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근교수 /연세대학교
나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른바 ‘뽑기’를 통해 고등학교를 배정받는 세대에 속했던 터라 운이 좋으면 명문 경남고등학교도 걸릴 수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 밖이었다. 하필이면 불교 재단인 해동고등학교에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고신파 목사 아들이었던 내가 불교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예불에 참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고신파가 어떤 곳인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순교당하고 투옥당했던 이른바 출옥성도들이 만든 교단이 아닌가?

나는 불교 재단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영적 전쟁을 불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믿음을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믿음 좋은 친구들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학생신앙운동(SFC)이란 기독교 학생단체를 중심으로 뭉쳤다. 불교 학교에서 나는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찬양단을 조직했다.

남성 복사중창단이었으며, 우리는 모일 때마다 불교 학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송만 부르리라 다짐했다. 아침마다 여드름 송송 돋던 그 시절, 우리 찬양단은 부산에서 제법 명성을 날렸다. 다른 학교의 기독교단체 행사에 찬조 출연하거나, 일반 교회에 초청되어 특송도 했다.

우리 찬양단의 단골 레퍼토리는 김희보 작사, 김두완 작곡의 ‘본향을 향하네’였다. 워낙 많이 불러서인지 지금도 앞 부분의 가사가 생각이 난다.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 때/ 환난의 궂은 비바람 환난의 비바람/ 궂은 비바람 궂은 비바람 모질게 불어도/ 천국의 순례자 본향을 향하네.” 그 때는 가사의 내용이 뭔지도 모르면서 불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가사의 깊은 뜻이 심상치 않다.

우리 찬양팀원 중에 노래를 잘 부르던 친구가 있었는데, 타고난 미성(美聲)일 뿐 아니라 믿음도 좋은 친구였다. 그 친구의 이름은 정윤재이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의전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중에 부산의 건축업자가 부산국세청장에게 뇌물을 주는 장소를 알선했다는 혐의로 요즈음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바로 그 인물이다.

TV 뉴스나 신문에 그의 얼굴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불렀던 ‘본향을 향하네’의 가사 내용이 생각난다. 궂은 비바람, 환난의 비바람이 불어도, 천국의 순례자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데, 어쩌다 저리 됐을까,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하다.

혹여 내 친구가 권력의 힘에 눈이 멀어 본향을 향해 걸어가야 할 우리들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았는지 염려될 뿐이다. 인생의 거친 들을 헤쳐가는 믿음 좋던 친구를 위해 눈 감고 기도한다. 그래도 정윤재는, 내 친구 아이가?(국민일보제공)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