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막 수도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성호 박사(서울신대)에 의하면, 사막의 수도자들은 세상을 본 받지 않기 위해서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분리되었으나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섬기기 위해 세상과 연결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다. 지난 7일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있었던 한국복음주의 실천신학회(회장: 양병모 박사) 30회 학술 대회의 자유발표 시간에 조성호 박사(서울신대)사막 수도자들의 영성에 관한 사회학적 고찰: 21세기 한국교회를 위한 전략적 요소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조 박사는 세상과의 분리를 통해 세상과의 연결을 추구했던 사막 수도자들의 영성을 사회학적 관점의 도움을 받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한국복음주의 실천신학회 제30회 학술 대회가 열리고 있다.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수도생활

조 박사는 현재 신앙 공동체가 직면한 현실의 위기를 통해 미래를 향한 대응방안을 고민하는 실천 신학적 차원에서 사막 수도자들의 영성을 단순히 평면적인 서술이나 개념 정리가 아닌, 당시 시대 정황에 대한 분석과 그것에 대한 사회학적 판단을 통해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조 박사는 사막 수도자들의 영성이 이후 세대에 전달된 다양한 파급효과들을 살피는 것을 일차 목표로 설정한다. 그리고 이런 일차 목표의 달성을 21세기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정황과 연결시켜, 사막 수도자들의 영성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영성의 핵심 가치들을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에 적용하고자 한다.

조 박사는 4세기 이후 등장한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 이방세계를 완전히 포기한 사막 수도자들을 최초의 기독교 수도자들로 분류했다. 이러한 기독교 수도생활의 사회적 배경에 대해 조 박사는 복합적인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 수도생활의 등장이었다고 밝힌다. 즉 수도생활은 활력을 상실하고 교권주의로 변질된 교회의 모습을 암묵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교회가 세속화 과정으로부터 본래 궤도로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항의를 상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도생활의 사회적 의미

조 박사는 교회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는 기독교 수도생활의 역사적 기원과 사회적 배경을 연구하고, 그를 통해 현대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적용하는 방식은 기독교 영성이라는 주제는 물론 실천신학적 차원에서도 매우 정당한 방법론이라고 주장한다. 즉 수도생활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현대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와 도전에 응답할 수 있는 신학적 원리들을 유추하려면, 기독교 수도생활이 지향했던 특정한 주장과 이상에 대한 사회적 의미와 기능을 분석하고 그로부터 기독교 수도생활이 야기하는 영적 변화와 교회 개혁의 요소를 가설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이런 관점에서 수도생활의 사회학적 특징들을 명시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금욕적 삶: 조 박사는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열망이 사막 수도자들의 금욕적 삶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는 동력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금욕적 삶에 의한 재산분배와 공동체 의식 함양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조 박사는 수도생활이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적 평등을 구현하는 사회적 기능의 중요한 매개체였음을 증명한다.

2) 고독과 분리: 조 박사는 수도자들의 고독과 분리는 황제의 보호 아래 제도적인 권력기구로 변모한 교회에 대한 강한 반발과 실망을 내면에 포함하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할 여러 책임들을 회피하려는 이기적 목적으로 수도생활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투쟁을 통해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려는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생활이 추구했던 고독과 분리가 단순히 세상 또는 사회생활과의 절연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사회적 책임을 구체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한다.

3) 섬김과 봉사: 조 박사에 의하면, 신경을 분산시키는 모든 구조들로부터 이탈하여 오직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려는 수도생활의 극단적인 모습은 배타적인 종교적 광신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로 회복된 영혼은 인간의 본래 모습을 찾고 자신을 둘러 싼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창조세계와 사랑과 평화의 관계를 누린다. 수도생활 본연의 정신과 이상은 금욕으로 형상화되는 외적 삶과 고독을 통해 성취하려는 영적 지향, 그리고 성취된 영적 지향을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섬김과 봉사의 결합된 모습을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조 박사는 수도생활을 접하는 오늘날의 시각은 수도생활을 배우거나 접목하는 시도가 아니라, 수도생활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영성의 요소에 집중함으로써 입체적인 삶의 역동성을 불어넣는 방법론을 선택해야한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역사적 정황의 유사성: 전자기술 혁명은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삶의 범주와 소통방식, 국가 간의 지리적 거리감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해서 더 이상 정착된 상태의 영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로 상황을 변화시켰다. 현대사회가 나타내는 이런 일련의 급격한 변화들은 사막 수도자들의 등장시기에 벌어진 급격한 사회변화와 상당히 유사하다.

2) 유사한 위기: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한국교회는 이기적 개인주의, 도피적 타계주의, 권위적 계율주의, 참여적 행동주의 등의 특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과 목회방식, 교회의 정체성과 성도가 추구해야할 올바른 삶의 가치 등이 혼돈에 빠져 여러 이단들과 왜곡된 신학적 주장들이 난무했던 모습은 수도자들이 광야로 나가 진지하고 깊은 영적 생활에 집중하도록 유도한 심리학적 동기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교회라는 종교적 기구의 필요성에는 부정적이지만, 초월적인 신성과의 접촉을 통해 삶의 공허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얻으려는 시도가 확산되는 현상은 교회에 대한 반발과 저항의 결과로 등장했던 수도생활을 연상시킨다.

3) 사막 수도자들의 현대적 적용: 수도자들의 금욕적 삶과 고독한 주거형태를 현대사회의 경제구조에 맞춰 재해석, 재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다. 과거 수도자들의 재산분배와 수도생활 공동체의 노동 등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문제가 수도자를 통한 영성훈련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 성장을 자본주의적 성공과 일치하는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왜곡과 오류가 만연한 한국교회의 실상을 상기할 때, 금욕적 삶과 고립된 생존방식을 주창했던 수도자들의 이상은 더 강력하게 쇄신된 모습으로 적용되어야할 당위성을 지닌다.

▲ 자유발표 좌로 부터 좌장 정창균 박사, 발표자 조성호 박사, 논평 오현철, 김대진 박사

한국 기도원 운동: 기도자가 주체 하나님은 객체?

결론적으로 조 박사는 수도생활을 통해 추구했던 궁극적 가치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이자 대상인 사람이라고 밝힌다. 조 박사는 단순한 제도 개혁으로 복지와 경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기독교 수도생활의 근본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완벽하게 모방하길 원했던 순수한 신앙과 영성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누구나 피하고 싶은 예상하지 못한 위험에 삶 전체를 던졌던 사막 수도자들 같은 영성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논평을 맡은 오현철 박사(성결대)이번 연구가 다양한 접근방식을 통해 소수 학자들의 연구에 편중되지 않고 영성연구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데 큰 공헌도가 있다고 평했고, 김대진 박사(고려신대원)주관적 신비체험의 범주에 머물러 있는 영성이라는 개념을 사회학적 맥락에서 논함으로 영성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연구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좌장인 정창균 박사(합신대원)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 시간에 한국교회 기도원 영성과 사막의 수도사 영성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조 박사는 한국교회 기도원의 영성이 기도자를 주체로 하나님을 객체로 놓고 주체인 사람이 객체인 하나님을 설득하는 영성이라면, 사막 수도자들의 영성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고 수도자들은 객체가 되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전적으로 다스림을 받으려는 영성이라고 대답했다. 이 점은 한국교회의 부흥을 꿈꾸며 예전의 기도원 영성을 추구하려는 분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체가 되어 기도라는 수단으로 객체인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한국의 기도원 영성이 어쩌면 한국교회 제반 문제의 주범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기도원 운동이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 사막 수도자 영성으로부터 많이 배워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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