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 경주의 선교후원교회포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4월의 단상  /천헌옥

 

4월이 지나간다.

엘리엇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그런 그의 시가 예언이 되었다.

잔인한 달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그 4월이 참으로 힘겹게 지나간다.

 

4.3제주 사건이 그랬다.

남쪽만의 건국을 위한 선거를 인정하지 않던

남로당과 불만 세력의 봉기, 그들을 불순세력의 폭동으로 규정

무차별적인 진압의 틈바구니에서 죄없는 많은 민초들이 쓰러져갔다.


4,19 역시 잔인한 4월의 슬픈 추억이.

부정부패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섰던 학생들

총탄 앞에 힘없이 쓰러지던 날

그들의 함성은 지금도 무덤을 넘어 들리는데

우리는 아직도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4,16은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수많은 의문을 남긴 세월호의 침몰,

유병언의 의문의 죽음, 대통령의 침묵 7시간,

꽃다운 학생들을 백성들의 가슴에 묻던 날

아마도 4월이 되면 피 토하는 울분을

여러 수십 번 반복하여 쏟아내도 치유되기 어려운...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이던가?

 

자연은 잔인한 겨울의 칼바람을 이겨낸

승리의 꽃을 가지 가지마다 찬란히 펄럭인다,

예수는 무덤을 깨트리고

다시 사셨음을 전함으로

4월은 부활이고소망이고 생명이라 하는데

세상만 4월을 잔인한 달이라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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