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준비하는 교회로 제목을 써놓고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표현은 마치 교회가 통일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 교회는 통일의 결정권자가 아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공식 수행원 중 기독교를 대표한 개신교 대표(KNCC 총무)는 원불교를 포함한 4대 종교에 대한 균등 예우 차원으로 포함되었을 뿐이다. 제목을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 통일에 대비하는 교회로.

통일은 대비되어야 한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독일식 흡수 통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민족 통일의 염원을 무작정 연장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통일 문제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이 남북화해의 큰 보따리를 국민 앞에 펼쳐 놓았지만, 남쪽은 재정 부담을 누가 질 것이냐의 문제로 주춤거리고, 북쪽은 추가 개방이 자칫하면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망설이고 있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미적거리고 있는 동안 남한의 기업가들은 점진적 통일의 수단으로 남북경협을 주장한다.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보겠다는 논리는 제법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낙관론이다. 북한의 체제수호 논리는 인민의 경제적 안녕보다 우선하는 것이며, 남한의 저임금 근로자들은 북한의 노동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냉혹한 경제 현실을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국면에서, 한국 교회는 어떻게 통일에 대비할 것인가. 북한교회를 접수하고, 그 진공상태에서 교단별로 선교 지역을 할당하여 교회를 재건하겠다는 계획은 신중하지 못하다. 지금 한국 교회가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은 선교지 분할이나 교회 재건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것이 아니다. 흡수통일이 되든 연방제 통일이 되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정신적 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 신봉해왔던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이 붕괴하면서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작금의 많은 탈북자들이 신앙생활을 통해 정신적 박탈감을 메워가는 것을 통해 이러한 유추가 가능하다.

통일 과정에서 파생될 개인의 심리적 현상을 예견하며 정신의학적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전우택 교수의 연구결과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국 교회는 통일이 되었을 때 발생할 북한 주민들의 정신적 충격을 신앙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대비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주체사상에 대한 신학적 연구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일보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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