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들은 청중의 반응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물론 그 예민함으로 인해서 더 좋은 내용의 강의를 준비하고 때로는 청중의 반응을 따라서 강의의 방향이 바뀌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는 청중도 있고 청중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내용과 목적이 이미 정해져 있기에 일반 강의와는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는 교인들에게 더 좋은 설교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하루도 떨쳐 버릴 수 없고, 설교를 듣는 교인들 역시 더 좋은 설교를 듣고 싶어하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더 좋은 설교를 듣고 싶어하는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설교자 역시 더 좋은 설교를 위해서 부단히 준비를 해야 하는 부담으로 인해서 설교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생각해 보면 잘하는 강의를 들을 때에 사람들은 반응의 표시로서 박수를 크게 치거나 소리 내어 웃으면서 함께 즐거워합니다. 잘하는 설교를 들을 때는 강의와 비슷하게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 강의와는 다르게 설교를 들은 회중들은 오늘 설교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라는 특별한 대접(?)을 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오늘의 설교가 좋았다, 오늘의 설교가 감동적이었다는 뜻인데 이 은혜를 더 받게 하기 위해서 여기 저기에서 설교를 잘한다는 설교자를 초청해서 설교를 즐기는(?) 교회도 더러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교회는 외부강사의 설교가 자주 있는 편도 아니고, 설교 스타들에게 사례를 해 가면서 초청하지는 않기에 크게 염려할 바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은혜를 받았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김해 보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할 때에는 내 마음이 후련하고 시원하거나 알지 못했던 신학적인 고상한 지식을 알았을 때를 말하지 싶습니다.

그러나 좋은 설교가 이어질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내가 고쳐야 할 교훈과 내 삶에 적용할 점을 찾아내는 은혜로운 성도들이 많아질 때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수준의 귀를 가지기 보다는 낮은 마음으로 자신의 삶에 적용할 점을 부단히 찾아 내므로서 제대로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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