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해외동포 목회와 교육 정책협의회가 “가정을 세우는 교육목회”라는 주제로 안성 레이크힐스 호텔에서 6월 15일부터 17일까지 총회교육원 주관으로 열렸다. 둘 째 날 제1 주제특강자로 나선 유해무교수는 “개혁주의 가정교육의 원리와 실제”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강의했다.
메르스나 가뭄을 통제할 대한민국의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것같이 고신총회에도 교육에 대한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총회에서도 말은 무성하지만 총회 결정 사항 자체가 시행되는 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총회 산하 기관 중에 개혁주의를 말하는 기관은 교육원과 SFC 두 기관 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총회 교육원이 2박 3일로 모여서 배우며 개혁신앙을 강조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개혁파’라는 용어
개혁파라는 용어는 로마교회를 개혁한 종교개혁에서 발생했다. 종교개혁은 예배의 개혁이었다. 루터는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출입문 바깥 면에 95개 조항은 내걸고 예배를 개혁한다. 로마교는 루터 선생의 종교개혁 교회 1529년부터 ‘복음주의’ 또는 ‘루터파’라 불렀다. 루터의 종교 개혁에 감사하지만 계속해서 루터의 공제설을 비판한 무리들을 ‘츠빙글리파’ ‘칼빈파’ 혹은 ‘개혁파’라고 불렀다. 개혁파 즉, 개혁교회는 루터파 안에 로마교회의 잔재와 유사성을 여전히 있다고 보면서 계속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개혁파는 성경(고전1:12-13)에 근거하여 교회가 인간의 이름을 따라 불리어질 수 없으며, 따라서 루터파가 붙여준 츠빙글리파나 칼빈파라는 이름을 끝까지 거부하였다. 칼빈은 존경하지만 맹목적인 추종은 거부하였다. 오직 성경만 따르면서 칼빈의 말이 성경과 위배되면 거부하겠다는 자세를 가졌다.
개혁교회의 발전과 확장
개혁교회 첫 세대로는 스위스 취리히의 츠빙글리(H, Zwingli, 1484-1531)와 그의 후계자인 불링거(H, Bullinger, 1504-75)가 있다. 개혁교회의 진정한 선구자는 칼빈(J. Calvin, 1509-64) 선생이다. 프랑스 북부 누아용에서 태어나 스위스 제네바에서 나그네로 목회하다가 죽기 5년 전에야 비로소 그곳 시민권을 얻었다. 루터와 츠빙글리의 다음 세대이며, 28년간 목회하면서 오직 성경 말씀만을 연구하고 주석하고 가르치고 설교하였다. 칼빈이 1559년 개교한 제네바 아카데미를 통해서 개혁교회는 유럽전역에 퍼진다.
독일에서는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개혁파를 따르겠다고 선언한다. 그의 제안으로 우르시누스(Z. Ursinus; 1534-83)와 올레비아누스(C. Olevianus; 1536-87)가 작성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1563)는 지금도 개혁파를 대표하는 문서이다.
프랑스의 위그노들은 수많은 핍박 중에 1559년에 첫 총회를 개최하면서 칼빈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신앙고백서를 작성하고, 장로교회 정치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1685년에 이 칙령이 번복되어 위그노는 추방당하고, 많은 이들이 화란과 독일 그리고 남아프리카 등의 지역으로 이주한다.
네덜란드와 현 벨기에의 화란어 권은 비교적 빨리 개혁교회로 출발한다. 존 낙스(J. Knox; 1515-72)는1555년에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칼빈을 따라 교회를 개혁한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장로정치를 정착시키고 발전시켜서 이 정치제도를 세계적으로 보급시켰다.
