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르단으로 가는 일정인데 그 동안 우려했던 날씨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따뜻함을 안겨 주는 기적의 일상이었습니다.

약간의 구름이 아침 일출을 막았지만 그래도 새털구름이 하늘을 덮어 아침부터 포근한 하늘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는 나의 눈망울은 아쉬운 작별을 고하면서 그리운 마음으로 숙소를 떠났습니다.

뱃산 국경까지는 몇 번의 요단강 지류를 건너야 했습니다.

어릴 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고 찬송을 불렀는데 그때 죽음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매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몇 번의 요단강을 건너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나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천국)으로 이동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는 가벼운 생각을 하면서 죽음의 의미를 간단히 정리하며 국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으로 넘어가면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검색대나 건물이나 그리고 주위 자연환경과 사람까지도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에서 나오는 열기나 감각이 요르단 사람들에게는 희미해 보입니다.

요르단 가이드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수진 자매인데, 이제는 노련한 말솜씨와 카리스마까지 곁들어 있어서 사람이 이렇게 성장하면서 전문가가 되는 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나에 대해서 말하면서 처음 목사님을 대했을 때에는 말이 없으시고 점잖으셔서 가까이 다가가기가 매우 어려웠었는데 차츰 알아가니까 매우 다정다감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왜 나의 첫 인상은 차갑게 느껴졌을까? 아마 10년도 훨씬 전의 이야기이니까 지금은 좀 나아졌겠지 스스로 자신을 위안하면서, 인상 관리를 잘해야지 하며 내 자신에게 다짐 했습니다.

요르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방문 한 곳은 펠라 유적지인데 나도 처음으로 방문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우리나라 70년대의 모습과 같은 5일장이 그대로 재현되는 장면을 버스 안에서 구경을 하였는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풍경이라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펠라 지역은 예수님이 전도하러 다니셨던 데가볼리 지역에 속한 곳입니다. 데가볼리는 10개의 성읍을 이야기합니다. 펠라 지역은 그 중에 하나의 도시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예수님도 이곳을 방문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펠라 라는 지명이 성경에는 나오지는 않지만 이집트 투트모세 3세의 원정 기록에 언급되어 있으며, 룩소에 카르낙 신전의 있는 세티 1세의 기록에 보면 이집트를 대항하여 벧산을 공격하다가 세티 1세의 공격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67 년부터 시작된 제1차 유대인의 반란 중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유대 기독교인들이 이곳 펠라로 도망쳐 나왔다고 하며, 마가복음 13장에 기록된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서지 못할 곳에 서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라는 말씀을 붙들고 펠라로 도망쳐 들어갔다고 합니다.

당시 펠라는 비유대인 도시였기에 반로마 항쟁에서 살아 남았으며 6세기에는 기독교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1967년부터 발굴을 시작하였으며, 중동 전쟁으로 중단하였다가 1979년부터 다시 계속해서 발굴 작업이 한창인 곳입니다.

   
   
 

이곳은 로마식 기둥들과 비잔틴 극장과 교회 터 등 많은 유적이 계속 발굴되고 있습니다. 강도 호수도 없는 이 황무한 곳에도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 두 곳이 있어서 물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건이 되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은 생명수인 예수님이 계셔야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는 현장이었습니다.

펠라를 지나서 우리는 길르앗 산지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움직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길르앗 산지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때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이 땅이 기름진 땅임을 보고 자기들의 기업으로 배당해 달라고 요구해서 주어 진 땅입니다.

얼마나 기름진 땅일까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 산지를 탐방하는데, 갑자기 우리 앞에 이름 모를 노랑빛깔의 예쁜 꽃들이 온 산을 수놓고 있는 멋진 장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잠시 세워서 우리는 마음껏 꽃밭에 들어가 꽃향기와 아름다운 모습에 하나가 되어서 즐기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말 잊지 못할 자연의 절경을 하나 더 내 마음속에 각인 시켜 놓았습니다.

길르앗 산지의 산악지대를 지날 때마다 그 기기묘묘한 산들의 형상과 전경들이 요르단의 또 다른 매력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산악지대를 어느 정도 빠져 나왔을 때에 버스가 정차하고 우리 앞에는 그릿 시냇가가 실개천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비가 내려 그나마 흐르는 물이 있다고 했는데 이런 강을 와디라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바짝 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강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숨어 지내던 곳인데 까마귀를 통해서 떡을 공급해 주었던 곳입니다. 사방으로 숲이 울창하고 깊어서 엘리야가 숨어 지내기는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흘라 지역이 보입니다. 엘리야가 이곳을 지나다가 엘리사가 소 12겨리로 밭을 갈고 있을 때에 겉옷을 벗어던지고 그를 부르니 농기구를 불사르고 소 한 겨리를 잡아 백성에게 먹이고 엘리야를 따라 나섰던 곳입니다.

조금 더 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언덕에 오르면 엘리야의 고향인 디셉이 저 멀리 보입니다.

그곳에는 엘리야의 기념교회가 남아 있는데 찾아 가지는 못했습니다.

조금 더 지나다가 높은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깊은 계곡 가운데 물이 흐르는

얍복강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가 4 백명의 군대를 이끌고 자기를 맞이하러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두려움에 떨며 얍복강 가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씨름을 걸어오자 밤새 싸웠다고 하는 곳입니다.

결국은 허벅지 관절이 부러진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한 곳입니다. 그런 후에 형 에서를 만나서 내가 형을 뵈오니 하나님을 뵈온 것같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부러져야 할 것이 부러져야 내 인생이 변하고 인간관계도 변하게 됩니다.

그 얍복강을 바라보면서 나의 허벅지 관절은 무엇일까를 깊이 묵상하면서 언덕을 내려 왔습니다.

오전 중에 한 곳을 더 방문해야 했는데 바로 마하나임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쫓김을 받으면서 가나안으로 오던 도중에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데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브니엘 동쪽 10km 지점에 있는 곳으로 사울과 요나단이 불레셋 전투에서 전사한 후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국의 임시 수도가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후에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잠시 이곳에 피신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작은 마을로 남아 있는데 군데군데 집들이 지어져 있었고 이곳에 사는 자들은 이곳의 성경적인 역사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형들을 살펴보면서 야곱이 가나안땅으로 오는 노정이 평야가 아니라 험악한 산악지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얍복강도 평탄한 들판이 아니고 깊은 계곡이라는 사실을 보면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는지 성경의 배경을 더 깊이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천국 가는 길이 평탄하기만을 기대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과 성경이 야곱의 가나안 여정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 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을 이 지형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믿음의 길이 험하고 고달파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와 동행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켜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을 얍복강에서 만나 주시고 그의 고집과 아집을 다 무너뜨리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시는 이 믿음의 루트가 직접적으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점심이 늦어져서 배가 고프다는 아우성을 들으면서 어느 멋진 음식점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직도 잊지 못할 빵 맛 때문에 멋지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중동 지역에는 걸레 빵, 혹은 거지 빵이라고 여행객들이 부르는 서민들이 즐겨 먹는 빵이 있습니다. 그런데 갓 구어 온 이 빵이 어찌나 맛나든지 아직도 그 빵이 자주 생각이 납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전하는 말씀이 이렇게 맛이 있다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 말씀을 사모할 것이고 갈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맛난 빵처럼 맛난 말씀을 만들어 낼까? 를 고민하면서 계속해서 빵을 먹었습니다아직도 그 빵을 생각하면 내 말씀의 빵도 함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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