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McClure의 원탁설교학에 대한 역사적 장로교 신학에서의 고찰

*들어가면서

▲ 허 찬 /대신총회신학교 설교학, 스텔렌보쉬 대학교 Ph.D

설교란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은 설교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복음사역에 있어 가장 위대하고 탁월한 일로 정의한다. 이렇듯 중요한 설교사역은 예배의 중심이 되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참된 교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교회와 예배에 중심이 되는 설교사역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목사에 의해 준비되고 선포되기에 이 책임은 설교를 준비하는 설교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고, 듣는 청중인 교회의 지체들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일까? 물론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설교자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여 선포하여 왔지만, 일방적으로 설교자에 의해 주도되어온 설교준비의 전체 과정은 개혁교회의 역사적 관점과 오늘날의 관점에서 합리적인가? 설교학자 토마스 롱(Thomas Long)설교 사역은 설교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역이요, 전 교회에 주어진 사역을 위임받은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설교학이 교회론(Ecclesiology)에 주목해야 하고, 앞으로 설교학은 설교자들에게만 독점된 연구 분야가 아니라 Communication의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을 지적했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수많은 교회들이 구조적으로 지나치게 목사 중심의 교회로 자리잡아 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설교자로서의 목회자들에게 설교가 지나치게 권력화되어 왔던 것이다. 전통적 개혁교회는 목사, 교수, 장로, 집사로 이루어진 칼빈의 4중직제에 기반한 직능적 형평성이 이뤄진 협력 공동체였다. 본래 개혁교회는 그 권위가 회의(당회,노회,총회와 같은)에 있고,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과 같은 문서를 작성하고 결의함에 있어서도 공동의 논의를 거쳐 이루어져 왔었다. 이렇듯 개혁주의적 장로교회가 근본적으로 공동체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와 같은 가부장적 문화를 가진 한국에 정착되면서 귄위주의적인 계급제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런 일이라 여겨질 수도 있으나 본래적 장로정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건강한 이 시대 개혁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설교를 권력화한 설교자 중심의 교회를 지양하고 역사적 개혁교회의 정치형태를 회복하며 장로교회의 공동체성 재발견을 위한 설교학적 모델로서 미국의 포스트모던 설교학자 존 맥클루어(John S.McClure)의 원탁설교론 (Roundtable Pulpit)의 방법론을 한국적 상황에 맞추어 실행하기 위한 몇가지 실제적 제안을 하고자 한다. McClure 설교학의 가장 큰 특징은 청중이 설교를 듣는 자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설교 준비의 전과정에 참여하여 공동체로서의 사역인 설교사역에 동참케 하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보수적 권위주의의 색채가 짙은 한국장로교회에 청중이 설교준비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스런 발상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 역시도 McClure의 방법론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의 방법론을 접하기 전에 역사적 측면에서 가지는 개혁교회의 공동체성을 살펴보고 McClure의 어떤 점이 한국장로교회에 시도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장로 정치의 공동체성 상실

유럽과 미국의 교회들은 19~20세기를 지나며 거대한 부흥운동을 경험하였다. 소위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위대한 설교자들이 배출되었고 설교를 통한 대대적인 부흥과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복음의 확산이라는 입장에서 상당히 고무된 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장로정치를 표방한 개혁교회에서는 그 직분의 권력중심이 설교자인 목사에게만 편중되는 하나의 시초로 짐작해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설교자로서의 목회자들은 점점 청중과 분리된 권위적 존재로 변모되어 갔고 그들의 고립은 점차 성도들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성경해석으로 흘러 갔다. 이렇게 설교자로서 목회자가 현실 청중들의 생각과 입장으로부터 단절되는 현상에 대해 이 시대의 개혁교회는 어떤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설교자는 성도들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해 무슨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방법들은 어떻게 실행되어야 할까?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를 듣는 청중에 대해 파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경우 일방적인 설교자의 입장에서만 말씀은 해석되고 증거 된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오늘 날 많은 수의 설교자들에게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 of the Gospel)된 성경해석의 설교가 강단에서 선포된다. 오늘날 설교자들의 협소한 시선으로부터의 성경해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 본문을 주석하는 면에서는 일반성도의 Q.T 수준이며 실존적이고 심리적인 분석을 통해 사사화(私事化)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설교자의 성적, 도덕적 타락이 설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한국교회 강단의 위기와 목회자에 대한 불신들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공연히 아는 바가 되었다. 이렇게 설교자로서 목회자가 현실 청중들의 생각과 입장으로부터 고립되어 단절되는 현상에 대해 이 시대의 개혁교회는 어떤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개혁교회의 교회론에서 목회자와 청중의 협력에 대한 측면을 이야기할 때 무엇으로부터 그 주요한 개념을 정립할 수 있겠는가?

 

*맥클루어 원탁 설교학의 한국장로교회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우려되는 부분

맥클루어 설교학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대화와 협력(conversation and collaboration)”이다. 대화를 통한 설교자와 청중의 소통은 그의 설교 신학에 있어서 핵심개념이다. 그의 설교학은 단지 설교를 잘 전달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설교준비를 위한 성도들과의 대화를 통해 교회 공동체의 가장 자리에 있는 이들이 교회 사역의 중심부로 한 걸음 더 깊이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설교자와 청중간의 인격적 교제를 통해 리더쉽을 증진시키기 위함에 목적을 두고 있다.

