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일 고려신학대학원 강당에서 변종길 원장의 취임식이 있었다. 분위기는 그 흔한 축하화분 하나 없이 매우 썰렁하고 착잡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학교정관과는 관계없이 교단적으로는 총장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신학대학원 원장은 다른 대학원장들과는 다르게 취임식까지 거행하며 옹립했지만 세상적인 영광도 있고 권위도 있는 총장의 취임식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이 초라한 원장 취임식은 교단 내에서의 고려신학대학원의 위상을 잘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대학원 원장들의 취임은 총장의 임명 발표나 혹은 총장실에 불러 임명장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만 고려신학대학원의 원장은 임명절차도 형식도 다르다. 이는 고려신학대학원이 법적으로는 고신대에 속해 있어도 교회적으로는 독립된 기관으로 인정하는 총회의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의 신대원 원장 임명과정에서는 이런 독립성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그래놓고서 형식적으로는 원장을 독립된 학교의 장으로 추대하는 취임식을 거행하니 이상한 분위기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 홀로 원장의 반쪽 취임식

더 안타까운 사실은 한 명의 교무위원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취임식과 함께 입학 및 개강식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임 원장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던 교무위원들은 새 원장이 선임되면 일제히 사표를 내는 전례를 따라 이미 사면을 했고, 새 원장은 아직 교무위원들을 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대원 교수들은 거의 모두가 이번 원장의 임명절차는 고려신학대학원의 독립운영의 정신과 그 동안의 관례를 무시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때문에 변 교수에게 원장임명을 수락하지 말아 달라고 종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변 교수는 동료교수들의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장취임을 수락하다보니 완전히 나 홀로 원장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졸업식과 입학 및 개학식, 그리고 취임식까지도 보직교수들 없이 원장 혼자서 치렀다. 듣기로는 변 원장은 교수들에게 교무위원을 맡아달라는 말도 꺼내지 못 하고 있으며, 대신 엉뚱하게도 이사 한 분이 교수들을 불러 설득도 하고 위협(?)도 하면서 교무위원을 맡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원장 취임식은 반쪽행사로 끝났다.

 

취임식장에 소금 뿌린 총장

그런데 이런 이상한 분위기에다 소금까지 뿌린 사람은 축사하러 나온 전광식 총장이었다. 신대원 교수들의 상한 마음에다 소금을 뿌리듯 축사 시간을 빌어 신대원 교수들을 집중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그는 먼저 이번 원장임명의 모든 과정은 올바르게 진행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고 전제하고 의문이 있으면 자기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예 작심하고 나온 듯 신대원 교수들의 잘못(?)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지난 수년 동안 신대원 교수들이 교육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보다 캠퍼스 이전문제 등 하드웨어 쪽에 매달려 왔다고 하면서, 신대원에서 신학교육이 잘못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신대원 졸업생들이 목사고시에 제출한 논문에서 영혼구원보다 사회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대원에 소위 선지자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교회를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민중신학적인관점이 아니라 목양을 생각하며 비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총장의 이런 발언에 대해 교수들은 크게 분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는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며 일종의 언어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총장으로서 도무지 할 수 없는 이런 무책임한 발언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를 반드시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하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신학대학원 사태 발생과정

신대원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그 동안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작년 연말에 신대원 교수들은 김순성 원장의 연임을 만장일치의 결정으로 추천하였고 총장은 전에 해오던 대로 추천된 김 교수를 이사회에 제청하였다. 그런데 이사회는 이를 부결시켜버렸다. 이에 대해 신대원 교수들은 신대원 독립운영에 대한 총회의 결의(학교 명칭, 원장임기 4, 인사와 재정 등의 독립)와 지금까지의 전례를 들어 항의하며 재심요청을 하였으나 이사회는 정관의 법적 절차와 이사회의 권한을 주장하며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원장 임명과 관련하여 실정법적으로는 뒷받침이 없는 신대원 당국은 이사회의 결의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다시 박영돈 교수를 추천하였다. 그런데 전광식 총장은 박 교수를 원장후보자로 추천을 받고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제청을 머뭇거리다가 신대원 교수들의 항의를 받고 난 후에야 이사회 직전에 제청을 하였다.

그러나 이사회는 박 교수가 고신교단 신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것과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부결시켰다. 그리고 처음부터 부결될 것을 예상했던 이사장과 총장은 대학인사위원회까지 미리 소집해놓고 기다리다가 박 교수의 제청안이 부결되자 총장은 신대원과는 아무런 의논 없이 전격적으로 변종길 교수를 제청하였고 이를 받은 이사회도 역시 전격적으로 임명을 결의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신대원 교수들은 망연자실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교수회는 이런 식의 원장임명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성명서까지 냈다. 그러나 임명을 받은 당사자인 변종길 교수는 원장취임을 수락하기로 결정하였고, 여기다 김철봉 총회장은 신대원 졸업식 날에 총회운영위원회를 긴급 소집하여 이사회의 변 교수 원장임명 결의를 승인해줌으로써 김순성 원장의 연임부결로 시작된 소요는 형식상으로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재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취임식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내적으로는 아무 것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우선 당장 교수들이 그 누구도 신임원장에게 협력하지 않는다면 원장이 어떻게 학사를 이끌어갈 것인지 기대난망이다. 당장 입학생 오리엔테이선부터 교수들이 아닌 직원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비교적 안정을 이루었던 교수회가 이제부터는 신임원장과의 갈등으로 상당 기간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구나 이제부터 대학 총장과의 갈등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대원 교수들은 총장이 모든 학생들 앞에서 교수들을 비난한 것에 대해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요구에 대해 총장은 차라리 잘 되었다며 신대원 교수들의 사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증하자고 나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고신은 또 한바탕 진흙탕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또 현재 고신대와 고려신학대학원의 구조조정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나와 있는 마당에서 두 기관의 갈등이 어떤 변수를 가져 올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법인 이사회와 고신대 총장 그리고 고려신학대학원 사이에 중재자가 꼭 필요한 시기이다. 고신의 역사와 설립정신을 잘 아는 사람, 그리고 권위가 있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먼저 우리는 법대로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이사회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법으로만 따진다면 법인이사회는 이사회의 구성은 물론 법인의 재산관리권까지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총회가 이사회에 대해 적절한 제동장치를 해놓지 않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더 벌어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우려가 나온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다. 그리고 나아가 대학과 신대원이 낭비적인 갈등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줄 사람이 필요하고, 고려신학대학원의 위상을 제고시켜 교수들이 신학교육의 사명감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고신의 미래 행로는?

그러나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고신은 지금 역사적인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여기가 새로운 출발의 시점이 될지, 아니면 쇠락의 본격적인 시작이 될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모세는 요단 동편 모압 땅에 이르렀을 때에 지난 광야생활을 회고하며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 지켜야 할 율례와 법도를 가르쳤다.

이와 같이 고신의 모든 지도자들은 지난 역사를 회고하며 점검해야 할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해 하나님나라의 안목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나아갈 길을 바로 설정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그냥 이대로 가면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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