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독사진협회 유영무님의 작품이다.

 

[삶을 걸으세요] -지형은

 

노을이 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걷지 마세요
앞서가서 노을을 기다리며 사진 찍을 수는 있지만 
물들어가는 노을 한가운데서야 오롯이 누리는
가슴 저리는 그 아름다움은 경험할 수 없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속도보다 급하게 살지 마세요
무엇을 이루려고 빨리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거지 하면서 
진하게 밟지 못한 채 지나간 땅을 회한할 겁니다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리는 어느 시인처럼
떨어지는 잎과 함께 삶을 덜어내어 비우면서
거기에서 역설적으로 채워지는 가을의 신비를
온몸으로 살아야 비로소 삶입니다

 

나이 먹는 게 싫다고 그보다 느리지는 마세요
어느 나이든 그걸 한껏 끌어안으면 거기에서 
그보다 젊은 나이가 도무지 상상도 못하는
비밀 같은 기쁨이 가을 강처럼 흐르는데
늦게 도착해서는 그 감격을 맛볼 수 없습니다

 

노을과 함께 안단테로 걸어 어느 바닷가에 이르면
저마다 제 나이를 깊은 감사로 안고 삶을 걸어와
가을을 닮은 이들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을 테지요

 

거기에서, 살아온 얘기를 나누며 밤새 행복하고
그때 마음에 품은 별 하나 그 빛이 찬란할 텐데
지금 여기에서 바로 영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삶의 놀라운 비밀이 거기에서는 일상일 겁니다

 

삶을 다그치며 빠르지 말고 억누르며 느리지 말고
행복할 만큼만 늘 그렇게 삶을 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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