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길 목사의 특별기고에 대한 입장

본지에 기고되는 논문이나 나의주장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는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을 알려드립니다. -코닷-

▲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고명길 목사님 좋은 연구했다고 생각합니다. 검토해볼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려 박사는 동란중 월남하여 19501218일 부산에 도착했고, 1221일 제3육군병원 의사로 취직했고, 1224일 삼일사라는 정보기관에 잡혀가 1주일간 구금 중 조사 받고 1231일 풀려났는데, 장기려 박사는 복음병원 시작을 1951.6. 20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에 근거한 것입니다.

장기려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1951620일 한상동 목사와 전영창씨가 새 일거리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 ( 노르웨이 의사가 의원이라도 시작하면 돕겠다는 뜻을 전달받고 전영창씨가) ... 한목사와 함께 그런 의원을 해 줄 수 있느냐고 의논하러 온 것이었다. 불우한 사람들을 치료해 준다는 것은 내가 의사가 되려고 결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서약한 일이다. 나는 6월말로 제3육군병원을 그만 두었다. 영도에 있는 제3교회 창고가 복음병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의사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는데, 두 달 후에는 전시피란 서울의대교수로 부산에 와 있던 전종휘 박사가 도와주었다. ... 직원은 총무인 전영창씨, 서무,경리,약국을 맡아 본 오재길씨, 간호원 김재명씨, 김순리씨, 이금숙씨, 운전사 김정일씨 등 11명이었고," (장기려, 생명과 사랑, 120, 장기려, 장기려회고록, 52-53). 

이상의 장기려의 회고록에서는 1951620일을 병원 시작으로 말하고 있고, 그 이전의 차봉덕 의사나 팽숙희 간호사에 대하여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19516월 이전의 차봉덕 의사로 시작된 진료소와 1951620일 장기려를 의사로 시작된 후일의 복음병원 간의 관계입니다. 후자가 전자의 계승이라고 본다면 고명길 목사님의 지적이 옳고, 단절설, 곧 후자의 것을 새로운 출발로 본다면 장기려의 진술이 옳습니다.

그런데 복음병원 설립자를 장기려 한사람으로 보는 것은 옿??않다고 봅니다. 실제적으로 전영창씨는 두 가지 경우의 주도적인 인물이었고, 과히 설립자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상동 목사님도 설립의 동료로 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명길 목사님의 제안으로 좀더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기존의 주장을 고집하기 보다는 열린 자세로 더 검토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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