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오해, 그리고 진실


박은조 분당 샘물교회 담임목사가 지난 7월 23일, 신도 23명이 피랍된 것과 관련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인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십자가 고통당하사 버림받고 외면당하셨네….”지난 8일 경기 분당 샘물교회 2층 본당. 700~800여 명의 교회신자들이 무대에 선 전도사의 찬송가를 듣고 있었다. 피랍 21일째. 원래대로라면 이날은 수요예배가 있었겠지만, 피랍이 알려진 날부터 시작한 매일 저녁 8시 집회도 21일째를 맞고 있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신도들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교회당엔 누적된 피로와 고통의 공기만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기도하던 이들은 때때로 손수건이나 화장지를 꺼내 눈물을 닦았고, 장년의 한 남성 신도는 눈물도 메마른 듯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피랍자 가족이 만든 UCC를 영어와 아랍어로 번역하고 있다”는 등의 공지사항이 있은 뒤, 이번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박은조 담임목사가 교단에 올라섰다. 이날 제시한 성경구절은 열왕기 39장. 동료들을 모두 잃은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하나님에게 “자기의 생명을 거둬달라”고 애원하며 기도하는 대목이다. 박 목사는 말한다. “이제 3주가 지나 4주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웅적 죽음을 위해 아프간 땅을 밟은 게 아니었습니다. 현지 사역자를 뒷바라지하고 격려하기 위해 간 사람들인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희를 용서하소서.” 교파 내에서 상당한 개혁적 입장그는 기도에 응답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한 대목을 인용하며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으니 금식은 하지 말자”고 말했다. “피랍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그들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니 미안해서 먹을 수 없었고, 피랍가족이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는 걸 보면서 또 자연스럽게 금식하게 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먹고 자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기도시간. 다시금 교회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피랍자 가족이 호명되고, 신도들은 그들을 껴안고 다시 울면서 찬송을 불렀다. CCM 가수 ‘소울’ 씨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밤 10시 30분 무렵, 21일째의 집회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절망의 터널은 언제까지 계속될까.1층 사무실. 기자는 박은조 목사와 샘물교회에 대해 취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듣던 교회 언론담당자는 “무엇을 취재하는지 알겠다. 질문내용을 팩스로 보내라. 논의해보고 취재에 응할지 결정하겠다”며 문을 닫고 들어갔다. 불신. 인터넷에 올라오는 샘물교회에 대한 비난여론도 그렇지만, 언론에 대한 불신도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인터넷 검색창에 ‘박은조’와 ‘뉴라이트’라는 검색어를 치면, ‘박은조 목사의 진실’과 같은 제목을 단 블로거들의 글이 쏟아져나온다. 네티즌들은 “박은조 목사는 뉴라이트 계열의 기독교단체의 공동대표이고, 이 단체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데다, 단체의 다른 공동대표는 불법로비자금을 받아 사법처리를 받았다”며 공분하고 있다. 피랍사건 후 쏟아지는 네티즌들의 비난여론에 샘물교회는 홈페이지를 닫고 피랍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요청 제목만 게시하고 있다. 분당 샘물교회에서 신도들이 피랍자들이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주일예배를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이번 사건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실제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은조 목사는 뉴라이트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독교개혁매체인 ‘복음과 상황’, ‘뉴스앤조이’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매체들은 기독교 뉴라이트 진영에 날을 세워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해하기 힘든 행보지만, 박 목사는 “지금은 국민들에게 엎드려 용서를 빌 때”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2004년 11월 서경석·김진홍 목사가 만든 단체가 ‘기독교사회책임’이다. 그때 표방한 내용이 교계의 뉴라이트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고, 공동대표로 박 목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뉴라이트 전국연합과는 관계 없는 단체이고, 지금은 공동대표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관계자의 말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 홈페이지에는 박 목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관계자는 “1차적으로 사실관계가 맞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댓글을 다는 등의 대응을 하고 있다”며 “확실한 것은 우리와 관계 없다는 것이고, 그 분 개인의 활동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기독교사회책임의 반응도 비슷하다. 이 단체의 실무자는 말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명단에 있었는데, 그 뒤로는 빠진 것으로 안다. 우리 단체의 공동대표도 아니고 잠깐 들어왔다 나가신 분과 관련해서 우리가 입장을 표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

도대체 무슨 까닭이 있었던 걸까. 박 목사는 왜 뉴라이트 단체에 관여했다가 그만둔 걸까.

