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회가 강도를 만나 상처 투성이가 된 이웃을 보고도 레위인도 외면하고 제사장 마져 스쳐 지나가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이웃을 돌봐주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닐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른편 사람에게 가로되 창조 때부터 준비한 그 나라를 차지하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주었다.“(25;34-36)

▲ 이광수목사 부암로교회원로

복음적 신앙생활은 현실의 삶 속에서 이웃을 향한 따뜻한 손길을 펴고 더불어 사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는 자원하여 공동생활, 진짜 공산주의와 같은 생활을 살았다. 그리고 구제에 힘썼다.

얼마 전 송파 3모녀의 자살은 우리 사회를 놀라게 하였다. 오늘날 이사회는 매몰찬 극과 극의 사회이며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자기이익에 따라 하고 떼거리로 모여오고 떠나가는 사회로 약육강식의 현상이며 빈익빈 부익부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대형 백화점으로 벌떼처럼 모여드는 무리들을 누가 막을 것이며 번쩍이는 대형교회로 물밀듯이 몰려가는 인파를 어쩔 것인가?

어떻게 사는지 마음이 안쓰러워 같은 노회 후배 목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몇 십 년 개척 교회를 하시다가 3년 전 교회 문을 닫고 기도원으로 허락해 달라고 신청 해놓고 은퇴 하신 목사님이었다.

4 자녀가 있는데 2 자녀는 결혼하고 2자녀는 미혼이며 3천만원 전세에 25만원 월셋집에 살고 있으며 수입은 국가에서 부부 2사람에게 주는 월 32만원의 노령연금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그냥 산다고 말씀 하셨다 전화하는 그날 위내시경하고 오셨다고 하셨으며 개척 전성기에는 120명이 회집 할 때도 있었지만 교회는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노회나 총회와 교회의 도움은 말하지 않았다. 노회나 총회와 교회의 재정 중 굶주린 늙은 목사에게 빵한 조각 줄 수가 없는가?

오늘날 이 주위와 곁에 이와 같은 목사가 한 분뿐이겠는가? 대형교회 교인이 필자에게 우리 교회는 대형 교회인데 전도해서 새 신자뿐 아니라 다른 교회에 나가는 교인도 데려오라 해요.“라고 했다.

우리나라 빈곤 노인 문제에 대한 대책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심각한 문제이며 극빈의 자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목사들의 문제로 마음을 절절이 아프게 한다. 그 어떤 누가 무슨 대책을 세우려고 하고 있기는 하는가?

약인(略人)이란 말이 있다. 사람을 꾀어 빼았다는 말이다. 누가 무엇이 교회의 교인을 약인 하지 않았을까그 개인과 교회의 부족함이 이런 모습을 오늘날 가져 왔다고 냉담 할 수가 있을까? 교회가 시장 점유율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시장 독점현상과 관계가 없을까?

전화를 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늙고 무력한 자신을 돌아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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