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웨는 왕이십니다 (Yhwh is king)”. 구약 특히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연구 분야의 권위자 마크 헤밀턴(Mark W. Hamilton)교수의 강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헤밀컨 교수는 미국 텍사스 주에 위치한 애빌린 기독 대학교(Abilene Christian Univ.) 구약학 교수이다.

그는 지난 417일 서울신학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제98차 한국구약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해외석학초청강연자의 자격으로 야웨 말락 시편에 대한 재고: 수행적 접근 방식(The Yhwh malak Psalms Reconsidered: A Performative Approach)”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영어로 진행된 강의였기에 기자의 사역 임을 밝히며 신학전문 용어들을 평신도의 관점에서 풀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 학회가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연구는 구약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잘알려진 구약학자 지그문트 모빙클(Sigmund Mowinckel)과 같은 사람은 히브리어 야웨 말락(Yhwh malak)에 대한 번역을 야웨가 왕이 되었다(Yhwh has become king)"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헤밀턴 교수는 야웨 말락을 야웨는 왕이시다라고 해석하면서 강의를 진행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왕이 되는 것왕이다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고대근동지역의 전통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당시 왕조들은 그들의 왕권을 신성한 절대 권력으로 만들기 위해서 종교적 개념과 요소들을 사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왕들은 신이 되었고 그 신이 그 지역과 사람들의 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야웨의 왕권에 대한 개념은 결코 이런 정치적 전략의 결과물이 아니었다고 헤밀턴 교수는 주장한다.

▲ 마크 헤밀턴(Mark W. Hamilton)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수행적 방법론(permormative approach)

그는 시편93-100을 해석하면서 이 본문들이 수행적 특징(performative features)”들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수행적이란 말은 어떤 고착된 존재가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실행되고 있는 과정 가운데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연극 시나리오가 연극이 공연되는 무대에서 완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 악보가 악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진정한 악보의 모습은 연주자에 의해서 그 악보가 연주되는 공연현장에서 나타난다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93-100편에 나타난 종교적 예식과 예전의 내용들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이며 동시에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동기, 감정, 생각, 행동등의 상호 교차 관계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웨 왕권 시편의 이야기화(Emplotment)

이런 수행적 관점에서 시편93-100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 부분은 시편 90편부터 시작되는 소위 시편 제 4권에 속해 있는 시편이다. 이 시편들은 시편 제 4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90:1)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보여주기 위한 내용들이다.

하나님이 왕이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편은 그 내용을 이야기로 구성한다. 하나님이 왕이심을 법적 조항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이야기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편이 이야기화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시편 90편을 시작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 시편93-100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의 줄거리로 이야기가 구성되어있다. 그 줄거리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선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1. 혼돈과의 싸움(Chaoskampf) 줄거리: 다른 고대근동의 전통들처럼 시편에서도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93:3) 라고 하면서 마치 창조이전의 어떤 큰 세력이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이런 혼돈의 세력들은 창조자가 아니다. 시편954-5절에 보면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면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라고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왕권을 세밀하게 선포한다. 이러한 내용은 고대근동의 혼돈과의 전쟁 신화와 구별되는 시편의 독특한 요소이다.

98:7-9의 말씀은 이렇게 야웨의 왕권을 이야기한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신성과 바다로 대표되는 원시적 힘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하나님과 혼돈의 관계는 고대근동신화가 이야기하는 것과같은 서로 전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시편에 나오는 혼돈을 의미하는 원시적 물은 야웨 왕권을 축하하는 존재이며 야웨의 왕권에 근거해서 심판을 받는 존재이다.

혼돈을 다스리는 야웨의 왕권은 시편 94편에서 억압받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나타난다. 왕이신 하나님은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는 혼돈의 세력을 징벌하신다. 하나님의 백성과 구별되는 뭇 백성(94:10)” 즉 이방인들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왕권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백성들을 곤고하게 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구도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을 핍박하는 애굽 백성들이 사이에도 적용된다. 힘 없는 자들을 핍박하는 이러한 뭇 백성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왕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2. 진정한 영웅은 인간왕이 아니라 야웨라는 줄거리: 고대근동의 신화 전통은 신을 이용하여 인간 왕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편의 말씀은 인간 왕이 영웅이 아니라 야웨만이 진정한 영웅임을 선포하고 있다.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 (시편 97:6).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시편 98:2). 영광을 받고 명백히 드러나는 분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신화를 이용해서 인간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없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99:1) 야웨의 다스리심 즉 왕권을 선포하며 진정한 영웅은 인간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거듭 노래하고 있다.

3. 인간왕의 부재에 관한 줄거리: 진정한 영웅은 인간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 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 문제는 시편의 기록연대가 왕조시대 이후이냐 이전이냐는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 헤밀턴 교수는 기록연대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하며 그 기록연대를 확정하지 않고 열어 두면서 이것을 기록연대의 문제가 아닌 왕의 역할에 대한 문제로 풀어나갔다.

▲ 단체사진

시편 93편에서 100편의 본문이 말하는 인간 왕은 기도자들의 리더로서의 왕이다.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자들을 대표하여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자가 바로 인간 왕이다.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왕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고 영웅이 되려는 시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진정한 영웅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왕권을 찬양하고 인정하는 지도자는 힘이 없어 핍박당하는 자들을 위해 보수자가 되시며 심판자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일군이 되는 지도자이다. 지도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자들의 리더이다. 지도자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자이다.

시편의 말씀은 참된 지도자들이 없어서 절망에 빠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말씀한다. 지도자의 부재를 한탄하기 전에 야웨이 왕권을 인정하고 찬양하며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희망을 가져보라고 권고하고 있다. 야웨의 왕권을 찬양하며 따르는 그 사람이 바로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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