17세기 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부터 이민 온 장로교도들이 미국 장로교회를 시작한다. 1740년대에 있었던 제1차 부흥운동은 화란개혁교회 소속 목사와 잉글랜드계 회중교회 목사가 주도하였다. 이때에는 개혁파의 교리적 정체성을 굳게 지켰다. 그러나 그 이후 19세기 초의 제2차 부흥운동 남북전쟁 직후 있었던 무디를 중심으로 한 부흥운동에서는 개혁파의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영적 분위기에서 결심한 이들이 선교사로 지원하였고,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개혁교회
한국교회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박윤선목사(1905-88)가 가르치고 보급하였다. 박목사는 화란 유학 이전과 이후에 고려신학교에서 교수와 교장으로 약 10년간 사역하였다. 그가 현재 합동측 총회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은퇴하고, 신설된 합동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개혁주의 전통을 한국 장로교회 안에 소개하였다.
개혁교회인 고신교회
고신교회는 개혁교회이다. 적어도 해방 이후 한국에서 개혁주의를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배운 교회가 고신교회이다. 우리 입에 붙어 있는“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개혁주의 전통을 잘 대변한다. 특히 학생신앙운동(SFC)의 강령은 개혁주의 정신을 잘 담고 있다.
고신교회는 공교회이다. 공교회는 보편교회라는 뜻이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계시의 진리를 말한다. 사도신경이 고백하고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에서 계시하신 진리를 바로 믿고 그대로 살아가는 교회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불러주시고 험난한 삶 가운데서 핍박을 받아도 부서지지 않고 믿음의 지조를 지키게 하신 은혜를 앞세우며 찬양한다. 오로지 순종하였을 뿐이며, 처음부터 이런 공교회의 반열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비록 주류가 아닌 소수 세력이라 하더라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공교회임을 자랑하자.
고신교회는 고백교회이다. 고신교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투옥당한 이들이 출옥하여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다가 추방당하여 불가피하게 세운 교회이다. 교회사에세 이런 분들을 일컬어 ‘고백자’라 부른다. 이처럼 고신교회는 한국교회에서 보기 드문 고백교회이다. 고신교회는 고백교회로서 출범 초기부터 개혁교회인 것을 확인하였다.
복음주의와는 다른 개혁신학의 특징
고신교회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 소교리 문답서 등 세 문서를 신조로 받아들였다. 고신교회가 해방 이후에 이 세 문서를 처음으로 채택한 것은 미국교회의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신교회가 취한 공교회적 자세의 결과이다.
개혁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만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복하기까지 선한 싸움을 싸운다. 이것은 복음주의와 다른 개혁신학의 중요한 특징이다. 복음주의는 일반적으로 고백교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영혼의 구원이나 내면성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에 복음 전파한 이들이 이런 복음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신교회는 복음을 받아 믿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 원리와 더불어 더 넓고 포괄적인 개혁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
개혁주의 가정교육의 원리: 언약
가정은 창조주께서 주신 최초의 사회이며, 타락으로 인하여 등장한 교회보다 앞선다. 교회는 가정과 더불어 기독교 학교나 기독교 언론 등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회원이다. 기독교교육은 언약에 기초하여 인간을 개인이 아니라 언약백성의 관점에서 본다. 사람의 선택에 앞서 하나님의 선택이 선행한다(요15:16).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기에 앞서 언약의 중보자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행20:28). 이런 선택과 교회론에 입각하여 개혁교회가 추구하는 기독교 교육은 부활의 주님께서 모든 영역에서 왕이시오 주인이심을 선포하고 실현하는 언약 백성을 양성함에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이원론도 용납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 편재한 이원론은 영혼의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과 하나님 나라의 넓이와 폭을 제한한다. 이것은 삼위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사역의 의미를 제한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교육의 시발점은 세상의 가치관과 관행을 격파시키는 건강한 가정과 교회이다.
개혁교회 가정교육의 주체는 부모이다.
