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주 목사(주님의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36년 일제치하에서 대한민국과 국민이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끔찍한 고통을 겪었기에 그 상처가 지금도 곳곳에 깊이 박혀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인권을 유린한 일본군 ‘위안부’는 감히 상상도 안 되는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범죄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생존하고 있는 피해자가 46명 남은 상태에서 이제 곧 그 생존자마저도 이 세상에서 없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한일협정이 맺어졌다. 이번 한일협정에 일본이 사과의 문구를 넣었다는 데는 고무적이지만 너무 빨리 타결되고 뒷말도 많아 혼란스럽다.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는 이 협정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일본군 ‘위안부’는 1990년대 초반에는 정신대로 불렸으나 정신대란 말은 근로정신대란 말과 비슷해서 마치 노동력에 동원된 느낌을 주기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한 때는 종군 위안부로 불렸으나 이 말도 자발적으로 군에 지원한 느낌을 주기에 거부한다. 국제적으로는 일본군 성노예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생존하고 계신 일본군 ‘위안부’ 당사자들에게 큰 아픔이 될 수 있기에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명칭이 갑작스럽게 바뀌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혼란을 줄 수 있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말도 사실은 일본군에게 위안 즉 평안과 위로를 주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지만 작은따옴표로 구별 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끔찍한 역사적 사실을 현재 세대의 상당수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치하를 경험한 세대나 그들의 만행을 교육받은 세대가 점점 없어지고 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심지어 일본정부는 극우파가 득세하며 역사의 만행지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버젓이 행한 사실도 부정하고 이미 사과한 일이라고 하며 오히려 그런 기록이 없다고 우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11월 2일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갑작스럽게 열린 정상회담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자주 망언을 일삼았기에 만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면서도 국제 정세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이제 그만 만나야 만나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었다. 그런데 정상회담 후 합의문 발표는 너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느낌이 든다. 사실 합의문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양국의 실무자들이 1년 8개월간 꾸준히 만나 조율해 왔었다. 최종 결정을 앞두고 정상이 만났고 그 만남에서 큰 테두리가 결정되었으며 그 후 실무자들이 세세하게 조율하며 합의문에 도달했다. 합의문 내용은 이렇다.

한일외교장관 기자회견 발표문

일본

1.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의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2.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이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정부가 전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적으로 내고, 일 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한다.

3. 일본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2)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또한,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

대한민국

1.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1,2)에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한다.

2.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한다.

3. 한국정부는 이번에 일본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을 자제한다.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1997년 별세)의 기자회견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24년 만에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한일 양국의 정부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에 대해 마주 앉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히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협상이 타결된 직후 "일본의 잘못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위안부 문제 해결)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진전된 합의를 환영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일본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명문화(일본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는 것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배상을 현실화한 대목도 고무적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도 이해할 만하다. 3년간 대립과 긴장 외교를 펼쳤지만 일본은 반성은커녕 더욱 강경하게 나오고 일본의 보수 우익은 점점 더 세력을 얻으며 일본 내에 혐한 시위는 더욱 과격해지고 있었기에 고심이 컸을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의 큰 틀에서 일본과 협력해야 하며 미국도 그러기를 바라기에 정부가 겪는 고충도 만만치 않았을 것임을 이해한다. 계속되는 일본 보수 우익의 결집은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여러모로 힘든 점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46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령화와 그들에게 실효성 있는 보상을 하루 속히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의 태도로 보건대 보상과 사과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를 미루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에 비해 아쉬움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먼저 피해자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합의를 이루어낸 것이다. 급작스러운 정상회담과 그 ‘결과물’이라도 피해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충분히 설득해야 했었다. 무려 1년 8개월간 끌어온 협상이라면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묻고 동의를 받아 진행하면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사과 태도는 가장 큰 문제를 낳고 있다. 아무리 자국의 우익세력에게 어필한다고 해도 피해자와 대한민국 국민들을 자극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합의문 발표 후에도 들리는 여러 가지 망언에 가까운 소리는 합의문을 이행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녀상 철거만을 강조하고 있는 태도도 진정한 사과로 보기 어렵다. 일본 내에서도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하기에 정치인으로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들을수록 기분 나쁜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보상이 아니라 배상을 해야 한다. 도의적으로 미안하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해야 한다. 이건 일방적이다. 소녀상이 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겠느냐. 너희는 죄가 있으니까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건방지게 저희들이 치워라, 마라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너무 속상하다. 나는 밤에 끌려가 대만 신주부대로 갔다. 나는 위안부가 아니라 이용수고 일본이 끌고 가 위안부로 만들었다. 어디다가 또 손을 대냐. 이는 두 번 세 번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합의문은 국제사회를 배제한 협정이니 앞으로 국제사회 공조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한다. 일본군 ‘위안부’는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중국,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심지어 네덜란드 여성도 포함되어 있다. 국제사회의 공조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대한민국이 빠지면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때에 그 힘을 빼는 꼴이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용서해야 하지만 회개 없는 용서를 해도 되는가? 레위기 18장에서 말하는 가증한 일을 행한 이방인으로 그들을 대하고 진멸해야 하는가? 아니면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셨으니 당하고 참고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가? 진정한 사랑은 예수님을 알게 해주어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여 참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인데 일본의 태도를 보면 그런 마음이 사라지니 참으로 혼란스럽다. 이 시대의 요나를 보내어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니느웨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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