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에 학교법인 고려학원 제26대 이사장으로 강영안 장로가 취임하였다. 강 이사장은 이례적으로 설교와 같은 긴 취임사를 했다. 철학자다운 취임사였다. 거기서 그는 자신과 고신과의 관계, 고신의 신앙과 정신, 고신이 당면하고 있는 일들, 자신이 챙기고 추진해야 할 일들, 그리고 이제 우리 고신인들이 자신의 정체를 다시 발견하고 하늘을 높이 나는 독수리처럼 비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피력하였다.

특별히 그는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는 물론 산하의 각 기관들이 어떤 가치관과 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할 것인가를 크게 강조하였다. 곧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구현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가 선지자가 말한 대로 하나님나라의 가치인 정의와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로 살아야 할 것을 자신의 중요한 기준과 목표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이사장으로서의 직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들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고려학원 산하 기관들이 지녀야 할 핵심적인 정체성은 기독교적 정체성임을 확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기관들이 되어야 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필수적으로 따라야 할 것은 세 기관들(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신대원)의 구조개혁임을 확인하였고, 이사회가 이를 강력히 견인할 것임을 시사하였다.

우리는 이사장의 이런 주장과 의도하는 바들을 환영하면서 이사장과 이사회, 그리고 고려학원 산하 기관들에 대해 고신인들이 바라고 있는 바를 크게 세 가지로 묶어 천명하려 한다. 물론 우리의 천명하는 바가 이미 이사장의 취임사에 대부분 포함돼 있지만 그 내용들이 워낙 많고 포괄적이어서 이를 좀 더 분명하고 단순하게 해서 추진력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이사회는 물론 산하 기관들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운영하여 신뢰받는 학교법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영안 이사장의 취임사를 읽으면서 크게 기대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국가나 사회 그리고 단체나 기관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고의 장애는 바로 상호불신이다. 그런데 교회가 직영하고 있는 고려학원 산하의 기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돈이 오가는 복음병원을 둘러싸고 재정비리에 대한 의혹과 의문이 그칠 날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병원을 이용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하였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부도가 나고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사태로까지 추락하는 치욕을 겪었다. 당시 기독인이 아닌 관선 이사장으로부터 고신의 지도자들은 회개해야 합니다.”는 책망을 들어야 했고,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된 이유는 재정문제가 아니라 윤리문제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신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내걸고 거룩을 브랜드처럼 자랑했던 고신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기가 막힐 일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리고 비리에 대한 의혹이나 단순한 소문까지라도 사라져야 한다. 이는 의심하지 말라든가 헛소문 내지 말라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투명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그러면 신뢰가 쌓이게 되고 소모적인 논쟁과 소문들이 사라지게 된다. 강 이사장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공동대표로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 아마 그의 이런 개인적인 경력이 학교법인에 대한 신뢰를 상당 부분 보충해줄 것이다.

이제 이것이 적극적인 지도력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학교법인 산하기관들이 깨끗하고 정의로운 기관들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며 또 그럴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대한다. 물론 악을 소멸하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 이사장이 선임되기 전 이사장 되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 쪽에서는 윤리운동을 하던 그런 사람이 이사장이 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하니 짐작할만하다.

그러나 이런 저항에 결코 약해져서는 안 된다. 거룩은 번영에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이다. 큰 손해를 보고 심지어 망하는 일까지 일어난다 해도 거룩을 지킬 수 있다면 그런 손해는 결코 손해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공과 물량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거룩을 위해 세상의 영광과 성공을 포기하는 데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만일 학교법인 고려학원을 세상의 그것들처럼 운영할 수밖에 없다면 하루속히 교회와는 분리시켜야 한다.

 

둘째는 고려신학대학원을 독립시키는 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고려신학대학원독립은 이제 고신교회의 숙원사업이 되었다. 고신대가 종합대학으로 인가를 받으면서부터 거론하고 총회가 거듭 결의하였던 일이 바로 이 일이다. 이것은 교회가 대학을 직영할 수 있느냐는 신학적인 논란에서, 그리고 고신의료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비롯되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신의 시작이요 심장부이며 개혁주의 신학과 고신정신의 보루인 옛 고려신학교의 전통과 사명을 수호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이 진행되지 못한 표면적인 이유는 재정문제였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사회를 포함한 고신 지도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따른 우선순위나 고신의 역사적 사명 등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 - 주로 복음병원의 경영을 둘러싼 혼란과 어려움에 관심과 시선이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선순위를 찾아 이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의 독립을 위한 방안은, 우리가 이미 여러 차례 천명해 온대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설대학원 대학교 인가를 받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신학대학원대학교를 인수하거나 통합하는 방안이 있다. 두 방안이 모두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천안캠퍼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의 방법을 이사회가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이끌어야 할 것이다. 또 영도캠퍼스도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많은 재정이 필요한 상황이고 헌금에 의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있는 재산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셋째는 고신대학교의 구조개편 방향을 확실하게 잡아주기 바란다.

고신대학교의 구조개편은 고신의 설립정신에 의거하여 과격하게(radical) 이루어져야 한다. 불행하게도 고신은 세속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것은 고신대학교의 지난 역사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고려신학교로 시작된 선지학교는 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고려신학대학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신대학교로 확대 개편되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기독교 대학이란 간판만 남은 일반 대학교가 되었고 이것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고신대가 종합대학으로 확대돼 온 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고신이 가진 우선순위가 물량주의에 의해 치환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크고 많으면 발전이라고 여기는 세속적 가치기준이 우리도 모르게 고신인들의 정신세계를 압도해 온 것이다. 따라서 고신대학교의 구조개편은 단순한 숫자 줄임이 아닌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 회복을 지향하며 구조개편을 해야 한다. 중심을 붙잡고 중심에서 먼 것들부터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소위 고신대의 자립을 기한다며 무분별하게 인가를 받았던 잡다한 학과들은 통합하거니 폐지하고 종합대학이 되기 전의 구조 곧 교회봉사와 직결된 학과들 중심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학의 최고지도자인 총장도 평신도가 아닌 목사나 신학교수로 그 자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위와 같은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셋 중 어느 한 가지만으로도 너무나 벅찬 과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강 이사장의 임기는 2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의 방향을 바로 잡고 나아가면 어느 날엔가 좋은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은가. 우리는 새로운 이사장과 새로 구성된 이사회에 바람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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