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당에서 열렸던 한국기독교 교육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이재영원장이 학교폭력에 대한 회복적 접근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주제발표를 했다이재영 원장은 피해자를 위한 회복적 정의 개념이 폭력 사회를 치유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주장했다이원장의 연구를 살펴보자 

지금까지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대부분의 처방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집중하는 것이었다.이러한 과정에서 학교폭력의 최대 피해자이자 직접폭력의 대상인 피해자의 경우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또한 가해학생의 경우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지만 그 반성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피해학생이나 그 가족을 향하기보다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자신에게 처벌을 주는 주체가 되는 학교나 경찰법원 등 사법기관을 향하기 쉽다가해학생이 느끼는 반성은 자신의 행동이 야기한 피해에 대한 인정에서 기인한 다기 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과 더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현재와 같은 학교폭력 해결방식의 더 큰 근본적 문제점은 가해학생으로 하여금 처벌을 피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변명이나 변론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게 만들고 나쁜 행동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역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점이다진정한 책임은 인정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그러나 현재의 사법제도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처벌과 금전적인 불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명백히 하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과 잘못에 대해 인정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오히려 스스로 잘 변호하는 것을 권장하고 이는 범죄에 대한 내성을 강화시키는 치명적인 역효과를 낳게 된다.

학교폭력의 문제는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학교폭력은 가정의 문제이고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문제이며 학교와 가정을 아우르고 있는 지역 사회의 문제이다또한 어쩌면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가 투영되어 나타나는 우리시대의 비극일 수도 있다사회는 계속해서 학생들의 안전을 기대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끈임 없이 무한경쟁의 장으로 이끌어간다이처럼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자체가 매우 불행한 일이다하지만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좀 더 건강하고 교육적이라면 학교폭력의 제2의 피해나 가족과 학교지역사회의 고통이 줄어 들 수 있을 것이다학교폭력의 처리과정에서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과 그에 따른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필요를 살펴보고 우리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 보고자 한다.

▲ 이재영 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회복적 정의는 범죄와 처벌에 대하여 전통적인 관점과는 전혀 다른 이해와 철학으로부터 출발한다회복적 정의는 전통적인 사법에서 정의하는 범죄의 개념처럼 어떤 법을 어겼기 때문에 응당 이러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응보적 관점이 아니라 범죄는 관계를 깨트린 것이고 따라서 어떻게 그 깨어진 관계와 피해를 회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는 범죄를 국가가 규정한 룰에 대한 침해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해를 끼친 행위로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트린 것으로 이해한다또한 회복적 정의는 사법절차의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그 범좌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다시 말해 피해자와 가해자그리고 주변사람 더 나아가 지역사회 등 어떠한 범죄와 관련하여 영향을 받는 사람들 모두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된다는 뜻이다회복적 정의는 이러한 관련자들 가운데서 범죄로 인해 뒤틀어진 관계를 바로 잡아 화해를 시도하고 정상적 관계를 재확인시켜 주는 해결책을 강구하는 과정에 참여시킨다단지 참여뿐만 아니라 범죄로 인해 잘못된 결과를 올바르게 정정하는 책임을 갖게 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상식으로 인식돼온 개인 간 분쟁해결의 장인 사법시스템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서구식 재판제도에서는 피해자의 여러 가지 의문과 만족은 소외되고 사법기관과 가해자 사이에서 죄와 처벌을 찾는데 초점이 맞추어 진행된다결국처벌을 중시하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전정한 의미의 만족이나 화해정신적 치유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강력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범죄나 재범률 증가 등 전혀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그 외에도 막대한 재판비용과 시간의 소비소송의 증폭과 법률전문가 주도의 문제해결유전무죄 무전유죄전과자의 사회적응의 어려움국가예산의 사용증가 등 여려가지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현 서구식 사법제도의 정의는 응보적 정의 개념에서 출발한다응보적 정의가 누가 범인인가?”, “어떤 죄를 범했는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회복적 정의는 누가 피해자인가?”, “어떤 피해를 입혔는가?”,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이렇게 회복적 정의와 응보적 정의 사이에는 분명한 시각차이가 나타나며 이러한 이해의 차이는 우리가 범죄와 정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화를 요구한다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영향을 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과거 씨족사회를 형성하며 살았던 전통사회의 전통에서부터 오늘날의 사법제도의 문제점으로 등장한 피해자 권익운동 등 다양한 영향에 의해 회복적 정의가 등장하게 된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회복적 정의의 패러다임은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