“사실 (뉴라이트의 주도적 인물인) 서경석 목사와 김진홍 목사, 그리고 박 목사는 20여 년 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서 목사가 경실련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때는 진보적 입장이었지만, 도움은 복음주의계열 쪽에서 받았다. 박 목사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뒤 서 목사는 입장이 바뀌었다. 뉴라이트나 기독교사회책임이 출범할 때 참여 요청을 받았지만 봉사나 헌신을 넘어선 정치적 특정 이데올로기 참여운동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에서 박 목사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구교형 평화누리 목사의 말이다.

뉴라이트와 박 목사의 관계에 대해 교계 내에선 거의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기독교사회책임출범 당시, 사회적으로 신망받는 목사들의 이름을 포함시켜 팩스로 돌리는 사회단체에서 익숙한 ‘관행’ 때문에 비롯한 ‘오해’라는 것이다. 백찬홍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위원은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증언한다. “당시 교파를 초월해서 만들어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나 박 목사 등이 이 단체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단체 차원에서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결정해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그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번에 박 목사를 뉴라이트와 연결지어 비판하는 것 같다.”

박 목사의 독특한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박 목사는 예장고신, 즉 ‘예수교장로회 고려신학’이라는 개신교 내 한 갈래의 입장을 갖고 있다. 개신교 내에서 ‘고신’은 보수주의로 분류되고 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부분은 여기서 보수주의란 통상적·정치적 의미의 보수, 진보 구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박 목사는 헌납할 재산도 없다”

