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교회 청년들이 대학에서 학문을 접하고는 믿음을 잃게 되는 것을 흔히 목도하게 됩니다플라톤이 말했듯이 학문은 보편적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아름다움입니다그러나 그 아름다움의 원천과 목적이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있다면학문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이 점에서 사상의 최전선에서 세속 사상에 대항하여 기독교인 관점에서 학문 활동을 하는 크리스천 학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그것은 다름 아닌 세속 사상에 빼앗긴 듯이 보이는 학문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학문연구회 학회장 유재봉 교수(성균관대)는 2015년 기독교학문연구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위와 같이 개회인사를 했다개회식에 이어 강영안 교수(고신대 이사장)가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기독교 학문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주제발표를 했다. 

▲ 강영안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기독교 학문 /강영안 교수

다원주의 사회 속에 산다는 것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의 우리의 삶은 다양한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 고유한 영역들 가운데 이루어집니다학문의 영역은 지식 추구를 활동의 핵으로 삼고 있지만 이 활동에도 상호 교환과 규칙배움과 가르침표현의 아름다움과 게임의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삶의 각 영역은 다른 영역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함을 지니지만 다른 영역의 고유한 활동과 특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따라서 삶의 영역은 다양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창조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은 영역의 다양함뿐만 아니라 활동의 다양함(diversity)과 그것들의 상호연관(coherence),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연합된 모습(unity)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산다는 것은 다양한 세계관이 서로 혼합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현실 가운데는 하나의 종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가 공존한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점점 삶이 세속화되는 상황에서 제도 종교보다는 비제도적비형식적 유사 종교나 대용종교가 훨씬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세계관이 서로 복잡하게 교차되는 사회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원적 상황은 기회이며 도전철학계만 보더라도 지금은 어떤 한 방법이나 학파어떤 한 조류가 전체를 지배하는 방식이 아닙니다한국의 경우 철학은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과는 무관한 분야로 이해되었습니다철저한 유물론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무신론을 전제해야 학문적 철학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우리 학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종교에 대한 편견이념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하는 연구가 맑스주의를 토대로 하는 연구나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하는 연구와 마찬가지로 국가 지원의 연구 과제로 채택될 수 있고실제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다원적 상황은 기독교적으로 학문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불리하기보다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서양의 경우논리 실증주의가 한창 유행할 때만 해도기독교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학계에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지금도 여전히 그와 같은 분위기가 없지 않으나 과거보다 훨씬 나아진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므로 기독교 신앙과 일관되게,신앙을 바탕으로 학문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롭게 전개된 상황은 드러내 놓고 자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점적 다원주의의 틀에 갖혀서 참됨을 추구하기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위험이 또한 존재합니다관점적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국 우리가 참이라고 믿고 수용하는 것은 내가 서 있는 지점내가 속한 문화내가 어떤 시점에 우연하게 소유한 세계관에 한정될 것이고만일 이것이 옳다면 실제로 참인 것은 없고모든 것이 관점에 따라상대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참됨을 보여주기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저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참된 것을 추구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삼위 하나님을 믿는 학자라면 진리에 대한 실재론을 수용하고 실재적인 참된 것의 발견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학문을 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원적 상황에서의 기독학자가 추구할 가치① 무엇이 진실이며 사실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고 진지하게 자신이 투신한 학문에 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학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우리가 연구하고 탐색하는 현실은 하나님이 지으신 현실입니다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그 분에 대한 의지와 신뢰는 우리가 참된 것을 추구하고 드러내려고 하는 활동의 기초가 됩니다.

② 정의로움에 대한 추구의 자세가 기독학자에게 필요합니다정의의 반대는 불의입니다불의는 사람에게 가하는 악이고 억울함을 가져오는 행동입니다사회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억울함과 불의는 쉽게 보이지만 학문세계에서의 불의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학문 세계의 정의는 다른 사람의 논문을 반박하더라도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당하게 하자는 것입니다타인의 주장과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요약하고 제시하는 것이 공정한 학자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③ 학문의 동기와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든 선한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라틴어 표현에 “Ubi amor, ibi oculus”란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눈이 있다.” 이 때 사랑은 고통을 두고 그냥 스쳐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마음입니다눈앞에 주어진 고통에 대해서는 곧장 행동으로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고통에 대해서는 우리가 묻고따지고연구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 2015년 기독교학문연구회 춘계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결어지금까지 얘기한 이 세 가지 가치는 에베소서를 따르면 빛의 자녀들이 맺는 열매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agathosune)과 의로움(dikaisosune)과 진실함(aletheia)에 있느니라”(5:8-9). 그리스도인 학자가 기독교 신앙과 일관되게 학문하려 한다면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동일한 삶의 방식이 학문하는 활동에도 드러난다고 믿습니다이러한 삶의 길에 몸과 마음이 젖어들고 익숙하여 지려면 무엇보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것이 전제조건입니다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일로 가능합니다이를 통해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옛 자아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새로워진 자아의 지배를 받아 학문을 하거나 정치를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이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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