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신대원 문제 아름다운 해결의 길은 없는가?

이사회의 징계, 시간문제

천헌옥 목사

5일 이사회가 회집되어 고려신학대학원 최덕성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보고는 자체 이사회 내부 인사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위원장 안하원 목사)의 보고였다. 그런데 보고는 받고 징계위원회는 구성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신대원에서는 무슨 다른 변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이다. 사실 이사회는 동 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입시부정 사건은 혐의가 있어 징계위원회를 구성하여야 한다’는 보고서를 받기로 가결하였기 때문에 보고를 받으면 응당 따라야하는 징계위원회 구성이 빠졌다는 것에 대해 불만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이사회는 보고를 받았으니 이제 징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총회는 최덕성 교수의 입시부정에 관한 건으로 유죄를 결의하였다. 하지만 이사회는 교육부 법에 2년이 경과한 범죄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묶여 이 건으로 징계위를 구성하지 못하고 다른 보고 건으로 징계위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며 입시부정 건은 참고하여 징계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징계위원회는 뒤로 미루어놓았다. 무슨 이유일까? 신대원이 의심할만한 대목이며 모든 시선이 쏠리고 있음도 사실이다.

 

법정 판결이 남아

목사의 직위에 대해서는 부산노회가 이번 노회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주목되고 있는 반면 교수 직위에 대해서는 이사회뿐 아니라 법원의 판결도 시선을 끄는 대목이다. 신대원은 기다리다 지쳐 사법부의 도움을 얻고자 진정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신대원이 취하하지 않는 한 판결이 떨어질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덕성 교수 역시 진실이 가려질 수 있어 바라는 바라고 했으니 그 역시 소신을 버리지 않는 한 사법부의 판단은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서게 할 것이다. 신대원은 이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내며 100% 증거를 갖고 있으니 승소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함께 목사의 길을 걸어왔고 또 교수의 길을 걸어왔던 이들이 마지막을 이렇게 결론을 내야하는 막다른 길에 서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기찻길을 달리듯 팽팽한 모습은 종착역까지 계속될 듯하여 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 올해는 왜 그리 비오는 날이 많았는지 날씨마저도 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고신의 역사에 큰 오점 하나를 남길 그런 시기에 우리 모두가 함께 길을 가고 있건만 누구하나 이 일에 아름다운 해결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말려들기 싫고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는 심리작용이 있는 듯하다. 철저하게 양편에 서서 응원하거나 관중석에 앉아 구경하며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참으로 통탄할만한 애석함이다.

 

아름다운 해결의 길은 없는가?

“우리 친구 아이가?” 수많은 오해와 불신도 이 한마디로 불식 시키고 다시 친구로 나아가게 하는 소위 조폭세계 보다도 못한 우리들인가? “우리 고신 아이가?” 이 한 마디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

최덕성 교수는 2009년이면 교직생활 20년이 된다. 한 2년여 남았을 것이다. 그 마지막 종착역을 앞두고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있다. 영원한 추락이냐 아니면 기사회생이냐의 기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별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길이 없을까. 그러나 길은 영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우리 고신 아이가?”라는 명제에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최덕성 교수는 코람데오를 신조로 하는 고신인 답게 모든 것을 솔직히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총회가 이미 그렇게 결정을 하였기에 이를 겸손히 수용하면서 “저 고신 아입니꺼”하며 고신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지난 과오를 솔직히 고백한다면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오히려 그 용기 앞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고신인의 용기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마저도 본인이 받아들일 수 없고 내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한다면 결과는 마지막까지 가게 될 것이다.

학교는 최교수가 용서를 구하게 된다면 “그래 우리 고신 아이가?” 하며 받아 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가 무엇인가?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소도 취하하고 그가 남겨놓고 있는 2년의 교수직을 유지하게 해주어 개인적으로도 아름다운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물론 학교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으나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차제에 같은 맥락으로 이성구 교수건도 결론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최 교수 건은 많은 조사를 통해(총회조사위원회, 신대원조사위원회, 고신대학교조사위원회, 이사회조사위원회) 조사되고 검정되었지만 이성구 교수 건은 한 번도(본인이 참석한 조사는 한 번도 없었다) 정밀 조사를 받아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총회는 신학위원회에서 하든지 재판부에서 하든지 아니면 연석으로 하든지 그의 신학사상을 다시 점검하고 문제가 있다면 처리할 것이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하고 해서 문제를 해결하여 나갔으면 하는 것이다.

최덕성 교수나 이성구 교수나 모두가 아까운 인재들이다. 최교수의 성실함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바이고 이교수의 명석함도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 교단에 한 몫을 할 인재들이 아닌가? 과연 아름다운 해결책은 없는 것인지 안타까워 쏟아질 비난을 십자가 뒤에 숨으며 마지막으로 이 한 마디를 하며 주장해 본다. “우리 고신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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