개혁교회는 세례의 기초가 되는 언약에 기초하여 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본다. 자녀들은 천국과 언약의 후사로서 세례를 받으며, 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것들을 가르칠 교육의 책임을 진다.교육의 주체인 부모는 집에서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칠 의무를 진다. 개혁교인들은 매일 가정의 식탁에서3번 성경을 읽고 가르친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의 자녀의 관계 형성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토론 훈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주일 점심 식탁에서는 오전 설교에 대해 자녀들에게 묻고 질문에 답변한다. 또 자녀들이 중학생이 되면 교회의 교리문답 교육에 참석하게 하여 성경의 대요를 교육받게 한다.따라서 교육의 주체인 부모와 가정이 건강하여만 기독교교육을 통한 하나님 나라 건설도 든든하게 나아갈 수 있다.
교민 가정이 식탁에서 한글로 성경을 읽고 부모와 자녀가 토론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바람직할 것이다.가장 먼저 믿음의 전수이고, 그 다음은 부모와 자녀의 돈독한 관계의 형성이다. 믿음의 전수는 모국이든 이국이든 가장 중요한 부모의 사명이다. 이국에서 부모와 자녀가 식탁에서 성경을 중간에 놓고 함께 대화할 수 있다면, 언약의 가정은 이국에서 사는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큰 담론으로 한국교회의 위기와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곧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가정에서부터 우리 자녀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양육하는 일이다. 최초의 사회인 가정의 회복은 말씀으로만 가능하며, 개혁교회가 오랜 전통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수한 가정교육이 한국교회와 교민 교회를 살리며, 믿음으로 다음 세대에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정근두 목사, ‘관성의 법칙’을 깨는 ‘전면전’이 필요하다.
다음은 교육원 이사장으로 섬기는 정근두 목사(울산교회)를 만나 교육원의 근황에 대한 인터뷰를 가졌다.
김대진 목사(코닷연구위원):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육원 이사장으로 섬기시면서 교육원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먼저 한 말씀해 주시지요.
정근두 목사(교육원장): 새로운 시각으로 교육원으로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원에 대한 격려가 많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교육원에 있는 연구원들은 총회 일반직원들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된 분들이 들어와서 헌신할 수 있는 분위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교육원에서 섬기던 황영익 목사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탁월해서 교육원의 부름을 받은 줄 알았는데 일하다 보니 자신의 등치와 힘을 보고 채용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지요(웃음!). 그 만큼 교육원의 일이 거칠고 힘들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군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풍토가 절실합니다.
김목사: 교육원 이사로 섬기는 유해무 교수가 정부에 메르스와 가뭄을 통제할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것처럼, 우리 교단에도 교육의 컨트롤 타워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이사장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목사: 교육원이 정말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야 하는 데는 동의 하지만, 현실적 대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핵심 이유는 교육원이 점점 발전하는 과정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세분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프로그램 더 좋은 교재를 만들고자 하는 관성의 법칙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세분화 시켜서 더 잘해 보려고 하다 보니까 정작 큰 틀의 방향성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서울 시내가 한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지만 정작 하늘의 별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오늘날의 사람들은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정작 중요한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오늘날의 교육이 바로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총회장은 1년 임기이고, 이사장도 사실 1, 2년 정도이고 이제 교육원장도 흔들려서 컨트롤 타워를 부숴버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교육원 이사들과 이사장이 교육원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헌신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습니다. 이사장과 이사회도 타성에 젖어서 관성의 법칙대로 그냥 흘러갑니다. 늘 해왔던 대로 해오는 관성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정말 살아있는 목표인지 그 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 이런 방법이 정말 효과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들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대로, 해오던데로 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게 되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지 교회의 교육담당교역자가 아이들의 신앙적인 회의에 대한 본질적인 답은 회피하고, 그저 방가 방가 하면서 출석률만 높이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교회 출석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기도시간에 어떤 여성도가 평소와는 다르게 울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궁금해서 부교역자에게 물어보니까? 요즈음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 여자가 병이 들어 죽어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 주인공을 살려달라고 울면서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믿기 힘든 일들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교회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위한 교육이냐? 