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오전 7시 과천소망교회당에서 열린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44회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가 동성애 이슈와 교회영성이라는 주제로 열려 15분 메시지에 림인식 목사(노량진교회 원로)가 설교하고 1) 한국교회를 위하여- 류성렬 목사(새남교회), 2) 한국사회를 위하여- 안광춘 목사(하은교회) 3) 평화통일을 위하여- 박준배 목사(새빛선교회) 4) 위 세 가지 주제를 위하여 기도하고 합심통성기도를 한 후 발표회가 진행되었다.

 

기도회

▲ 설교 림인식 목사

1부 기도회는 장현승 목사(과천소망교회 담임)의 사회로 시편 1:1-6의 말씀으로 (알곡)와 겨(죽정이)”라는 제목으로 림인식 목사가 설교를 했다. 림목사는 시편 제1편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의인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악인을 가르쳐 준다. “의인은 알곡() 즉 구원 얻는 참 그리스도이다. “악인은 멸망 받을 겨(죽정이) 즉 이단자다. (1)<> 즉 이단자는 알맹이가 없다. <><>와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꼭 같다. 그런데 알맹이가 없다. <>에게 가야할 양분만 빨아먹고, 해를 줄뿐이다. 이단은 그리스도과 같이 보인다. 미혹되기 쉽고 분간하기 힘들다. 그러나 알맹이가 없다. 해를 줄뿐이다. 참 신자의 알맹이는 하나님을 목적으로 산다. 모든 동기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모든 소유권하나님으로 바뀌었다. 예수그리스의 사랑(ajgavph)으로 산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 성령님이 심중에 계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신자다. (2)<><>와 밀접하다. <><>와 처음부터 함께 움트고 돋아나고 자랐고, 함께 하였다. <이단>은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초기 때부터 교회 안에서 돋아나서 교회를 괴롭힌다. (3)바람에 날아가는 겨 <>는 바람에 날아간다. 한국 그리스도들이 일정 강점기 시대와 공산치하에서 핍박의 북풍에 주기철, 손양원 목사를 위시하여 많은 순교자를 내었다. 개인이나 교회의 건강한 신앙과 생활로만 막는다. homo의 피해를 극소 화 하도록 힘쓰자. 교회는 이단을 이김으로 더 능력을 얻는다.“고 말씀을 전했다.

이어 김영한 원장의 발표회가 진행되어 개회사에 김영한 박사, 발표1동성애에 대한 윤리신학적 관점으로 박종서 목사(양지평안교회), 발표2동성에 대한 사회윤리적 관점으로 강병오 교수(서울신대), ’동성애에 대한 목회상담적 관점으로 전형준 교수(백석대)가 각각 발표를 했다. 오늘은 김영한 박사의 개회사와 박종서 박사의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본 동성애에 대해 요약한다.

▲ 진행자와 발제자, 왼쪽으로부터 전형준 교수, 김영한 박사, 박종서 박사, 강병오 교수

개회사: 왜 동성애를 반대하는가? /김영한 박사

1. 동성애는 이성애(異性愛)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지는 가정이라는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2. 성경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멸망 이야기는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본보기다.

3. 사도 바울은 동성애 행위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난다(역리, 逆理)고 정죄했다.

4. 사랑과 새 도덕(new morality)내지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5. 동성애 문제는 결혼과 같이 근본적인 문제이지 문화적 문제가 아니다.

6. 억압, 해방, 권리, 정의의 개념을 성경의 가르침에 기반하여 바르게 정의해야 한다.

7. 용납과 복음이라는 논거는 그대로 동성애자에게 적용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김영한 박사는 그러나 아직 한국 교회는 동성애로 인한 논란이 크지 않다. 동성애자들끼리의 결합이 정상적인 결혼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하는 흐름도 약하다. 그러나 언제라도 잘못된 문화가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씀의 기준을 지켜나가야 한다. (동성애)를 더 이상 죄로 말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법안(차별 금지법 그리고 동성애 허용의 서울시민헌장)이 두 번이나 통과될 번한 것을 겨우 막았는데 깨어 기도하며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야할 때이라고 강조하였다.

