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사회와 청소년 기독교교육의 방향모색”이라는 주제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지난 4월4일 열렸던 2015년 한국기독교교육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송순재 박사(감리교신학대학교)가 “폭력사회와 인간성을 위한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주제발표를 했다.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폭력적인 방향으로 변모해 왔으며 현 시점에서 각종 수치로 보아(소위 갑질이 난무하는 사회적 현상이 대변해 주듯) 우리 사회를 폭력사회라 지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학교가 작은 폭력사회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폭력 사회라는 오명을 달고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교회학교 교육의 방향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송박사에 의하면 폭력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성을 위한 교육’을 회복해야한다는 것이다. 송박사가 주장하는 구체적인 인간성 교육의 내용을 살펴본다.
폭력사회와 인간성을 위한 교육 /송순재 박사
청소년 폭력의 실태와 대책: 1990년 대 초부터 공론화되기 시작했던 학교 폭력의 문제는 2012년 현재 정부와 관련단체의 많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더욱 심화되었다. 박효정(한국교육개발원 학교컨설팅연구실장)이 2012년에 보고한 연구에 의하면 심화된 학교폭력 실태의 특징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①학교 폭력 최초 발생의 저 연령화, ② 중학교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 ③ 정서적 폭력의 증가 - 이 행태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짐, ④ 가해자와 피해자의 악순환, 양자의 구분이 불분명해짐, ⑤ 학교폭력의 집단화 등을 지적했다.
관련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이 최근 10여 년 간 더욱 심화된 원인은 여섯 가지정도로 요약된다. ① 학교폭력의 저 연령화 집단화 흉포화가 심화 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과 관련제도 미흡, ② 학부모가 자녀 교육에 관여할 기회가 적음, ③ 인성과 사회성 함양을 위한 교육적 노력이 미흡함, ④ 인터넷 게임 영상 매체에서 다루는 공격적, 폭력적 내용이 미치는 영향,⑤ 가정폭력에 노출된 학생의 경우, ⑥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 환경적 요인 등이다.
이러한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의 대책은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정부의 대책과 연동하여 관련 주체들(교사와 학부모 등)이 기울여야 할 적극적 관심과 참여의지, 반성과 실천 등이 부족했다. 한마디로 지속적이지 않은 정부의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교육부에 비해 16개 교육청들의 경우 좀 더 현장에 부합하여 적절하게 대처한 사례들이 있다. 그 기본 방향은 만난-소통-친교를 바탕으로 학교 내에서 학생들이 ‘자치활동’을 통해 ‘건강한 학교문화’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서 지난 몇 해 동안 시도된 참신한 사례들이 있다. 예를 들어 평화로운 교실 공동체 만들기, 연극, 사회복지사의 상담활동 등을 통해 거둔 성과들이다.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 그러나 송박사는 좀 더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폭력을 양산하는 토양 자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성찰을 요하는 것으로, 현 상황은 우리 교육의 방향이 기본적으로 입시경쟁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잘못 설정되어 있는데서 기인하며 따라서 그 방향을 정위하지 않는 한 우리는 늘 뒤따라가면서 허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왜 그런가? 입시경쟁교육에서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중심 주제가 되고, 학생들 각자의 내적-심리적 상황과 그들이 겪어내고 살아내야 하는 삶의 세계, 또한 학생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양상이 어떻고 또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를 잠재적 ‘적’으로 보는 교실 안에서 사랑이나 우정 같은 덕목은 추방된 지 오래다. 이곳은 긴장과 갈등 나아가서 폭력의 싹이 자라나는 이상적인 토양이다. 경쟁에서 낙오해 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자라나는 패배감과 열등감은 머지않아 ‘묻지 마’ 행패라는 변형물로 나타날 것이다. 삶의 이유와 가치에 대해 묻지 않는 교실은 저열한 동물적 욕구나 인간의 권련 본능을 적절하게 조율하거나 제어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현 상황은 이 잘못된 구조에 기초하여 “뿌린 대로 거둔 것”일 뿐이다. 학교교육의 중심축이 입시경쟁교육에 놓여 있는 한 인성교육은 호전 될 수 없다. 중심축 자체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절실하다.
학교교육의 패러다임이 ‘삶을 위한 교육’으로 전화되어야만 한다. 삶을 위한 교육이란 학생들의 개성적 세계, 머리와 가슴과 손의 어우러짐, 현재 향유해야 할 행복, 구현해야 할 가치, 체험적 일상생활, 함께하는 삶 등의 주제와 관련된 교육을 뜻한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 삶이 보살펴진다는 느낌,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희망을 내부로부터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해 ‘인간성을 위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는 21세기를 위한 교육에 관한 유네스코 테스크 포스의 명제(Jaques Delors)에서 제시한 ‘교육의 네 기둥’ (① Learning to Know, ② Learning to Do, ③ Learning to Live together, ④ Learning to Be) 가운데 마지막 명제인 Learning to Be 즉, ‘존재하는 것 배우기’이다.이는 삶의 기법을 배우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것으로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존재하는 길을 체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하는 길에 대한 교육의 차원이 없이 ‘인간성의 완전한 구현’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Learning to Be”라는 명제가 지시하는 방향이 우리 학교 교육의 중심축이 되지 않는 한 학교폭력사태는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핵심은 학교 토양 자체가 폭력이 자랄 수 없는 토양이 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인간성을 위한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귀속되는 주제이다.
송박사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교육의 중심축이 입시경쟁에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청교도 거장 존 오웬이 말했듯이 참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추구하는 인간론이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교육의 중심축은 무엇인가? 참된 인간으로 존재하는 인간창조의 참된 목적을 가리키는 것이 중심축에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패러다임과 유사하게 경쟁가운데 살아남는 성공의 기법을 전수하는 데 머물러 있는가? 폭력사회를 고칠 수 있는 핵심역량이 바로 기독교에 있음을 알고 교회 교육의 중심축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