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에서 투트모스 3세가 이스라엘을 침공한 그림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집트 역사에도 투트모스 3세에 의해서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정복한 곳 중에 므깃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므깃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다 왕 요시야가 앗수르를 치고자 북진하는 애굽왕 느고의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하고 (왕하 2329) 아하시야 왕이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신약 요한계시록 1616절에는 아마겟돈 이라는 헬라어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이름은 므깃도 언덕이라는 뜻이며 마지막 날의 전쟁터로 예시되고 있습니다.

므깃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전쟁을 상기시키는 장소로 알려져 있는 곳인데 나폴레옹군이 주둔한 곳이기도 하고 1948년에 이스라엘 독립 전쟁 당시 아랍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난 사건이면서도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갑자기 우리나라의 현실이 전쟁의 현장으로서 세계인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씁쓸함을 안겼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가장 위험한 나라 중에 하나로 한국을 꼽으면서 성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두려움을 비웃는다고 합니다. 국내에 있으면 전쟁에 대한 것을 잊고 사는데 막상 나와 보면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므깃도를 발굴한 자들의 의하면 유적의 층이 25층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 증거는 적어도 25번의 정복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남방의 애굽이 북방을 정복하고자 할 때나 북방의 바벨론이나 앗수르가 남방의 애굽을 정복하고자 할 때도 반드시 므깃도를 먼저 정복한 자가 유리했습니다. 그것은 이 근처에 이스르엘 평야가 있어서 군량미를 조달하기가 매우 용이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솔로몬은 하솔과 게셀과 똑 같은 설계로 병거성을 지었습니다.

이곳을 정복한 다윗이나 솔로몬은 이곳이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장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유적은 솔로몬 시대의 성문과 궁전터 그리고 깊이가 7m 나 되는 곡물 저장소, 솔로몬의 마굿간, 그리고 아합이 건축한 25m 깊이에 수로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돌 무더기와 몇몇 유적들의 남아 있었지만 내 눈에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아우성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의 참상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영토를 확장하려는 인간의 욕심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생명을 잃어버렸을까?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혹시 내 속에도 어떤 욕망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싸움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므깃도 텔 위에 서서 인간이 만든 역사의 황무함을 아프게 바라보는데 몇 그루의 종려나무가 싱싱하게 바람에 견디면서 굳건하게 서 있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무서운 역사속에서도 생명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악한 인간의 전쟁사를 보시면서 멸망시켜야 할 인간 세상이지만 아직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바라보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항상 빼놓지 않는 우리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므깃도를 떠나 갈멜산으로 향했습니다.

갈멜이란 이름의 뜻은 과일 나무가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에서는 아름다움, 번성하는 행복한 생활등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갈멜산을 오르면서부터 이렇게 숲이 울창하고 푸르름이 가득한 곳이 이스라엘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상수리나무와 감람나무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갈멜산 하면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것이 바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영적인 전투를 벌인 사건입니다.

갈멜산 정상에 오르면 엘리야가 칼을 든 동상이 서 있고 그 앞에 기념 교회당이 있습니다. 교회당 옥상에 올라가면 이스르엘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에는 다볼산과 모레산과 길보아산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스르엘 평야 가운데로 흐르는 작은 기손강의 줄기가 보이면서 바알 선지자를 처형하던 그때에 모습이 생생하게 내 앞에 환영처럼 전개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불을 내려 달라고 애원하며 소리 지르던 바로 그 장소 위에 내가 서 있고 나도 지금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교회위에 흘러 넘쳐서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의 무리들이 제거되고 악한 영들의 역사가 무너져 내리는 갈멜산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간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바알의 제단으로 더럽혀 지고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해 버리는 현실속에서 한국교회가 갈멜의 하나님의 제단을 빨리 수축해야 한다는 절실함을 느꼈습니다.

이스르엘 평야를 바라보면서 전쟁의 한 장면이 크로즈업 되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사사 드보라와 발락이 가나안 장군 시스라의 대군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스르엘 평야에서 벌였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군대는 철 병거 9백승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직 그런 무기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다볼산에 모여 있었는데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대는 이스르엘 평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우기라 기손강이 범람하게 되고 평야는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리자 철 병거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구렁텅이에 다 빠져 버리고 군사들은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인간의 무지를 통쾌하게 무너뜨리고 계셨습니다.

갈멜산 꼭대기에 서서 그 승리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승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내가 승리한 것처럼 마음이 들떠서 기분 좋게 갈멜산을 내려오면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해안 길을 따라 악고로 향해 버스는 달렸습니다.

악고는 나도 처음으로 방문하는 곳이라 어떤 곳인지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습니다. 사전에 공부도 하고 정보도 찾아보았는데 역사적인 십자군 이야기와 이스라엘의 9개의 자연 문화 유산 중에 하나라는 것이 중요한 핵심이었습니다. 굳이 십자군의 이야기까지 언급하고 쉽지는 않습니다기독교 역사 중에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악고의 역사는 주전 1800년경의 이집트 문서에도 나올 만큼 오래된 도시로서 알렉산더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방문한 기록이 있습니다. 가이사랴 항구를 헤롯이 건축하기 전에는 악고가 지중해의 무역항으로 가장 중요한 항구였기 때문입니다.

악고에 도착하여 오래된 성곽을 따라 골목길을 걷고 지하 통로를 따라 해안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모든 성채가 군사적인 요새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복잡하기도 하고 전략적인 계획으로 건립된 곳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이곳에서 중요한 장소에서 사진에 몰두하다가 일행을 잠시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

잠깐 들어간 지하 통로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두려움이 밀려오고 망설여졌는데 그 순간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길을 찾았습니다

나는 또 하나의 인생 경험을 하면서 길을 잃으면 처음으로 돌아가라, 멀리 가면 돌아오기가 힘들고 길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죄를 짓고 멀리 가면 회개하기가 어려운 것이 처음으로 되돌아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도 같은 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하 터널을 나와서 일행의 얼굴을 다시 보면서 기쁜 마음을 살짝 숨기고, 오히려 내가 그들을 반겼습니다.

악고의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해안 길을 따라 고도의 저녁 풍경을 만끽했습니다. 적어도 3800년 이상 지속되어진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어진 이 오래된 도시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했습니다. 그 수많은 시간들이 흐르면서 인간의 역사는 배신과 변절과 전쟁의 상처들로 얼룩져 버렸지만 하나님은 한번도 중단하지 않고 해를 뜨게 하시고 지구를 돌아가게 하시면서 신실하게 이곳에도 은총을 쏟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직도 이곳에 저녁노을로 내려앉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그 아름다움에 놀라서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한 경이로움이 마음 가득 풍요로운 축복으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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