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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사에 관한 견해

2. 예언에 대한 견해

1) 예언의 종류

2) 예언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3) 기도원이나 선배들이 준 예언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

3. 방언에 대한 견해

1) 방언의 종류

2) 일반 성도나 현대교회에선 방언이 필요한가?

4. 결론

 


1. 은사에 관한 견해

▲ 이병삼 목사(충신교회원로)

신약성경에 은사에 대한 헬라 원어는 3가지가 있다.

1) 도리스(δύαις 1:17), 2) 도레아(δωρεά 고후9:15, 6:4), 3)카리스마(χριςμα 1:11, 5, 15)이다이 세 단어의 원뜻은 모두 선물’(gift)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신약성경에서는 특히 인간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각종 재능과 사명직무 등을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전12장을 통해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뽑아본다.

1) 모든 은사의 본질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12:3). 고전에는 성령의 은사를 9가지로 말하고12장과 엡4장에서는 12가지로 말하여 성경에 성령의 은사는 도합21가지로 기록이 나온다이 21가지 은사의 본질적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다(6:40)

2) 모든 은사는 더 중요하고덜 중요한 차이가 있을 수 없다(12:4).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성령은 한 성령에게서 한 목적을 위해 주신 것이니 더 중요하고덜 중요하다고 말 할 수 없다어떤 은사는 굉장히 위대해 보이고어떤 은사는 좀 시시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하등의 차이가 없으나 교만과 죄악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3) 각각 맡은 직임은 신앙의 척도도 아니고고저도 없다(12:5).

직임과 직위를 계급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어떤 직임과 직위는 봉사와 섬기기 위한 것들이다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신앙의 척도와 고저가 아닌 것이다그러므로 어떤 직임과 직위든 감사하므로 순종할 뿐이지 명예와 신앙의 척도가 아닌 것이다.

4) 은사는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신덕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12:7).

성령의 은사는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선물이다만약 은사가 신앙의 목표라면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이 어떤 은사를 가졌느냐가 초점이 있는 것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말씀에 순종하며 신앙대로 사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5) 은사는 보이는 은사보다보이지 않는 은사를 더 귀중히 여겨야 한다(12:8-10).

성령의 9은사는 드러나 보이는 은사이다그러나 보이지 않는 은사가 있으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은사이다아무리 보이는 은사가 제아무리 풍성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은사인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다.

6) 은사란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12:11).

성령님이 자신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임으로 주신다그래서 선물인 것이다그러나 그 선물을 받았다고 그 사람의 전유물도 아니고 소유물도 아닌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은사를 소유할려고 애쓴다은사를 사모하는 것 자체는 잘못은 아니다내 뜻대로 쓰라고 주신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봉사와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7) 성령님이 나에게 준 은사란 무엇일까요(12:11).

모든 성도에게는 21가지 중에서도 여러 개를또 보이지 않는 은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은사 중 에서도 어던 분은 더 많은 봉사와 섬김을 위해 많이 준 자도 있고어떤 분에게는 예정하신 뜻대로 적게 주시고 한 가지나 몇 가지에 집중하도록 하신다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게 함과 교회 덕을 위함과 이웃과 사회를 위함이다.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는 이런 선물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과분할 정도로 보이는 은사보이지 않는 은사로 귀중한 선물로 안겨 주심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그간 알게 모르게 이 모든 은사를 나를 위해 내 뜻대로 사용된 점이 있다면 회개하고이제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 이웃과 사회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최선을 다해 충성봉사섬김베품으로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시길 바랍니다.

 

2. 예언에 대한 견해

1) 예언의 종류

예언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예언(預言)과 예언(豫言)입니다.

한문 성경도 구분이 안 돼 있고한글 성경에는 둘 다 예언이라고 기록 되어 혼선이 온 것이다.

① 예언(預言)(,프로페테우오 προφητευω 와 영,prophecy)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뜻이다구약의 예언자는 豫言者가 아니라 預言者이다구약의 예언자를 나비,א׳בכ 이고,헬라어로 프로페테스 προφητης라고 한다.

② 예언(豫言)(,predict(prediction이라는 단어로)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한다는 뜻이다.

구약성경 선지서들에는 예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거기 예언은 모두가 prophecy를 의미 합니다(預言). 그래서 선지자들의 預言 가운데는 豫言이 포한되어 있는 경우도 많이 있기도 합니다.그러나 그 선지자의 豫言이 아니라 하나님의 豫言을 한 것입니다신약 성경의 고전12장과 14장에서는 계속해서 예언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영어 성경을 자세히 보면 prediction(豫言)이 아니고, prophecy(預言)으로 정확하게 구분하여 있습니다우리 성경에서 또 다른 예로는 사랑이란 단어입니다우리 성경은 모두 사랑입니다헬라어나 영어 선경은 완전 구분되 있다.

