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현대기독교연구원(현기원)에서 기독교철학과 인문학 분야에서 활동 중인 김동규 박사(서강대 철학연구소)가 자신의 최근 저서 <선물과 신비: 장-뤽 마리옹의 신-담론>를 중심으로 장-뤽 마리옹의 철학을 일일집중강좌로 강의했다. 마리옹이라는 잘 알져지지 않은 프랑스 철학자를 이야기하는 집중강좌에 예상보다 많은 20여명의 청중들이 참석하였다. 진지한 질문과 열띤 토론으로 강의에 참여했던 참석자들 대부분은 철학도와는 상관없는 일반 크리스천 직장인과 학생들이었다.
전통적으로 철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종교적 요소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숭고함, 신비, 선물(은혜)과 같은 신학적 연구 대상을 철학적 연구 대상으로 상정한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유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크리스천 청년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김동규 박사는 장-뤽 마리옹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풀어나갔다. 그에 의하면 마리옹은 신 존재에 대한 전통적 형이상학의 존재개념을 현상학적 존재개념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즉 형이상학적으로 개념화된 신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이라는 것이다. 마리옹은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신 개념은 우리의 이성적 능력으로 파악되고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사실은 우상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마리옹의 말을 빌리면, 이런 시도는 우리가 파악하고 볼 수 있는 신을 개념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신에게 우리는 기도도 못하고 찬양하지도 못한다. 이런 개념적 신은 그저 인간이 파악하고 사용할 수 있는 지평 혹은 경계 안에서만 신으로 존재한다. 참된 신은 우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분이다. 마리옹은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즉 볼 수 없는 분이 참된 신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상으로서의 형이상학적 신 존재개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행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고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 지평을 넘어서는, 즉 인간의 이성적 담론을 초월하는 신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마리옹은 골로새서1장 15절의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이시요”에서 형상으로 번역된 아이콘(εἰκὼν)이라는 헬라어를 사용한다. 아이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통해 비존재로서의 신 존재개념을 설명했다. 여기서 비존재라는 말은 형이상학적 존재개념이 아닌 형태로 존재하는 신을 의미한다. 마리옹은 눈에 보이는 것에 감탄하며 거기에만 머물러 있는 신 개념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형이상학적 존재 개념에서 신은 인식 가능한 대상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포섭될 수 있는 존재이다. 김 박사는 인간에 의해 포섭될 수 있는 신 개념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신 담론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인간의 체계와 논리로 신을 규정하는 스콜라적인 신론은 인간에 의해서 파악된 신과 인간의 이성적 틀에 갇혀진 신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자신의 분깃을 찾는다. 마리옹이 말했듯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과 큰 아들 모두 눈에 보이는 자신들의 분깃을 추구한다. 눈에 보이는 분깃을 초월하며 존재하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다. 아버지는 두 아들의 관점과 인식의 능력을 뛰어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 즉 인간에 의해서 포섭되지 않는 분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아이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아이콘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과 성찬을 통해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보이는 것에 함몰된 한국교회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2004년 현대기독교아카데미로 출범한 현대기독연구원(현기연)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교회 현안을 분석하고, 방향을 짚어내는 기획포럼을 수차례 개최하였고, 현대기독교사상과 관련한 정기 강좌와 세미나를 운영해 왔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현대상황에서 기독교사상의 연구와 교육, 사회적 제자도의 영성을 목표로 설립된 현기연은 사회적 책임을 위한 그리스도인 양성을 위해 ‘사회적 제자도 학교’(Social Discipleship School)를 개설, 운영해 왔으며, 현대기독교사상과 기독교인문학을 고취시키기 위해 ‘기독교사상학교’를 운용해 왔다. 현기연 관계자는 일부에서 현대기독연구원이 칼 바르트 신학, 톰 라이트, 공공신학 등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현기연이 진보신학에 심취된 단체라고 평가할지 모르지만, 사실 현대기독연구원은 처음부터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여 출발하였다고 밝혔다. 현기연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눈에 보이는 것에서 자유하여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