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휫필드의 부흥설교와 미국 복음주의”

박응규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는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의 설교가 바로 개혁신학에 근거한 부흥설교였다고 주장한다. 지난 17일부터 18일까지 박의서 목사가 시무하는 세곡교회당에서 조지 휫필드 목사의 생애와 설교 사역이라는 주제로 열렸던 한국개혁주의 설교연구원의 설립 23주년 기념세미나에서 박 교수는 조지 휫필드는 칼빈의 개혁 신학을 철저히 견지하면서도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흥설교를 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의 조지 휫필드의 부흥설교와 미국 복음주의라는 논문을 중심으로 박 교수의 강의를 다음과 같이 조금 더 소개해 본다.

▲ 박용규 교수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의 설교가 없었다면 18세기 영국과 미국 등에 복음주의 부흥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지 휫필드의 설교는 영미 복음주의 교회의 부흥을 일으켰고 이러한 복음주의 교회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파송되어 한국교회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복음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한국교회에서 조지 휫필드의 설교와 신학을 연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특히 미국식민지에서 그의 영적 신생”(New Birth)에 관한 설교는 급속하고도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조지 휫필드는 그 세기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지도자가 되었고, 조지 워싱턴 이전에 북미 전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인물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휫필드는 기독교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도 매우 신실한 신앙의 열매를 맺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그는 18세기 사회 환경에서 마이크나 어떤 전자 장비의 도움이 없이 단지 육성 하나만으로 수천, 수만의 성도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알리는 작업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휫필드 연구는 주로 그의 탁월한 웅변술과 마케팅 전략, 홍보 술과 같은 수단들에 집중되어 온 경향이 있었고 그의 설교 내용과 그의 신학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뉴잉글랜드의 대각성 운동에서 행해진 휫필드의 부흥설교의 주된 관심이 무엇이었는지를 고찰하고, 미국 복음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그의 부흥설교가 끼친 영향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 박용규 교수

박 교수에 의하면, 복음주의적인 신학은 적어도 세 가지 중심적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하나님 중심성(God-centeredness)", "구원론적 강조(Soteriological emphasis)", 그리고 "목회적 적실성(Ministrial relevancy)"이라는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조지 휫필드의 설교를 연구를 연구해야 한다.

 

18세기 시대적 배경과 조지 휫필드의 신생 설교

휫필드의 신학이 웨슬리 형제의 신학에 의존적이라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 휫필드는 웨슬레 형제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먼저 회심했고 야외 대형집회의 설교에 대한 경험도 그들보다 앞선다. 휫필드는 1735년에 회심하고 1737년부터 신앙의 공리주의로 말미암아 영적 갈급함이 있었던 18세기 회중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부흥설교자로 우뚝 서게 된다.

이런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휫필드를 어린 시절부터 준비시키셨다. 휫필드의 아버지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여인숙을 운영했다. 저녁마다 투숙객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장기 자랑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휫필드는 단시간 내에 청중의 관심을 끌어내고 소통하는 언어 사용의 방법들을 어린 시절부터 생활 속에서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의 세계 속에 살면서 언어의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준비시켰다. 이런 휫필드는 개혁신학을 공부함으로 확신과 집중의 원리를 배우게 되었고 이런 준비과정을 통해 설교 할 수 있었다. 조지 휫필드는 칼빈의 개혁 신학을 철저히 견지하면서도 초교파적인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실천적 적실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휫필드의 신생관에 나타난 하나님 중심주의

휫필드 설교의 주어는 하나님 이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설교를 했다. 설교뿐만 아니라 그의 일기에서도 자신의 죄성을 철저하게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언제나 부각시켰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새롭게 태어나는 백성들이 있어야 소망이 있다는 점에 철저하게 집중해서 끝까지 달려갔다. 종교개혁자들의 구원론을 18세기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잘 적용하는데 탁월했다. 휫필드는 성경 전체에서 표현되고 있듯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내용의 신본 주의적 구도속에서 중생을 강조하는 설교를 했다.

 

휫필드의 부흥 설교에 나타난 구원론적 강조

휫필드는 믿음에 의한 신생과 칭의의 교리는 청중들의 양심에 불을 밝힌 것 같은 길을 닦아 놓았다.”라고 말하면서 칭의 교리에 입각한 신생(New birth)을 강조했다. 18세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 체험이 없이 그저 상식 수준에서만 알고 있었다. 휫필드는 이런 백성들이 예수를 실제적으로 경험함으로 신생해야 됨을 강조했다. 거듭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철저히 강조함으로 18세기 영미권의 무미건조한 신앙을 활력 있는 신앙으로 바꾸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강조는 전적으로 성령에 의해 받아들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다.