 

▲ 발제하는 박종서 박사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본 동성애 /박종서 목사(양지평안교회)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방관하거나 배타적인 태도로만 일관하는 동안 최근 급속히 동성애자들의 세력화 조심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동조하는 세력은 동성애자들만이 아니다. 비기독교진영의 단체들은 거의 동성애를 인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동성애를 받아드리냐 아니냐가 보수와 진보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기독교인들까지도 동성애을 공감하고 받아드리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어 동성애의 문제에 교회가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만날 수 없는 지평: 동성애를 논하는 과정에서 항상 부딪치는 문제는 동성애를 공감하려는 태도와 적대시하는 기독교적 태도의 두 입장이다. 비기독교적 진영에서는 동성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하고 기독교에서는 동성애의 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를 성경에서 찾으려 한다. 기독교적 입장은 과학적 입장과 달리 그들의 발달과정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1) 기독교적 입장= 성경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방법을 이 진리(말씀)라는 틀에 나를 맞추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제시한다. 가족이라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친상간은 금물이다.(27:23,20:14) 아들이 엄마와 결혼할 수 없고 딸이 아버지와 결혼할 수 없다. 남자와 남자가 여자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금한다. 2) 정신과학의 입장= 여아의 경우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거친다면 사랑의 대상이 엄마에서 아버지에게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지만 남자아이의 사랑대상은 항상 엄마가 된다. 그런데 애정의 대상이 어머니에 고착되면 이것이 다른 여자에게로 성 대상을 옮겨 가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 즉 남자에게서 성 대상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신학적 관점: 1) 해부학과 심리적 성숙의 엇갈린 운명론에 대해= 인간은 심리적으로 양성성 또는 중성으로 태어나 발달과정에서 성적 정체성이 확립되거나 교란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임상과 논문들을 통해서 밝혀진 바이다. 때문에 이들은 성에대한 심신의 불일치(동성애)에 어느 정도 관용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그러나 성은 해부학적이든 생물학적이든 선택사항이 아니다. 성에서 몸보다 심리가 더 우선한다는 주장은 신학적으로도 보편논리에도 모순이 된다. 동성애가 사회 생활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이것도 사실은 아니지만) 사회적 통념만을 문제 삼고 동성애의 보편성을 인정하거나 양성성을 정당화하는 심리학자들의 태도(Freud, 1926)는 재고되어야 한다. 2) 동성애가 선천적이거나 유전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 에로틱한 이성과의 사랑이나 성적 사랑이 방해받을 때 연적에 대한 극단적인 행동, 또는 원하는 대상을 얻지 못했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의 태도는 사랑이 인간의 모든 합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Richard Norman, 1983,) 사랑에 빠진 상태는 최면상태에 빠져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점은 사랑하는 대상이 동성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성 대상 도착>인 동성애는 그 정도에 있어서 더 강렬하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동성애가 선천적, 또는 유전적이라고 주장하는 표면적 근거가 된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그들은 창조주의 실수로 잘 못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 동성끼리 사랑하면 안 되는가 왜 꼭 이성끼리 사랑해야 하느냐는 그들의 주장은 다원성과 관용론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설득력을 주는 듯하다. 이 때문에 이들은 동성애는 사회적 범죄가 아니며 동성애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동성애를 대중의 자연스러운 애정 생활을 위한 모든 전제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Wilhelm Reich, 2000,) 이들 주장은 사회적 불화에 적절한 합의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타협안은 결국 창조주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전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실제 지금까지 동성애의 선천성과 유전에 대한 어떠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한 학자는 아직 없었다. 생물학적으로도 또는 심리적으로도 그리고 성경적으로도 동성애의 선천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있고 유물론자인 프로이트조차도 그것을 성적 일탈’(Freud, 1905)로 보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윤리: 1) 교회는 동성애에 대한 분화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 동성애의 자살적 성향에 대한 교회의 책임으로 그 대안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 3) 물질주의의 가장 복잡한 위장은 동성애이다. 동성애에 대해 오직 배타적으로 일관하는 교회의 모습은 곧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도피 행각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 기독교학술원 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논의에서 얻은 몇 가지 대안:

1) 동성애가 유전적이거나 선천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기독교는 정확히 반론할 수 있는 지식과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2) 아동기에 발생하는 병리는 신경증이고 치료가 가능한 병이지만, 유독 같은 시기에 발생한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정신과학의 입장은 이미 오래전에 사도 바울이 동성애를 진단한 말씀과 일치한다.

3) 동성애를 이성애로 바꾸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책무는 아니다. 성경도 동성애자가 이성의 사랑으로 바뀌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悔改(뉘우칠 , 고칠 ) , 동성애자가 뉘우치고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부인되어서는 안 된다.

4) 교회는 자신의 동성애를 부끄러워하며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5) 동성애자들이 교회에 올 경우 그들에 대한 배타성으로 인해 교회에 적대감을 갖게 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누가 택함을 받은 자이며 누가 유기된 자인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뉘우치고 돌아서길 원하거나 자신의 병리를 치료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인간의 지혜와 능으로 불가능 할지라도)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6) 이를 위한 기독교적 차원의 연구소라든가 교단차원의 특수사역 팀을 만들어야 한다. 교회는 그들의 병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대책 또는 치유책에 대한 자체 메뉴얼을 갖고 있어야 한다.

7) 교회는 그들의 상처를 만지고 사랑하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들도 피해자들이다. 그들이 회개한다면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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