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은 통치자가 아니다.

계급화 되고 있는 교회 직분

교회직분이 세속적인 영광이 되고 권세가 되는 일들은 교회역사에서 자주 있었던 일들이었다. 교회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섬기라고 주신 직분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영광스럽고 권세 있는 직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영광과 권세는 세상이 말하는 그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인간의 부패성은 어디서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개를 쳐들고 일어났다.

따라서 종의 섬김으로써 얻게 되는 영광과 권세는 쉽게 세속화되어져 왔다. 로마교의 교황 중에는 스스로를 종의 종이라고 칭한 사람도 있지만 말과는 달리 로마제국의 황제들보다 더 큰 권력과 영광을 누렸었다. 한국교회에서도 주의 종이라는 말이 주의 종님이라고 칭하여지던 때가 있었다. 이런 현상은 드러나는 형태는 달라도 언제나 계속돼왔고 교회가 타락하면서 급격히 심화되고 있다.

그러면서 장로교까지 점점 천주교를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들이 나온 지도 오래 되었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그리스도 외에는 교회의 수장을 인정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인식이나 믿음이 아주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경외하는 신앙이 약화되면서 교회직분이 계급화 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장로교의 최고 치리회인 총회의 의장자리는 점점 교단장으로 변해왔다.

총회장 직분의 왜곡

이런 잘못된 경향에 대해서 지적도 많았고 비판도 있었으나 아랑곳없이 총회장의 직책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교회 수장의 자리로 바뀌고 있다. 총회장의 본래 이름은 총회의장이다. 총회가 개회 중일 때 총회회의를 이끄는 사회자이다. 그리고 총회가 파회되면 총회장의 자리도 없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총회이후의 일들은 총회의 위임을 받은 상비부가 담당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무시되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회가 분열되어 많은 교파들이 생긴데다가 사무행정적인 일들도 많아지면서 총회장의 자리가 상설 직처럼 돼버렸다. 곧 총회가 파회된 후에도 총회장은 그 직책을 유지하면서 대외적으로 총회를 대표할 뿐 아니라 총회의 모든 일들을 관할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개혁교회의 전통을 벗어나 세속적인 정치제도를 닮아온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하면서도 법으로는 옛 전통을 그런대로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신교회가 앞장서서 헌법까지 개정하여 총회장의 지위를 상설 직으로 제도화하였다. 2011년에 개정된 고신 헌법 정치조례 제148조에 총회장은 총회를 대표하고 총회업무와 산하기관을 총괄한다.”라는 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이는 총회장을 명실 공히 교단 교회의 수장으로 만든 조항이다. 이 일은 장로교의 정치제도를 수정하는 중요한 헌법 개정이었으나 대부분 알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별 관심 없이 받아들인 조항이다.

일반 단체들의 회장에 대한 인식이 상식화되어 있어서 총회장도 같은 것으로 생각해버린 결과였다. 이는 교권주의가 제도화된 헌법 개정이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다른 장로교의 교단헌법에서는 아직 148조 같은 조항을 찾지 못했다(우리가 모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고신교회의 총회장들보다 더 권위주의적인 총회장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아직 법으로 이를 제도화하지는 않은 것이다.

총회장은 통치자가 아니다

총회장은 결코 총회산하의 기관들을 총괄하는 자리가 아니다. 총회가 파회되면 총회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찌 총회장이 있을 수 있겠으며 그가 총회 산하기관들을 총괄한다는 말인가? 총회는 치리회이지만 당회나 노회와는 다르다. 당회나 노회는 상설 치리회이지만 총회는 기간과 장소를 정해서 모이고 폐회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임시회와 같은 성격의 치리회다. 그래서 총회를 끝마치는 것은 통용하는 폐회라는 말과 구별해서 파회라고 칭한다.

파회 후 계속 되는 일들(총회가 위임한 일)은 총회 상비부가 맡아 처리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상비부는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당회와 같은 지위와 역할이다. 아는 바대로 장로교는 당회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의제도다. 그리고 노회는 연합당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장로교에서는 총회 산하의 기관들도 독립적으로 사역하도록 돼있다. 전체주의적인 조직이나 성직자계급에 따른 제도가 아니라 철저히 민주적인 제도를 따라 운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회장이 산하기관을 총괄한다는 것은 장로교제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사무행정이나 재산관리 등 총회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사무행정을 위해서는 사무국이 필요하고 재산관리를 위해서는 유지재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무국을 지휘해야 할 사람은 총회 서기다. 서기가 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으므로 요즘은 대부분 사무총장을 두고 있다.

따라서 사무총장은 총회서기를 보좌하는 직책이다. 지금처럼 총회장을 보좌하는 직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고신의 경우 편의상 총회장이 유지재단 이사장을 맡도록 하고 있지만 총회장으로서 유지재단을 관할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재단 이사장의 자격으로 교단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총회장과 유지재단 이사장은 다른 직책이다. 유지재단 이사회도 총회가 위임한 일을 맡은 하나의 상비부인 것이다.

세속적 권위주의는 교회를 타락시키는 주범이다

우리가 총회장의 지위문제를 논하는 것은 세속적 권위주의로 인한 교회의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교회에서 세상적인 영광과 권세를 추구하게 되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찬탈하는 두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고신에서도 교권이 서서히 강화되어 왔고, 총회장 자리는 영광스럽고 권세 있는 자리로 바뀌어왔다. 역대 총회장들 중에는 권위주의적인 행세를 해온 사람들도 없지 않다.

수년 전에는 모 총회장이 산하기관 방문이라는 제목으로 통치자들의 초도순시흉내를 내는 것 같은 행사를 만들었다. 임원들을 대동하고 기관들을 방문하여 기관장들로부터 현황보고도 받고 소위 지침도 주었다. 이제는 그것이 총회장들의 연례행사로 정착이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점점 더 상당한 권력자로서 산하기관들을 감독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총회장이 명실 공히 총회를 대표하고 산하기관들을 관할하는 일을 당당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앞으로 총회장들은 뭔가 좀 더 권위적인 일들을 개발(?)해 나갈 것이고, 자신이 총회장일 때 뭔가 역사적으로 남을만한 치적을 쌓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갈수록 총회장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들은 점점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고, 세상 정치 이상으로 영광과 권세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한국교회 안에서 횡행하고 있는 금권선거가 고신에서도 횡행할 날이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섬기는 자로서의 그 본질을 알고 그 본질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체 권위주의적인 자세를 버리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할 것이다. 특히 총회장이 되면 제도적 권위가 아니라 영적 지도자로서의 진정한 권위로 신자들의 존경을 받고 본이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자격 없는 사람이 법과 제도가 주는 권위를 가지고 나서는 것만큼 그 공동체에 불행한 일은 없다. 공동체의 성원들은 그야말로 조직의 쓴 맛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목사와 장로들은 장로교 정치제도와 근본원리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젊은 지도자들이 교회정치에 무관심해지면서 근본원리들까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성경적인 원리를 모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부패성을 따라 행하게 돼있고, 시세를 따라 행하기 마련이다. 한편 우리는 신학교 교수들에게 요청한다. 고신헌법 교회정치 제148조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가 어떠한지? 더 나아가 장로교 정치제도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와 교훈을 신학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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