긍정적 부분 : 맥클루어의 설교학적 시도는 한국사회의 유교중심적 상하구조로 고착된 한국교회에 새로운 도전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교회의 권위와 목회자들의 윤리의식이 더 이상 교회 내외부로 신뢰를 주지 못하는 오늘의 시점에 설교 준비 전과정을 설교자가 오픈하여 함께 참여하게 하는 것은 보수적 한국 정통 장로교회 내에서는 아직까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교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적 신앙형태에 하나님의 말씀은 공동체 중심적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드러낼 필요가 있다. 또한 설교를 위한 책임은 전 교회와 나누어져야만 한다. 그런 상호작용을 통하여 공동체가 변화하고 확장하고, 새로운 통찰을 갖게 되고, 이전보다 더 많은 목소리와 다양성을 포함하게 된다.

우려되는 부분 : 맥클루어의 이론에는 장로교회의 체제와 역사가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장로교회는 직분이 존재한다. 칼빈은 교회의 직분 중에 항존직을 목사, 교수, 장로, 집사 등으로 언급하였고, 시대와 장소에 때라 임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여러 직분들로 인하여 교회를 도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맥클루어의 원탁설교는 지나치게 목회자와 설교에 모든 기능이 집중되어 있고, 장로와 집사의 기능들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오직 성도와의 대화 속에서 말씀 준비하는 일에만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따라서 맥클루어의 이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다보면 역사적개혁교회 내의 직분제도들이 무시됨으로 다른 직분들의 기능들이 무력화 될 수 있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 맥클루어의 설교학적 방법론을 한국교회에 접목하기 위한 실제적 제안

1. 성경 읽는 공동체 형성과 성도간의 관계 증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공동체는 함께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서 문화-언어 속에서, 함께한 기억 속에서 공동체적 관점으로 성경을 읽어 가야 한다. 공동체적 방식으로 함께 성경을 읽어 나가는 것이 대화의 우선하는 전제가 될 것이다. 개인주의적 입장에 치우친 경건생활에 국한되지 말고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성경 읽기 공동체” (Reading with Others) 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서로간의 친밀한 관계 형성을 통해 그들이 가지는 성경에 대한 의문과 성경을 이해하고 있는 수준과 그들이 가진 곡해된 신앙적 경험들을 파악하게 된다.

 

2. 정규적 만남을 통한 관계 형성하기

공동체적 성경읽기를 통하여 설교자와 청중의 신뢰관계 증진되어야 하며 참된 공동체로 성장해야 가야 한다. 피터스(Pieterse)빈곤에서의 설교(Preaching in a context of poverty)”에서 설교자가 빈곤에 처한 자들을 위해 설교하려면 그들의 생활에 직접 들어가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삶을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피터스가 강조하는 것은 설교자는 신학교에서 파송된 사람이 아니라 청중과 함께 하는 동등한 자격으로서의 성도 라는 말이다. 목회자가 성도들과의 만남을 지속함으로서 관계를 증진시키고 성경을 함께 읽어가고 그 은혜를 친밀하게 나눌 수 있도록 공동체의 멤버들에게 제도화된 교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3. 장로의 역할 재발견

교회의 시스템을 회복하기 위해 목회자의 가장 가까운 동역자인 장로(Presbyter)의 위치와 역할을 재발견 해야 한다. 교회를 시무하는 장로들이 교회 여러 모임안에서 (설교를 위한) 대화에 주도적 역할을 하며 개혁 교회의 대화적 전통을 살려내기 위하여 당회와 성도의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로는 교회가 고백하는 신학적 유산과 전통들을 잘 이해하고 실제적으로 성도들과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인 직분자로서 장로는 개개인 성도들과 장로들의 모임인 당회를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4. 우분투(Ubuntu)의 정신을 통한 공동체 세우기

맥클루어 설교학의 가장 큰 기여는 아마도 교회공동체 내에서 어떤 사역에도 참여하지 못하거나참여치 않고 있는 주변성도 (Margin people)에 대한 재발견일 것이다. 그의 설교학은 설교자가 보지 못할 수 있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우분투(Ubuntu)”의 렌즈를 통해 공동체의 마음으로 성도들이 함께 말씀에 참여해야 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분투 어원적 의미는 간략히 정의할 수 없으나 내 인간성과 당신의 인간성은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 마치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교회가 맞추어 가다보면, 교회가 본래 가진 신학과 성경이 말하는 교훈과 의미가 변질되거나 합리화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교회는 수많은 신학적 도전과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교회 (특히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회)들은 여러가지 요구와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 그러나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개혁 신학의 기준과 법, 체제를 생갈할때, 오늘날 시대의 요구 속에서 우리가 가진 기반과 신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가르쳐 지지 않고 무시되는 전통이 아니라, 변호되고 선포되며 지켜져야 하는 진리인 것이다. 그것은 전통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바른 해석이기에 그 정통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진리로서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것의 적용과 전달은 시대와 공동체의 특성상 조금씩 달리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있는 신학적 입장과 전통은 반드시 현 시대의 신학적, 윤리적 요구에 대답할 수 있는 합리성을 늘 가져야 하며, 이 모든 것은 어느 강력한 지도자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성을 가진 교회가 바로서야만 가능한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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