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

 후한 시대 초엽, 중국 역사서인 "한서(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표(班彪)의 아들로 다른 형제와는 달리 무인으로 이름을 떨친 반초 (班超)라는 무장이 있었다.  반초는 2대 황제인 명제(明帝)때(74년) 지금의 신강성(新疆 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군사마(軍司馬)에서 장병장사(將兵長史)를 거쳐, 4대 화제(和帝)때인 영원(永元) 3년(91)에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庫車: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되었던 서역도호부 (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 사찰(査察)하여 이반(離叛)을 방지하는 소임을 맡은 것이었다. 도호로 활동한지 11년만인 영원 14년(102), 반초가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으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  그 유명한 반초의 대답이 주어졌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淸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 

 임상은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자기 소신대로 엄하게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安帝) 때(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배반하고 말았고 서역도호부도 폐지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어떻게 정치에 임해야 하는 것을 말할 때마다 ‘수청무대어’라는 말을 되새기게 된 것이다.

 

정치, 아무래도 맑을 수 없는 물?

 정치 지도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최고의 지도자가 지나치게 원칙만을 따지고 까다롭기만 하여, 작은 일에까지 신경을 쓰면 아랫사람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초기 그에게 집중되었던 비판과 흡사하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직위에 인물이 바뀔 때마다 신문은 그들에 관한 간략한 이력을 싣는다. 출신학교, 지역, 나이, 가족관계, 취미 등을 언급하면서 그 사람의 인물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덧붙이는 것이 있다. ‘강직하고 통솔력이 있어 사람들이 따른다’, ‘온화하나 결단력이 있다’, ‘합리적이고 부드러우나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는 등등의 문구들이 그것이다. 기자들은 그 같은 촌평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 조직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나름대로 제시하려 한다.

 정치에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각종의 이익 단체간에 일어나는 충돌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항상 적절한 선에서의 타협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정치적 사안을 흑과 백으로 단순하게 구분하려들면, 오늘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결국 정치는 끝없는 소모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와 야, 노동자와 사용자, 생산자와 소비자, 나아가 정부와 국민사이 등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자들 사이일지라도 서로 지나치게 원론에 매이기거나 혹은 과격한 방법을 동원하려는 극단주의에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는 타협이요 차선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 옳다. 맑은 물만 고집하면 돈이 붙지 않으니 사람도 모이지 않고 재미도 없다. 적당히 로비도 당하고 돈도 받고 사업에 도움도 주는 정치문화를 그리워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큰 인물이 되려면 어쩔 수 없이 ‘수청무대어’를 자주 되내어야 할 판이다.

 

맑은 물에 노는 큰 고기들을 보고 싶다

 그런데 세속 정치에나 적용될 이런 자세를 교회정치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적용하려드는 것을 심심찮게 대하게 된다. 교회와 교단, 교계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관행과 불의한 일들에 관하여 지적하고 개혁을 촉구하면, 너무 그러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이 다 그런 것’이라느니 ‘사람은 별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냥 지나가라는 충고를 자주 듣게 된다. ‘너무 그러면 안 좋다, 괜히 까다롭게 굴면 적이 생길 뿐 무슨 유익이 있느냐’며 힐난하기까지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고 따른다. 그저 모든 일을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요 문제가 있어도 믿어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식이다.

 34세의 젊은 루터는 인구 2천명의 소도시 비텐베르크에서 당대의 도도한 탁류에 홀몸으로 맑은 물을 고집하며 중세교회 역사를 바꾸는 역사적 도전장을 던져,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그의 신앙노선을 따르는 무리들이 개신교 가운데 가장 큰 교파를 이루고 있다.  26세의 어린(?) 나이에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집필하며 여전히 당시 역사를 주도하던 어둠침침한 로마교회에 대항하여 정결한 교회를 꿈꾸며 신학적 공략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 각지의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들이 그의 신학적 공헌 위에 든든히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교회 역사는 맑은 물에 얼마든지 큰 고기들이 살 수 있음을 입증해 주었다. 고신 교회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일재하에서 왜곡된 한국교회를 변화시키며 정결한 모습으로 바꿀 방법의 일환으로, 이 땅에 남겨두신 것이 아닌가?

 돈과 정욕, 헛된 명예 얻기에 정신을 잃고, 인본주의 세속주의 물량주의에 교회의 영적인 능력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오늘의 한국교회 앞에, 겸손과 자기희생, 헌신, 봉사 섬김의 삶으로 ‘맑은 물에 큰 고기들이 잘도 산다’는 역사적 역설을 보여줄 교회나 교파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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