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흥규목사 /인천내리교회
다산이 유배생활할 때 맏아들이 고관에게 청탁해서 아버지를 해배(解配)시키겠다는 서신을 보낸 적이 있다. 이 때 다산은 ‘옳고 그름(是非)’과 ‘이로움과 해로움(利害)’의 저울로 네 가지 등급이 생긴다고 답했다. 옳은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이 으뜸이며, 옳은 것을 지키다 손해를 보는 것이 둘째다.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 셋째며, 그른 일을 하다가 해를 입는 경우가 넷째다. 다산은 아들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이 셋째 등급인데 필경 넷째로 추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계했다.

신정아 스캔들로 나라가 시끄럽다. 신씨의 학력 위조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 추락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이와 연루된 정·관계, 재계와 금융계, 대학 총장, 문화·예술계 인사 등 이 나라 최고 엘리트들이 일대 수난을 겪고 있다. 왜 그랬을까? Money, Sex, Power로 상징되는 욕망 때문이다. 목전의 명리에 어두운 나머지 그릇된 일을 택했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다산의 기준으로 본다면 셋째를 구하다가 넷째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의롭고 양심적인 길을 걸어야 할 기독교계도 자유롭지 않다. 예컨대 학위에 대한 허욕이 대단하다. 각종 교권 선거가 있을 때마다 금품수수와 부정 편법도 도마에 오른다. 벼슬을 닭벼슬보다 못하게 여겨야 할 성직자들이 세속 정치인 못잖음은 부끄럽다. 욥기 28장 28절은 “주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남이 지혜”라고 했다. 위로 영성과 아래로 윤리성을 겸전하는 것이 지혜다. 윤리적인 사람이 꼭 영적인 것은 아니지만 영적인 사람은 반드시 윤리적이어야 한다.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간의 이득 때문에 옳지 않은 일을 덥석 무는 이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볼 수 없다.

거미 하나가 헛간의 서까래 꼭대기에서 한 가닥 실을 떨어뜨려 거미집을 짓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거미집은 커졌다. 파리나 모기, 여러 곤충이 이 거미집에 걸려들어 많은 먹잇감을 가질 수 있었다. 거미는 다른 거미들이 부러워할 때까지 점점 더 큰 거미집을 지어갔다. 어느 날 야망으로 가득찬 이 거미는 한 가닥의 거미줄이 헛간 서까래의 어둠 한 가운데로 솟아오른 것을 보고선 그 줄이 있는 곳까지 갔다. ‘아니, 왜 이런 쓸데없는 게 여기에 있지?’ 거미는 이 거미줄을 타고 올라가 싹둑 끊어버렸다.

그랬더니 거미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지어놓았던 거미집 전체는 물론이고 이 거미집을 타고 있던 자신마저도 바닥으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릇 그른 일을 해서라도 욕심을 채우려는 이들의 마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예화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 15) (출처: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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