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신학대학원의 정원에 대한 논의는 1997년에 천안시대로 들어서면서 총회 신학부 주관으로 공청회를 가진 바 있다. 그 후에도 공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가끔 거론되었던 적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기에 왔다고 생각하며 이를 제안한다. 이런 논의가 필요한 목적과 이유가 많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만 밝힌다.

목회자의 수급 조절을 위해서다.

한국교회의 목회자 배출이 터무니없이 많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인정하는 바다. 신학교 수가 무려 400여 곳이 된다는 - 장로교만 해도 200여 곳 - 비공식 통계가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여기서 배출되는 졸업생이 한 해에 무려 일만 명에 가깝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제대로 된 사역처가 없는 무임목사가 교단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고, 이들은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서울 시내에만 해도 대리운전기사로 취업하고 있는 목사가 수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해에 120여명의 목사후보생들이 배출되고 있고 무임목사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벌써 12년 전에 나온 통계에서 사실상의 무임목사가 300명이 넘는다고 했었다. 요즘은 담임목사 청빙광고가 나면 지원자(?)가 수십 명이 넘는다. 예를 들어 경상도 지역의 어느 미자립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했을 때는 80여명이 이력서를 보내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학년 120명 정원을 고집하며 대책 없이 목사후보생을 배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목회자의 저질화를 막기 위해서다.

400여 신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목사후보생들 중에는 교회지도자로서는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지적 능력은 물론 신앙과 인격에서 일반 교인들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차치하고서라도 교회가 교회다움 자체를 유지하기도 불가능하다. 중세기의 로마교의 타락은 성직자들로 말미암았는데 그 수가 많아지고 자격과 질이 떨어지면서 시작되었었다.

한국교회의 타락의 원인은 교파분열과 이로 말미암은 신학교의 난립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개혁도 바로 무자격 신학교들을 정리하고 목사후보생들을 제대로 선발하고 양성하는데 있다. 어떤 이들은 목사를 많이 길러놓으면 우선 전도가 많이 될 것이고, 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면 그 땐 목사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소위 세일즈맨들을 양성하는 다단계판매회사 운영자의 사고방식과 같은 생각이다. 영적인 지도자는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에 있다.

사무엘 한 사람이 이스라엘 전체를 갱신시켰다. 이런 면에서는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훨씬 잘해왔다. 그들은 신학생을 선발할 때 정원과 관계없이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들만 뽑는다고 한다. 그들은 지금도 교인들에 비해 성직자 수가 턱 없이 모자라지만 그러면서도 이 부분에서는 양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질 높은 목회자 배출은 교회의 진정한 부흥과 갱신을 위해 필수적인 과업이다. 이 일에 우리 고신이 앞장 서야 한다.

위 주장의 반론에 대한 반론

위의 주장들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반론의 첫째는 통일론이다. 한국교회는 통일을 위해 목사들을 많이 길러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십 수 년 전 공청회에서 일부 패널들이 고려신학대학원의 정원감축을 주장했을 때 가장 강하게 나온 반론이었다. 우리는 통일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더 자질을 제대로 갖춘 목회자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 후 북한교회까지 오염시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무인가 신학교들에서 무자격 목사후보생을 많이 배출해내고 있는데, 이에 맞서 규모 있는 신학교들에서 가능한 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거듭 말하지만 영적인 지도자의 사역은 그 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질에 달려있다. 군대도 그렇다.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미디안의 10만 대군을 잘 훈련된 300명의 기드온 용사들이 물리치지 않았던가.

셋째는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반론은 “정원을 축소하면 신학교운영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라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무서운 세속주의의 현장이다. 하나님의 일을 재정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비극이다. 교회가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을 하면서 재정문제 때문에 기준미달의 후보생들을 뽑아야 한단 말인가?

몇 해 전에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입생을 선발하며 과락을 적용하여 정원보다 10여명 적은 숫자의 신입생을 뽑았던 적이 있다. 그 때 일부 목사들의 입에서 나온 비난은 시장바닥에서나 나옴직한 말이었다. “신학교 교수들이 배가 불러 터져서 저런 짓을 한다. 신학교 지원금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순교신앙을 찾고 고신정신을 계승한다는 주장들이 얼마나 위선적인 말이 되고 말겠는가?

우리는 고신교회가 고려신학대학원을 고신대학교에서 독립시키는 큰 구조조정과 함께, 정원을 줄이고 목사후보생들을 정예화 하는 내적 구조조정을 이루어서 아무나 목사가 되는 한국교회의 병폐를 치유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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