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표절의 양상과 대처 방안

▲ 발제하는 이성하 목사

1. 배후

얼마 전에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어느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교수님도 표절 대상에 지목되신 분이셨습니다. 먼저 인사를 드리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이 일이 기쁘십니까?” 그래서 아니라고, 많이 힘들고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쁨이 없으면 그건 성령의 일이 아닌데?” 저는 제 배후가 성령님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그 거룩한 이름을 이 번거롭고 부끄러운 일과 연관 지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신대원 다니면서 바울신학을 좋아했습니다. 그때가 1996년 즈음이었고, 당시만 해도 바울신학 관련 서적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때 이한수 교수님의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한수 교수님의 책이란 책은 거의 다 읽었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후배들하고 공부까지 했습니다. 이한수 교수님이 각주에 소개하신 책들까지 힘닿는 대로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표절반대 운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지목을 당하신 분이 이한수 교수님입니다.

이건 일종의 자업자득입니다. 자기 책으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그 책의 문제를 보고만 것입니다. 그 길로 이끄신 분도, 이 실력을 배양해주신 분도, 문제의식을 느끼게 해주신 분도 다 그분들입니다. 제 배후는 성령님이 아니라, 바로 그분들입니다. 이 일이 기쁘냐는 말에 대답하기 전에 당신들은 즐거우셨냐고 묻고 싶습니다.

 

2. 스승의 은혜

이번에 표절반대 운동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저에게 항의하셨습니다. ‘그 교수님의 책으로 내가 얼마나 많이 은혜를 받은 줄 아느냐’, ‘그 교수님이 얼마나 선교사역에 헌신하시는 줄 아느냐’, ‘그 교수님 덕분에 이나마 우리가 좋은 자료를 보게 되는데, 왜 이런 걸 지적하느냐.’ 어떤 분들은 메시지로, 전화로 자기 교수님을 옹호하기도 하셨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제자들의 말은 하나도 상처가 되지 않았고, 도리어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스승의 은혜는 다른 방식으로도 작용했습니다. 이한수 교수는 막스 터너 교수가 쓴 성령과 은사Power from on High의 상당부분을 자기 책 신약이 말하는 성령에서 표절했습니다.

막스 터너 교수는 이한수 교수의 논문지도 교수였습니다. 양용의 교수는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자기 스승인 R. T. 프란스 교수의 책을 표절했습니다. 전정진 교수는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자기 스승인 고든 웬함의 책을 표절했습니다. 이필찬 소장은 내가 속히 오리라에서 자기 논문 지도교수인 리차드 보캄의 책을 표절했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정말 하늘같은가요?

 

3. 표절과 번역(1)

표절반대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공간은 번역이네 집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표절 문제를 제기한 까닭은 그곳이 제가 활동하던 공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된 이유는 이한수 교수의 표절 수준이 번역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던졌던 질문이 번역인가, 저술인가?”였습니다.

그러나 이건 비단 이한수 교수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지적된 분들 모두 그와 비슷한 수준의 번역으로 표절을 했습니다. 물론 번역의 성격에 따라 직역이 있고, 의역이 있습니다. 또 세부적으로 분류하자면, 본문의 내용을 축약한 축약 역”, 있는 그대로 옮긴 카피 역”, 여러 부분들을 짜깁기한 짜깁기 역”, 각주를 본문으로, 본문을 각주로 옮긴 주객전도 역”, 글의 주어를 바꾸어서 자기 글처럼 만든 페이스오프 역”, 인용문까지 그대로 옮긴 차떼기 역”, 일부 단어만 바꾼 성형수술 역”, 일부 단어나 자료를 추가하고 구조는 그대로 옮긴 인테리어 역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분석한 책의 표절 수준은 그야말로 초보적인 수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표절 지적이 민감한 일이고, 주로 교수의 위치에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작업이라서, 저는 자기검열을 해왔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학술적인 상식으로 표절로 보이는 부분이 있어도, 논란이 될 만한 가능성이 있는 애매한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논란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총신대 구약학 교수 일곱분의 공동성명은 이 땅에 표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서였습니다. 직역 수준의 표절에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영원히 총신대 구약학의 치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솔직하고 철저한 반성문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4. 표절과 번역(2)

불과 이십년 사이에 우리 신학계에는 훌륭한 양서들이 다수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표절의 대상이 된 책들도 다수가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막스 터너의 성령과 은사, 데이빗 하워드의 구약 역사서 개론, WBC 주석 시리즈, NICNT 주석 시리즈가 이미 나왔고, 막스 터너의 Power from on High, NAC 주석 시리즈, NICOT 주석 시리즈, NIGTC 주석 시리즈 등이 번역 중이거나, 번역 대기 중입니다. 이 시리즈 중에 표절의 대상이 된 책들이 다수 들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양서들이 번역될수록 표절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그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가장 심각한 사례는 번역서가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그 책을 표절한 사례입니다.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장신대에서 신약학을 가르치신 교수 한분과 장신대에서 교회사를 가르치시는 교수 한분이 그런 사례입니다. 총신대 어느 교수의 경우에는 자기가 표절한 책을 자기 책과 함께 당당하게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표절한 책들이 번역되어 나오는 상황에서도 저자들은 표절한 책을 절판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판매하고 교재로 사용해왔습니다. 총신대 어느 교수가 자기가 표절한 원서와 자기 책을 동시에 교재로 사용하고, 독서과제로 제출한 경우는 오히려 양심적인 경우였습니다.