사랑 ① 스톨케 στοργή : 가족적동족적인 사랑 ② 휠리아 φιλία 친구나 우애적 사랑 ③ 에로스ρος 이성적정적 사랑 ④ 아가페 γπη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 이렇게 구분된 단어를 우리 성경은 한 단어로만 사용하니 큰 혼동이 오는 것이다.

2) 예언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언의 은사는 預言을 뜻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결론부터 말하면 현대에서는 預言은 끝났다는 점과 豫言은 존재치 않는 것이다預言은 계시의 종말로 성경 66권 전부에 기록해 두었으니 더 이상 預言은 없으며豫言은 하나님과 성령님예수님만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사람이 이 豫言은 은사를 받았다는 자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100% 한 번도 틀림이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豫言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다세상 지식적인 人間의 예언은 20~30%어쩌다 맞는 것은 예언의 은사 받은 것이 아니고세상 지식적인 은사 받은 것이나 악령이나마귀의 은사 받은 것이나 아니면 또 혹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예언이라고 하든지통계학으로 어림잡아 하는 것이 맞는 수가 있다그러나 그것이 성령님이 주신 예언의 은사가 아닌 것이다고전에서 나오는 예언의 은사사도시대에 국한된 예언이었다.

4C말까지는 정경이 완성되지 못해서 하나님이 일시 豫言의 은사를 주신 것 같으나 이미 預言된 말씀이 더 많다. A.D.397년 정경 완성으로 預言도 豫言도 종결된 것이다이제 더 이상의 預言이 필요치 않는 시대인 것이다.

3) 기도원이나 선배들이 준 예언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

계시 종결로 預言도 豫言도 더 이상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시대인데도 기도원에 기도하려 가면 자칭 預言者들이 여러 가지로 예언해 준다. ‘당신은 신학 공부해서 목사가 되라’, ‘당신은 목사 사모가 되라’, ‘당신은 장로가 될 수 있는 꿈을 어젯밤 주셨으니 명심하라’. 이런 예언 받은 자가 혹 있거들랑 빨리 잊으세요다 점쟁이들이 점 꽤 대로 속이는 말이요무당들이 무당 굿하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이런 것이 계속 예언되는데 다 맞고 틀림이 없다면 하나님이 또 다른 성경을 쓰시고 계신 것이니, 66권 이외 계속 출간되어야 한다성령님이 우리 기도 시간에 음성으로 잠 속에서꿈으로 다시 우리에게 예언해 주시지 않으시니 거기에 속지 말고 성경에 맞는 말씀만 하나님의 預言이지 성경에 맞지 않는 豫言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3. 방언에 대한 견해

1) 방언의 종류: 성경에 기록된 방언은 세 가지로 기록이 나온다.

① 다른 나라 말인 방언이 있다: 성령의 감동으로 배우지도 않은 다른 나라 말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게 됩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배우지도 않은 다른 나라 말로 전도한 것이다오순절에 모인 15개국 성도들께 그들 나라 말로 전해지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게 된다예수님 제자들은 갈릴리 어부 출신이 대다수 였고외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다성령님의 능력으로 만이 가능한 것이다.

②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있다: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않고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하였다그러므로 성령님이 필요에 의해(장본인께 확신 주기 위함듣는 이가 신기하게 느끼게 하기 위함), 혹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고전14:28). 통역이 없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교회 안에서 하게 되면 말하는 자도 야만이 되고,듣는 자들도 야만이 되고 만다혹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믿음의 확신을 얻는 다음부터는 새 방언을 하던지 이미 預言된 말씀 정경으로 깊이 들어거야 신앙의 성장이 올바로 된다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에만 머물러 있으면 영분별을 못하므로 마귀 유혹에 넘어가기 쉬워 교만과 자만에 빠져 신앙에 저해가 되고신앙의 열매가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③ 새 방언이 있다(16:17): 새 방언이란 것은 성경 말씀을 새롭게 깨달아 자기 나라 말로 전하기도가르치기도 하는 것이다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달은 것은 처음 듣는 말이요그 내용이 새로운 말이다그래서 새 방언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성경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라 유한된 인간은 평생 깊은 은혜의 세계신령한 세계로 들어가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연구하고 해도너무도 깊고 오묘해서 다 캐내어 알 수 없고완벽한 진리라고 확언할 수 없다그러나 성경은 완벽하고 조금도 부족 된 면이 없다.