 

이신칭의의 교리

휫필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야말로 가장 온전한 교리이며 충만한 위로로 가득한 교리라고 불렀다. 휫필드가 중생의 체험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하여 마음(heart)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는 자각, 체험 등과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종교개혁자들의 칭의 교리를 가르쳤다. 이러한 강조는 구원의 은혜가 지속적인 설교와 교리 교육의 과정을 통해 받아들여진다는 당대 청교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만만찮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휫필드의 설교에는 신생에 대한 강조와 함께 하나님의 영의 내주하심의 증거로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삶에 대한 부르심이 있다.

 

휫필드의 복음전도 활동에 나타난 목회적 적실성

휫필드는 언제나 자기 자신과 청중들을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한 마디로 휫필드는 들려지는 설교를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설교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설교했으며, 자신과 청중 모두에게 실천을 촉구했다. 설교 사역 전반을 통해서 열정적이고 설득적인 그의 설교 스타일은 모든 목회자들이 지옥으로부터 영혼을 구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모든 설교와 연설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그의 정열적인 확신을 통해서 완벽한 동기를 부여받은 것이었다. 휫필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통해서 복음의 원리를 선포했으며, 누구보다도 청중들에게 친숙한 언어 속에 자신의 설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휫필드의 신생 설교가 미국 복음주의에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다.

1) 성경 중심적 신앙: 휫필드에게 있어서 최종적이며 의문의 여지가 없는 궁극적 권위는 바로 성경이었다. 성경은 그의 삶과 사역의 중심이었다. 그의 수많은 부흥 설교들을 통해서 휫필드의 성경 중심적 신앙이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전달되었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성경, 특히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믿음과 실천의 최종적 권위임을, 이것이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원리를 그대로 붙드는 것임을 확고히 믿는 전통이 매우 강하다.

2) 원죄와 하나님의 선택: 휫필드의 신학은 인간의 암울한 상황을 토대로 해서 세워졌다. 그는 빛이 어둠에 대항하듯이, 인간의 의지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대항한다고 생각했다. 설교 전체에 걸쳐서 그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미국 기독교 안에 휫필드가 심어준 것은 도덕적 변화의 경험을 가능케 하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존 칼빈과 그의 청교도 후손들의 강조점을 갱신한 것이었다. 사회적이며 설교학적 혁신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휫필드의 복음은 전적인 타락과 무조건적 선택을 강조하는 칼빈주의적 신학의 요점에 충실한 전통적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자명하다.

3) 선교와 교육을 위한 활동지향성: 부흥의 주요한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선교와 교육을 위해 기울인 노력과 추진력이었으며 이러한 역동성은 미국 복음주의 신앙의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프린스톤 대학교, 다트머스, 럿거스, 브라운 대학교등이 설립되었다.

4) 교파 연합적 정신: 수많은 부흥집회들을 통해서 휫필드는 상호 교제가 결여된 채 각 교회별로 떨어져 있는 개인들을 하나로 모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교회중심적인 신앙생활에서 신생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교단과 지역을 초월하여 통합되는 더 큰 실재인 새로운 종교 문화를 창조하고 촉진한 것이다. 진정한 신앙의 최종 권위를 각 교파의 신조, 성례, 상호 언약에서부터 개인적 체험으로 대체시킨 휫필드는 미국 복음주의를 특징지어 온 부흥운동을 통해 촉발된 여러 가지 자원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18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을 이루어 낸 옛 진리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데에 조지 휫필드가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휫필드의 부흥운동의 성공은 당대 미국적 토양에서 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휫필드의 가장 중요한 옹호자 중의 하나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마저도 휫필드가 손쉽게 불러일으키는 황홀경의 체험과 열광주의는 이성적 지성과 성경 지식으로 규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 교수는 결론 부분에서 휫필드 설교의 긍정적인 부분이 많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문제 되고 있는 체험위주 신앙의 전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한 부흥설교의 가능성을 휫필드의 설교의 장단점을 참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는 박응규 교수 외에 박태현 교수(총신대원), 서문강 목사(중심교회), 김병훈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송삼용 목사(하늘양식교회), 서창원 교수(총신대원)가 강사로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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