 

5. 목사와 교수

왜 이런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교수라는 위치가 이미 불가침의 권력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대학교의 교수보다 신학대학의 교수가 이 불가침의 권력에 더 쉽게 유혹되는 까닭은 그들이 교수이자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학자로서의 권력만이 아니라, 안수 받은 종, 목회자들의 스승, 교단의 얼굴이자 자랑, 어른으로서 신학교 교수가 누리는 권력은 가볍지 않습니다. 이 신성한 권력에 도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책을 많이 낼수록 명성은 올라 가고, 불러주는 교회는 늘어나고, 각종 집회와 세미나에서 그 명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송병현 교수입니다. 송 교수는 자신이 기획하고 만든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에서 무려 22권을 출판했고, 이 책들을 바탕으로 성경공부 교재까지 제작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송 교수 본인의 말마따나 이 시리즈는 주석 분야에서 수위권에 오르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송 교수는 이 시리즈로 기독교방송에서 고정 프로그램을 갖고 있고, 이 시리즈로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한때 송 교수는 신약까지 진출해서 신약 전권에 대한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을 저술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학원생들은 알면서도 쉬쉬하고, 동료 교수들은 자기들끼리만 수군거리고 끝납니다. 그야말로 언터처블로 지낸 태평세월이 하 세월입니다.

 

6. 교수불패

유명한 신학교 교수들은 출판사와의 관계에서도 그 절대 권력을 자랑합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유명한 교수는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계약서에서는 이지만, 실제로는 이었습니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때, 출판물의 내용에 문제가 있을 경우가 저자가 책임을 진다는 조항이 있지만, 출판사가 표절한 교수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지극히 힘들다고 합니다. 그 저자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활동할 것이고, 그 저자의 유명세가 지속되는 한 책은 계속해서 팔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출판 시장이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더구나 신학서적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명 저자들은 예외적인 호황을 누렸습니다. 이필찬 소장이 쓴 내가 속히 오리라200612월에 초판이 나온 후로 20155월에 10쇄를 찍었습니다. 김지찬 교수가 쓴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19993월에 초판을 찍은 이후로 2010년까지 19쇄를 찍었습니다. 평균 일 년에 1쇄에서 2쇄까지 찍은 것입니다. 출판사가 이런 저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이레서원의 경우 이필찬 소장의 내가 속히 오리라의 재판을 찍으면서 저자인 이필찬 소장에게 이 책이 표절에서 자유로운지를 문의했고, 이필찬 소장으로부터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얼마 뒤 이 책은 표절로 절판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이레서원은 이필찬 소장에게 책임을 물었을까요?

힘 있는 교수의 입김은 유명 시리즈의 기획에서도 작용합니다. 양용의 교수의 경우에는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어떻게 읽을 것인가시리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다고 합니다. 양용의 교수의 표절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처음으로 나온 반응이 표절이 아니라 저술 방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출판사에서 표절의 우려가 다분한 시리즈를 기획해서 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맡긴 것이 아니라, 양 교수가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서 시리즈의 성격을 가이드 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7. 제자들의 반란

표절 분석 작업을 시작할 때 제가 손에 쥐고 있었던 표절 의심 자료는 이한수 교수의 책 한권과 양용의 교수의 책 한권, 그리고 전정진 교수의 책 한권, 모두 세 권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전개된 일련의 작업은 모두 제보에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그 제보자들은 거의 스승의 은혜를 의심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눈 밝은 제자들이 그동안 품에 안고 있던 비리장부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김지찬 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왜 복음주의자들만 공격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던데, 그건 감히 말씀드리건대 복음주의권 신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했고, 자기 스승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학계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제자들의 반란은 계속될 것입니다. 교수의 절대 권력에 억눌려 숨죽이고 지냈던 제자들이 더 많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동안 저에게 페이스북의 메시지로, 이메일로 자기 학교 교수의 반응과 숨겨진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수없이 죄송하다고, 부끄럽다고, 자기 교수를 대신해서 사과하고, 힘내시라고 격려한 제자들은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도 없습니다.

 

8. 출구전략

주변의 많은 분들이 출구전략이 뭐냐고, 출구전략은 갖고 있느냐고 물어 오십니다.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제 꿈이 부흥사입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성경 읽고, 더 많이 연구하고 싶습니다. 아직 학위도 마치지 못했습니다. 종합시험도 봐야 하고, 박사학위논문도 써야합니다. 제 논문 심사위원으로 오실 분은 제발 안 걸리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고, 제보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올해 안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아마 내년이나 불행하면 내후년까지 계속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유일한 출구전략은 학계의 치열한 반성입니다. 먼저 학회나 대학별로 선진국 수준으로 표절의 기준을 세우고, 다음으로 표절논란이 된 저서와 논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심사해서 회원제명이든 경고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절에 대한 제보가 우리가 아니라, 학회나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김지찬 교수는 뉴스앤조이와 한 인터뷰에서 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흠이 없길래 자꾸 나를 비방하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표절 문제를 들고 나오려는 모든 사람을 겁박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신학교의 교수가 했다고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이런 말에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계는 적극적으로 합의점을 찾고, 대처방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결국은 결자해지뿐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불교에나 줘버리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합의할 수 있고, 얼마든지 회개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불의한 것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방울을 들고 쥐를 찾아가지 마시고, 주인 앞에 엎드려 방울을 달아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참고: 이 글의 장르는 보고서와 설교를 겸한 리포르서몬(reporsermon)이라는 새로운 장르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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