2) 일반 성도나 현대 교회에선 방언이 필요한가?

2장의 방언은 외국타국 방언이었고그 목적이 오직 복음 전하기 위해서 성령님이 일시 주신 것이지 제자들 일평생 이 은사가 계속된 것은 아니다오늘날 현대 교회에서 행해지는방언은 듣는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없으며심지어 방언을 말하는 본인도 그 뜻을 전연 모르고 그냥 하는 것이다이런 방언이 무슨 목적으로 현대에 꼭 필요하다고 보는가이젠 필요치 않다고 본다현대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 유익이 없다고 한 것을 보아 통역이 가능한 방언은 預言의 말씀이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특히 칼빈은 강하게 주장했다)

고린도전후서는 A.D.52-57년 경에 기록되었고요한계시록 A.D.100년경에 기록되었다신약성경이 정경으로 채택되기에는 또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A.D.363년 라오디게아회의 때 목록 수집하기 시작하여 34년간 숙고 끝에 A.D.397년 칼타고회의 때 정경으로 27권이 확정되었다사도시대 이후 300년간 통역된 방언은 預言의 말씀으로 정경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정경이 완성된 후에는 계시가 종결된 것 같이 豫言도 종결되었고預言도 방언도 종결되어야 마땅하다는 견해이다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나 현대 교회에선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자제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4. 결론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은사는 충만한 교회였으나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교회였다그래서 분열,분당이 생겼으며(1:10-4:21), 부도덕해서 음행 죄가 교회 안에까지 침투했으며(5장 전체, 6:12-20),서로 싸워 세상 법정까지 고소했을 뿐 아니라(6:1-8), 주님의 성찬을 욕되게까지 하였다(11:17-34).뿐만 아니라 저들은 부활도 바로 이해하지도믿지도 않했으며(15장 전체), 이런 점에서 서로 자기만 내세우는 개인주의로 자기가 받은 은사를 자랑하고 뽐내는 통로였다그래서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공적예배 시간에 소란을 피우므로 예배의 질서가 흐려지고혼란한 고린도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리도전서를 쓰게 됐다그래서 바울은 방언 보다는 預言을 힘쓰라고 한 것은 그 預言의 은사가 당시 고린도교회에 유용성 때문에 더 크게 부각시킨 것이다여기서 預言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이요그 해석이요그 설교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방언이 통역이 되는 경우에는 듣는이까지 덕이 되고 유익이 있으므로 預言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고전14장에 들어가서 전체의 흐름은 방언 자제 쪽에 무게를 두고 기록했다.

①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도록 하라(1)

②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 알아 듣는 자가 없고(2)

③ 방언은 자기 덕을예언은 교회 덕을 세우나니(4)

④ 방언은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예언하는 것만 못하다(5)

⑤ 방언은 성도들에게 유익이 없다(6계시지식예언에 비해서)

⑥ 방언은 뜻을 분별할 수 없음으로 알아들을 수 없다(7)

⑦ 전쟁을 예비 할 수 없다(8나팔)

⑧ 허공에다 말하는 것과 같다(9)

⑨ 방언은 말하는 자나 듣는 자가 다 야만이 된다(10-11)

⑩ 방언은 통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12-13)

⑪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기 영은 기도하나 마음에는 열매가 없다(14)

⑫ 방언으로 축복이나 감사할 때무식한 자는 아멘할 수가 없다(16-17)

⑬ 성경 깨닫고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하는 것보다 낫다(19)

⑭ 방언이 복음의 세계를 접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 주신 표적이나 지금 세계는 이 복음을 못 듣고못 본자 없는 시대이니 자제함이 좋고(21-22)

⑮ 온 교회가 다 방언하면 무식한 자나불신자들이 볼 때 미쳤다고 한다(23)

⑯ 다 預言하면 그들이 와서 책망판단을 받고숨은 일이 들어나므로 하나님게 경배하고,복음이 전파된다(24-25)

바울은 누구보다 방언을 잘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바울도 자제하고 삼가게 되었다성령 은사 중의 하나인 방언의 은사는 성령님이 꼭 필요한 자에게 개인적인 영적 깊은 세계의 은혜 생활하도록 주신 것이다그러나 교회나 공적 예배나 공동체에서는 유익이 없으므로 자제하고 삼가는 것이 성령의 뜻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 나타낸 다고 바울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설교하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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