자체가 젊어서 좀 타이트하게 스케줄을 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이라 낮 시간이 짧아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에 탐방 루트를 정확하게 짜서 중요한 곳을 놓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날씨였습니다. 매일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날씨를 체크했는데 두 주간 전부터 갑자기 눈도 오고 비도 내리고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계속되다 보니 어떤 차림새로 가야 하는지가 젊은 여 성도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어쨌든 그 동안의 현지의 날씨를 중시하면서 겨울에 가까운 옷들로 준비시키고 우기철이라 우산과 비옷을 필수적으로 준비토록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이 얼마나 빗나갔는지 우리는 여행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비가 한번도 오지 않아서 비옷은 사용하지 못했고 날씨가 따뜻해서 겨울옷만 준비한 분들은 현지에서 여름옷을 사 입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전 준비를 최선을 다해서 마친 후에 우리는 드디어 120일 저녁 7시에 교회에 모여서 잠시 예배를 드리고 조대형 장로님이 마련해준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면서 몇몇 분들이 준비한 간식으로 짐은 불어나고 수속준비를 마치고 공항 대합실에 가서 앉게 되자 드디어 성지를 가는 구나! 하는 실감이 났습니다.

팀원들에게는 밤 1150분 비행기이기에 비행기에서 충분히 잠을 자라고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리자마자 바로 탐방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잔 분들이 여러명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비행기에서 주는 식사를 몽롱한 가운데 먹고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나도 깊은 잠을 잤는데 깨어보니 이스탄불에 도착했고 이스탄불 공항에서 두 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그리온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텔아비브는 "봄의 언덕" 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로 오노평야위에 세워진 계획도시입니다. 공항 이름은 이스라엘 독립을 주도했던 초대수상 벤그리온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예전과는 달리 공항검색이 한결 쉬워졌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가이드인 전용석 전도사님이 기다리고 계셨고 우리를 위해서 김밥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방문한 분들이라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차창밖에 전경을 바라보면서 푸른 들판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해했습니다.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하다는 것 때문에 겨울을 살다 온 우리들에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화창한 날씨와 봄의 정취가 보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첫 순례지인 가이사랴 항구로 향하였습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고속도로는 불레셋 평야와 샤론 평야를 가로 지르는 길이었습니다. 불레셋과 이스라엘은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도 이 땅에서 공존하였습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항상 적대관계이지만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나라의 남북 관계보다는 훨씬 낫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서 베드로는 욥바에 있는 고넬료를 만나러 갔을 것이고 바울도 이 길을 따라서 가이사랴에 가서 감옥에 갇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이 길을 가고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성경의 역사가 펼쳐진 생생한 현장에서 나는 걷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냄새까지 맡으면서 성경의 인물들을 만나고 싶은 소망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베드로도 만나고 바울도 만나고 한 번쯤은 방문했을 예수님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속에서 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내 눈을 모두 열어서 보기도 하지만 카메라 렌즈 속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또 다른 느낌을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가이사랴는 유명한 건축가였던 헤롯에 의해서 로마의 군사적 교두보로 10년 동안에 걸쳐서 완공한 도시로 특별히 헤롯은 무역 항구를 건설하였고 곡식 저장소와 시장, 넓은 도로, 목욕탕, 신전, 마차 경기장, 연극장, 검투경기장 그리고 수로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관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사건은 그 동안에 로마사에 나타나지 않는 빌라도에 대해서 사람들이 허구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했었는데, 이곳에서 비석 하나가 발굴이 되었는데 그 돌판 위에 빌라도가 로마의 총독이라는 분명한 기록이 발견되면서 빌라도가 확실한 역사적 인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가이사랴 항구는 이제는 폐허로 남아 있지만 바울이 2, 3차 선교여행에서 돌아 올 때에 이 항구를 통해서 들어오게 됩니다무역을 위한 항구였지만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새로운 루트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이스라엘 곳곳에 엄청난 건축문화를 남긴 건축가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대단한 일을 많이 한 정치가입니다. 그는 일반 은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안긴 자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사도행전 1223절에 보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더니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하나님을 거역한 인간은 결국 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은총뿐만이 아니라 특별 은총을 받은 나는 과연 이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과연 오늘을 사는 나는 세상을 위해 어떤 영향력을 남기고 어떤 유익을 주고 있는가를 나 자신에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흔적과 유산을 남기게 될 것인지를 무거운 마음으로 내 자신에게 묻게 되었습니다그런 후에 가이사랴 마차경기장을 둘러보면서 화려했던 당시에 헤롯의 권세가 지금은 이렇게 황폐한 모습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인간의 권력과 영화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슴에 가득 담고서 다음 행선지인 므깃도를 향해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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