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택 목사

사람의 몸에서 짜 낼 수 있는 액체가 땀과 눈물과 피라고 할 때 물보다 진한 것이 어찌 피뿐일까? 근본적인 원소를 따지자면 물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냥 물이 아니다. 물과 피 사이의 액체는 땀과 눈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보다 진한 것은 땀이며, 땀보다 진한 것은 눈물이고, 눈물보다 진한 것이 피라고 해야 순서가 맞는 듯하다.

물은 네 가지 액체 중에서 가장 그 농도가 묽은 것이다. 인간관계로 따지자면 그냥 맨송맨송한 관계, 즉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우리가 보통 이라고 부르는 무관심의 관계다. 관계다. 물이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듯이 다른 사람들은 필요한 이웃이긴 하지만 그렇게 살뜰하지 않다. 맛도, 냄새도, 색채도, 끈적거림도 없는 물은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는다. 김춘수 시인의 이란 시에 빗대어 말하자면 내가 아직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그러나 나도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에게로 가서 그의 꽃이 되고 싶어하는 아직 설익은 관계다. 그러나 언제나 땀과 눈물의 차원 높은 관계로 더 발전해 갈 수 있기에 가슴 벅찬 가능성의 관계다.

그에 비해서 물보다 진한 땀은 나를 위해 애써주는 사람과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나를 위해 마음을 쓰고 시간을 할애하고 비용을 들여가며 노력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나의 성장과 발전을 기원해 주고 할 수 있는 힘을 다하여 나를 도와주는 관계다.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닌다는 말처럼 부지런히 나를 위해 기꺼이 땀을 흘리며 멘토의 역할을 감당해주는 관계다. 그러나 거기 까지가 한계다. 헌신적이긴 하지만 희생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노력하고 마음써주고 비용을 들여가며 위해주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희생이 요구되는 순간에는 함께 하지 못한다. 학연으로 맺어진 동문이나 지연으로 맺어진 친구, 그리고 같은 직업에 종사하므로 맺어진 사업의 동반자나 취미나 기호가 같아서 맺어진 동호회원 같은 부류가 이에 속할 것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맺어진 선택적 관계이며 인위적인 관계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발적으로 포기할 수도 있는 관계다.

스며있는 소금의 양이 땀에 많은지 눈물에 많은지 측량해 본바 없지만 정서적 농도로 볼 때 눈물이 더 진하지 않을까 싶다. 땀보다 진한 눈물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다. 나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파해주고 나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인양 안타까워하며 나의 눈물에 동참해 주는 관계다. 온 세상이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해도 그만은 나의 성취와 성공을 기뻐해 줄 수 있는 관계다. 눈물을 흘리는 가장 보편적인 상황은 슬픔의 때지만 눈앞에 닥친 인생의 버거운 고지를 점령하여 그 성취감으로 인해 기쁠 때에도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너무나 아쉬운 순간에 생광스럽게 다가온 누군가의 도움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하게 될 때 애절한 기원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때에 흘리는 눈물은 기도의 제단에 떨어져 소원의 불꽃을 일으키는 제물이 된다. 누군가가 간절한 눈물로 나를 위해 기도한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소위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가족 관계가 있다. 이 관계는 자발적이지 않고 필연적이며 선택적이지 않고 생득적이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관계다. 하늘이 맺어준 관계이기에 사람들은 천륜이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이, 형제와 자매가 서로의 버성김이 피곤하다고 각자의 편의만을 추구하여 살기로 한다면 이건 가족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왜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지 아는가? 피의 존재는 아픔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피를 나눈 사이라고 한다면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피를 흘리게 됨은 필연적이라 할 것이다. 그 피 흘림은 가족임을 확인 하게 되는 것이요 형제이기 때문에, 가족이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인 것이다.

부부는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지만 태어난 자식들로 인해 물보다 진한 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의 아들임과 동시에 어머니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형제, 자매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 세상에서 가장 나를 고달프게 하는 사람이 부모나 자식, 혹은 형제, 자매일 수가 있다. 동생 때문에, 오빠 때문에, 형 때문에, 누나 때문에 내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골치가 아플 수도, 피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꺼이 감수해야 할 일이다. 장애인 형제, 술주정뱅이 아들, 학력이 낮고, 교양이 없고, 구식이고, 비위생적이고, 어쩌고저쩌고 ....... 모든 핑계는 어떤 다양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는가?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수고를 하고, 눈물 흘려 기도하고,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친구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가족이 있다는 증거 아닌가!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것이니 당신의 인생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땀을 흘리기보다 눈물 흘리기를 사모할 것이요, 눈물 흘리기보다 피를 나누게 되기를 사모할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으니 이왕에 사랑할 거라면 이 지고지순의 경지를 경험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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