성경전체의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하나님을 공의(公義)의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공의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의로운 것을 의미한다그렇다면 잘못한 사람을 벌주고 잘한 사람을 칭찬하면 되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모세를 통해 전해온 이스라엘의 율법을 새롭게 설명하시면서 전에는 미워해도 되는 원수까지도 이제는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샬롬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예수님 사역의 최종목표는 죄인 된 인간의 구원이었고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었다하나님도 징벌과 처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하지만 하나님의 처벌의 목적은 샬롬의 회복에 기초하고 있다샬롬은 평화와 화해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정의의 개념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정의의 실천은 잘못된 사람을 징벌하고 내어 쫓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화해와 샬롬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의 법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준 기독교의 샬롬과 언약 개념이 오늘날의 응보적 사법으로 변질된 이유는 바로 기독교가 국가의 종교가 되면서부터이다콘스탄틴 황제이후로 로마에 의해 더 이상 핍박받는 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를 오히려 핍박하는 종교가 되면서 기독교의 강제적인 포교는 시작되었고, 11세기의 십자군 전쟁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그 소용돌이 속에서 중앙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사법의 주체가 국가로 바뀌게 되었고 국가에 반역하는 행위를 단두대와 같은 강력한 처벌을 통해 통제해 나가게 된다결국 거의 모든 범죄행위에서 피해자가 아닌 국가가 피해자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고 가해자와 국가 사법기관 사이에 공방을 벌이는 현재의 사법제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이제 국가가 중심이 된 응보적 정의 개념에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회복적 정의 개념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 단체사진

 

회복적 정의 실천 프로그램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특별히 소년사법에서 매우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최근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들은 형사제재 위주의 사법절차에 새로운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이미 1990년대부터 북미호주 및 뉴질랜드를 비롯하여 유럽에서는 회복적 패러다임을 소년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삼아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있다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 소수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첫 번째 회복적 정의의 실천 프로그램으로 기록된 엘마이라(Elmira, Ontario) 사건은 이 후 수많은 피해자-가해자 조정/화해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게 된다엘마이라 사건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74년 어느날 캐나다의 작은 도시 엘마이라에서 수십 군데의 집을 턴 혐의를 받은 두 명의 십대 용의자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그 당시 담당 재판관은 그 지역의 교정위원을 맡고 있던 메노나이트 교도인 마크 얀치(Mark Yantzi)와 데이브 월트(Dave Worth)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여 두 소년 용의자들에게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 사건을 해결할 것을 판결하였다단 한 달 동안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시 법정에서 최종판결을 받는 조건이었다그 두 소년 용의자들은 교정위원인 마크와 데이브와 함께 자신들이 턴 집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피해자들과 대면해야 했고 그들의 피해와 고통에 대해서 들어야 했다그 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며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수 있을지를 묻기에 이르렀고 봉사활동이나 현금배상 등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에 책임을 지게 되었다실제로 몇 집은 이들이 찾아와 사과한 것만으로도 이 청소년들을 용서해 주었고그 두 청소년은 다시 마을의 구성원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처벌을 내리기 위한 심리보다는 청소년들에게 회복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법적 처벌보다 더 효과적인 선도와 예방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최근 한국에서도 소년법 개정 등의 이슈와 맞물려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도입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어 왔다. 2007년 11월 제4차 개정 소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2008년 6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여기에서 회복적 정의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개정 소년법 제25조의 3 “화해권고” 규정이다이 규정은 재판절차에서 판사가 당해 소년으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배상 등 화해를 하도록 권고할 수 있고그 결과를 보호처분 결정시에 고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극 개정 소년법은 화해권고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의 요구를 고려하고 당사자 간의 자율적 문제해결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회복적 정의의 이념을 부분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회복적 정의 실천 모델로 이행되기에는 많은 보안이 필요하다특별히 고질적인 학교폭력의 현장에서 성경의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회복적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준비된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기독교사의 역할이 절실하다이원장의 주장처럼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생활교육을 통해 회복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폭력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또한 이러한 일들을 감당해 내는 샬롬의 일군들을 키워내는 것이 폭력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사명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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