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의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하나둘씩 마감되고 그 평가를 논하는 모임이 여기 저기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또 한편의 역사가 정리되는 느낌을 갖는다. 이와 연관해 지난해 4월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소속노회였던 예장 통합의 평양노회가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 결의와 주기철 목사 순교와 관련된 참회예배를 드리고 죄책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는 주기철 목사의 전기를 출판했다.

이 일을 맡은 부서 책임자였던 필자는 출판 기념예배를 마친 후 한 교회사학도의 질문을 받고 적잖게 놀랐었다. 그의 질문은 '왜 평양노회의 참회고백이 전국 교회의 참회고백으로 이어지지 않는가'와 '그 이유가 평양노회의 참회의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지금도 내게 큰 짐으로 남아 있다.

우리 모두 당시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또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사람은 그 범죄와 관련해 자신이 죄인임을 절실히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애통하는 대신 친일행각을 한 이들에게 비난과 정죄의 심판을 내리면서 자신은 마치 의인이라도 된 착각에 빠져들고, 회개의 모임에 속한 것으로 자신의 신앙이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에 그치게 된다.

사실 이 문제는 신사참배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 일제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하는 종교 국가로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정교갈등이기보다는 교교갈등의 양상을 보이던 상황에서 숭배의 대상이 다른 두 종교신앙 체계는 공존이 불가능했고 이에 굴복한 한국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 본질에 치명상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후 전개된 교회의 친일 행각은 1937년에서 1939년까지 무운장구기도회를 9053회나 실시하고 교회가 모금한 국방헌금만 150만원이 넘는다는 통계로 여실히 드러난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우리 역사의 부끄러움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허물로 인식해 회개함이 보다 진실하고 책임있는 자세가 아닐까? 옛일이니까 우리의 죄와 허물이 아니라고 강변한다면 이 죄짐은 영원히 벗겨질 수가 없고 우리는 속죄의 감격과 기쁨을 말할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지독한 무책임으로 도덕적 권위를 승계하지 못하는 교회가 될 수도 있다.

1907년을 기념하는 100주년 행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도 도무지 회개의 기운이 일지 않는 우리 한국 교회를 보면서 하도 가슴이 답답해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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