이대로 계속가도 되는가? 어디서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인가?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김목사: 이번 교육정책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이 거의 하나로 모여졌다고 봅니다. 주일학교 교육의 방향성이 기독학부모들을 바로 세우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지요. 교육원이 기독학부모를 바로 세우기 위한 방향으로 교육목표를 새롭게 바꾼다면 이 목표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요? 정목사: 현재의 관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기독학부모란 교인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어느 한 부서에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비근한 예로 아주 경건해 보이는 여성도님이 결혼생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남편이 돈 잘 벌어다 주니까 살지 사랑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이 너무도 깊이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총회 교육원이나 어느 한 부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면전입니다. 교회 공동체 전체의 가치관이 안 바뀌면 절대 안 바뀝니다. 학부모의 신앙의 이중성이 주일학교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의미하는 바는 교육의 문제는 모든 부서와 모든 성도를 향한 전면전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교육의 문제에 대해 교육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습니다. 울산교회는 24명의 교역자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반면에 총회 교육원은 10여명의 연구원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흘러가는 것을 끊어 버리고 본질의 문제를 생각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문제는 부모의 신앙가치의 문제요, 목회의 문제요, 설교의 문제입니다. 학부모의 문제이기에 앞서서 목회자의 문제이고 교육의 문제이기 전에 목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가치관이 세속적인데 그 설교를 듣는 교인 즉 학부모의 가치관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김목사: 주일학교의 문제가 교육의 문제이기 전에 목회의 문제요 설교자의 문제라는 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와 설교자의 문제란 결국 신학교육의 문제인데 신학교육이 잘못된 것인가요? 정목사: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신학은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학교를 만들어서 우리가 전하고 있는 진리가 교실에 갇혀있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교실 안에 가두어 버린 신학교육이 문제입니다. 설교를 예로 들면, 설교는 본질적으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회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설교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론신학으로 설교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실천적 관점에서 설교 현장에서 설교가 가르쳐지고 전수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니어 목사가 설교하고 시니어 목사가 같은 본문으로 이어서 설교함으로 서로 배우는 이런 과정도 필요합니다. 신학교육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김목사: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인 것처럼 목회자 교육의 주체는 담임목사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신대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잘 못된 것 아닌가요? 정목사: 맞습니다. 사실 목회자 후보생 교육의 주체는 담임목사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신학교에 위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신학교도 예전에 해오던 관성대로 그냥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관성의 법칙을 극복하기 위해서 현재의 시스템을 과감하게 깨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세속적 교육관에 저항하는 기독교 교육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일본제국주의의 신사참배 틀을 깨버렸듯이,우리가 갇혀 있는 현재의 틀을 깨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목사: 관성의 법칙 대로 흘러가는 현 신학교육의 틀을 깨는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목사: 글쎄요... 학생과 교수의 벽을 깬다고 할까요. 교수의 권위주의의 틀을 깬다고 할까요. 현재의 틀을 깬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있는 공간을 내어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깨는 것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깨트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개입 자체를 차단시키는 우리가 만든 견고한 틀이 문제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비일상적인 개입을 기대합니다. 관성에 따라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을 깨는 하나님의 비일상적인 개입 즉, 하나님의 부흥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목사: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 도전이 됩니다. 앞으로의 목사님 사역에 대해서 끝으로 한 말씀해주시지요. 정목사: 저는 4년 남은 목회기간 동안 장로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비일상적인 하나님의 개입으로서의 하나님의 부흥은 궁극적으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교육이 문제는 어느 한 부서가 할 수 없습니다. 사실 목회자만으로도 안 됩니다. 목사와 장로가 협력하고 온 교회가 하나 되어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전면전입니다. 그 핵심에 목사와 장로가 있습니다.
김목사: 정목사님과 대화하다보니 12시가 다 되갑니다. 정책 세미나 기간 중 바쁘실 텐데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고신교회와 교육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