신사참배를 강요한 일제시대 대부분의 기독교도들은 그것이 국가의식이라고 해서 굴복했다. 하지만 이 ‘고신’분파는 끝까지 우상숭배라며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해방 후 그것을 하나의 긍지로 삼았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는 여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종교적 의미의 보수주의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목사에 대한 비난여론에서 단군상이나 장승을 자른 기독교 행태 등이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 목사의 경우 ‘고신’ 내로 한정해본다면 상당한 개혁적 입장이라고 교계인사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박 목사가 적을 두고 있던 영동교회 자체가 보수주의적 입장이면서도 사회현실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독특한 전통을 갖고 있었다는 것.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벌여온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이나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이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분당샘물교회 박 목사가 영동교회 담임목사를 하다가 분당샘물교회로 ‘분립개척’한 사례도 교계 내에서는 지금도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 목사는 평소 “건강한 교회로 남기 위해서 1만 명 모이는 대형교회보다 1000명 모이는 교회 10개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또 목회자들이 받는 월급을 담임목사인 자신을 포함하여 100만 원으로 통일하는 조치를 단행한다. 100만 원에 가족 1인당 19만 원을 추가하는 형태의 월급체계다. “사실 가족들을 다 분가시킨 담임목사보다 부목사나 일반 목회자가 더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이유다. 보통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가장 많이 가져가는 구조는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이번 피랍사건을 계기로 대형교회에서 빈번한 비리문제와 박 목사를 연결시켜 거론되고 있지만, 박 목사의 이런 ‘행적’은 그런 비판의 과녁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샘물교회에서 만난 한 신자는 “인터넷에서 박 목사의 재산을 헌납하라는 댓글을 읽었는데, 박 목사는 헌납할 재산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기독교’의 시청 앞 3·1구국기도회 같은 행사에도 그는 비판적이었다. 이 행사를 반대하는 141인 목회자 성명에 그는 참여하고 있다. “물론 정서적 입장에서 한기총 쪽에 가까웠을 수는 있지만 시청 앞 성조기 행사 등이 교회 목사나 교인으로서 할 행동이 아니고, 그럴 때 일수록 더 자중해야 할 때라고 말해왔다.” 이승규 뉴스앤조이 기자의 말이다. 그는 이번 피랍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박 목사와 샘물교회와 관련한 교계 뉴스를 취재해왔다.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박 목사가) 교회에 대한 네티즌의 비난여론에 대해 공감해왔고, 그래서 복음과상황, 뉴스앤조이의 이사장을 맡았다. 때로는 ‘뉴스앤조이 등의 교회비판’이 과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보였지만, 편집방향에 개입한 적은 없었다.”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 회복할 때”비슷한 이유에서 박 목사는 한민족복지재단의 이사장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라크에서 고 김선일씨가 피살된 당시, 그의 죽음을 순교로 포장하며 공격적 선교를 정당화하는 한국기독교 진영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번 사건이 일어났을까. 다시 말해 왜 하필 박은조 목사와 샘물교회가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된 걸까. 정운형 교회개혁연대 사무국장은 “샘물교회나 한민족복지재단의 경우, 그래도 그중에서 제일 잘하는, 봉사정신이 제대로 구현된 유형이 아니었나 싶다”며 “네티즌들은 공격적 선교의 연장선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듯하지만 아프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진정성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분당 샘물교회 봉사자들이 출국 전에 찍은 단체 사진.
“‘봉사냐 선교냐’라는 쟁점이 있는데, 교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봐야 한다. 심지어 어떤 곳은 군대에 가도 ‘파송예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군대 가서 전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군대를 보냈으니 잘 다녀오라는 의미다.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여러 단체가 있는데, 어디 가서 티를 내지는 않는다. 선교냐 봉사냐는 것은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불분명하다. 성경을 뿌리거나 전도·안수하는 형태의 선교행위는 적어도 요즘엔 거의 없다.” 뉴스앤조이 이 기자의 말이다. 그렇다고 공격적인 선교를 하는 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백 연구위원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축제를 진행하려다 물의를 일으킨 ‘인터콥’의 경우가 단적으로 비판을 받을 만한 선교행태라고 말한다. 그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자. “인터콥은 기독교인이 적은 국가, 특히 이슬람 지역에 대한 공격적 선봉대 역할을 하는 보수적 기독교 단체다. 이 단체가 베들레헴에서 평화대행진 행사를 진행했는데, 그곳이 예수탄생지이다 보니 이슬람 쪽도 관광객을 환영하는 입장이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화해를 위한 행사라는 명분이 통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정부가 반대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이필완 목사는 복음주의적 입장과는 또 다른 에큐메니컬(사회적 참여를 중시하는 기독교 내 흐름)의 입장이다. 그는 “박 목사의 위치에서 뉴스앤조이와 같은 개혁적인 매체에 설사 이름만 빌려줬다고 하더라도 대단한 일”이라면서도 “기독교가 정신차리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랜드 사태, 김홍도 목사의 이명박 지지 등 기독교와 관련된 부정적인 사건이 많았습니다. 양동이에 물을 담으면 어느 순간 넘칩니다. 그 넘치는 순간 이번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어느 순간 교회가 자정능력을 잃은 것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그런 비난여론을 못 느낀다는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이 전부 ‘안티’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회로부터 교회가 고립되고 있는데, 교회는 그런 외부의 비판에 귀를 닫고 자신을 키우는 데 급급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정체된 것이 10년 정도 됐습니다. 위기를 느꼈을 때 자정능력을 발휘에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해온 방식처럼 자기들끼리 모여 대형 집회하는 식으로 돌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박은조 목사가 공격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교회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회적 비난의 화살은 계속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번 아프간피랍 사태와 관련, 여전히 많은 부분이 의혹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 목사와 샘물교회에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한국교회의 거듭남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그 누군가의 ‘숨은 뜻’일지도 모른다. (출처:경향신문뉴스메이크)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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