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안교육칼럼 6>

부모의 권위를 되찾으십시오



‘제가 집을 나가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오래전 교회에서 한 아버님이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자식으로 인해 고통하며 하신 말씀입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자식이 도무지 듣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달래보기도 하고, 용돈으로 구슬려보기도 하고,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때려보기도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요지부동인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가정에 꼭 있어야할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서 권위가 세워져 있지 않으므로 자녀가 아버지의 훈계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만일 우리 사회에 권위가 다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통령이 권위가 없고, 검사나 경찰서장이 권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사회는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질서와 평화는 권위체계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권위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권위에 대하여 이유를 알 수 없는 반감이 우리 사회에 발견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가정에도 영향을 미쳐 ‘권위 있는 부모’는 구시대의 유행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주지않든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것으로 스스로 내던져버려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위는 항상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권위에 대한 본을 잘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으셨습니다. 그 권위를 가지고 하신 일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요 17:2). 즉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이지요. 이 말씀을 정리해보면 권위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위는 섬기는 권위이고, 섬기지 않는 권위는 타락한 권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셨지만 그것은 자녀를 섬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부모의 권위가 섬기는 것으로 온전히 발휘되지 않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부모와 비교해서 상대적인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자녀에게 부모는 언제든지 무시무시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권위를 가진 자에게 섬김을 요구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모는 자녀를 가르칠 때 자신을 죽이기까지 섬기셨던 예수님의 심정으로 권위를 올바르게 발휘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권위에 의존적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가르치면서 종종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도 잘 못하면서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자괴감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부모 역시 죄인인 까닭에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부모를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말로 부모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럴찌라도 부모로서 그 권위가 위축되거나 약화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피하려면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에 연약한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이지 않으면 자녀를 권위 있게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께 의존적이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긴밀해질 때 힘 있게 발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깊은 영적인 채움이 없이 자녀를 다스리니까 죄도 생각나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잘못을 눈감아주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비록 자녀와 마찬가지로 죄인이기는 하지만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받는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용서받아야할 죄인’을 책임 있게 다루어야 부모에게 권위를 부여하신 하나님 앞에서 직무유기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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