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박사(편집장, 설교학 Ph.D)

요즈음 교인들의 점집 출입 문제가 심상치 않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믿음이 없는 몇몇 교인들이 연초에 신년운세 보러 점집에 들리는 정도인줄 알았다그런데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그 정도가 심각하다.

작년 1월 20일자로 발행된 LA중앙일보 미주판 6면 기획 기사 신년운세 점집 두드리는 한인들이라는 장열 기자의 기사에 의하면점치는 손님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절대 다수라고 한다장 기자는 LA 지역에서 철학원을 운영하는 지윤 원장의 말을 인용해서 "손님 중 약 80%가 기독교인이며 특히 웹사이트엔 젊은 층 고객이 다수"있다고 보도했다또한 "경제적 어려움과 청빙 문제 등으로 철학원을 찾는 선교사와 목사도 있다"고 보도했다.

점 보러 오는 손님의 80%가 기독교인이고 그 중에 목사와 선교사도 있다는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이민교회와 이민목회의 특수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작년 12월 25일 미국에 있는 인터넷 언론 크리스찬투데이는 LA 한인 타운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무속인의 집을 직접 찾아가서 취재한 황인상 기자의 점보는 크리스천이라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황 기자가 사실 기독교인이라 이렇게 찾아오기가 마음에 부담이 컸다라고 말을 건네니무속인은 여기 찾아오는 이들 99%가 아마 기독교인일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80%가 아니라 99%가 기독교인이라는 대답은 더 충격적이다그 무속인은 아주 친한 목사님이 있는데그 분은 심지어 선교지를 나갈 때에도 어디가 좋을지 찾아와 묻기도 합니다이곳을 찾는 대부분 목사님들은 특히 가정을 꾸리시기 때문에 특별히 물질과 관련해 조언을 듣길 바라죠!”라고 기자에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이런 충격적인 현상이 LA지역의 한인교회에만 국한 된 문제일까얼마 전에 필자는 이에 관한 한국교회의 소식을 들었다어느 사모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고 한다고등학교 동창 중에 부천 모 교회 집사가 있는데 그 집사는 미아리의 어느 점집에 정기적으로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었다그 집사가 최근에 점을 못 봐서 일이 잘 안 풀린다며 동창회에 나온 친한 친구에게 미아리 점집에 좀 가봐야겠다고 했단다그때 그 동창 친구가 미아리에서 용하다는 점쟁이가 부천에 새로 점집을 냈으니 미아리 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하며 이사 온 점집에 가보자고 부추겼다그런데 이사 온 그 점쟁이가 용해서 예약을 해야 만날 수 있으니 생각 난 김에 전화를 해 보자며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예약을 하는 과정에 그 용한 점쟁이왈 금요일 저녁은 예약이 불가합니다.” “왜요금요일에 예약이 꽉 찾나요?” “아니요 금요일 밤에는 금요기도회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동창들의 이야기를 듣던 사모는 어이가 없어서 그저 웃기만 했다고 한다.

필자는 주변의 청년들에게 요즈음 점집 다니는 친구들 있냐고 물어 보았다청년들은 이구동성으로 요즈음 청년들은 점보는 것이 일종의 문화생활 이예요!” “교회 다니는 애들도 심심해서재미로인생 컨설팅 받는 다는 생각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사주카페나 인터넷 점집 등에 다녀요!” 과연 교인들이 점집에 출입 하는 일을 심심해서 재미로 그저 인생 컨설팅 받는 일로 치부 할 수 있을까이런 충격 적인 소식을 들을 때 성경의 한 장면이 떠 올랐다.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집결했을 때 사울 왕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던 장면이다그 때 사울은 이런 말을 했다.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사무엘상28:15). 사울은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고 자신은 다급해서 신접한 여인을 찾았노라고 변명한다.

그런데 사울의 상황과 거의 같은 때에 다윗에게도 다급한 상황이 닥친다성경은 다급하여” 라는 똑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 사울 왕과 다윗의 처지를 대비 시킨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사무엘상 30:6).

다윗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모였던 블레셋 군대 측에 있었다사울의 칼을 피해서 블레셋 지역으로 도망쳐 나왔던 다윗은 블레셋 왕과의 관계 때문에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서 블레셋 군대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난처한 상황을 만난다다행히 블레셋의 장관들이 예전의 적이었던 다윗과 함께 전쟁에 나갈 수 없다고 블레셋 왕에게 항의함으로 다윗과 그의 부대는 자신들의 거처인 시글락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그런데 시글락에 도착한 다윗과 그의 부대는 처참한 현실에 부딪친다다윗과 그의 부대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위해서 시글락을 비우고 떠났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처서 불사르고 여인과 아이들을 모두 잡아 가버린 것이다.

이스라엘과 전쟁하러 나갈 때부터 알아봤어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 왔다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또한 우리의 동족인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러 나간다고 할 때부터 이상했어!” “하나님이 다윗에게 진노 하신 거야 우리가 다윗 때문에 벌을 받은 거야!” 아마도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 이런 불평이 터져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아무튼 다윗의 충성스런 신복들이 다윗을 향해서 돌을 집어 들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 닥쳤다다윗의 상황이 사울보다 더 다급하면 다급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똑같은 다급한 상황에서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고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그리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울의 최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한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역대상10:14-15). 성경은 아주 구체적으로 신접한 자를 찾아간 사울의 죄를 꼬집어서 언급한다신접한 자를 찾아간 것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한 것이고하나님을 힘입지 않은 것이고또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나님을 힘입을 것인가 아니면 신접한 자를 찾아갈 것인가여기가 사울과 다윗의 인생을 갈라놓는 분수령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성도들의 인생도 녹녹치 못하다다급한 인생이다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가정적으로 다급한 삶을 살고 있다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상황에 의해서 꽁꽁 묶여 있는 삶을 살아간다그래서 사울처럼 신접한 여인이라도 찾아가서 답답하고 다급한 사정을 털어놓고 해결 받고 싶은 마음을 십분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힘입어 사는 사람이다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십자가의 보혈을 힘입고보혜사 성령을 힘입어서 사는 사람들이다하나님을 힘입어 살아가는 성도는 신접한 자를 찾아가지 않는다점집에 가지 않는 성도들은 생활 가운데 하나님을 힘입고 살아감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그 나라를 돌리신 그 결정적인 시간이 언제였을까아마도 똑 같은 다급한 상황에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고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었던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이 왜 사울의 전처를 따르고 있는가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주제이다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분명한 것은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해서 점집에 간다는 것이다사울 왕도 하나님이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으셔서 신접한 여인을 찾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사울은 하나님께 물었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그런데 성경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즉 사울이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누구 말이 맞는 말인가?

정확하게 말하면 사울이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은 대답하셨다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응답이 사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하나님은 일관되게 사울에게 말씀하셨다.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사무엘상28:17). 문제는 그 대답을 사울은 인정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자기가 왕인데 왕의 자리를 넘겨주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인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하나님이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하나님이 사울의 뜻에 맞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마음에 맞는 답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손으로 금지했던 신접한 자를 찾아 나선다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울의 궁극적 동기는 내가 왕이니 내 마음에 맞는 대답을 해 달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맞는 시원한 대답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것은 아닐까내가 왕인데 내 중심으로 이야기 해 주어야 하는데 왕의 자리를 내 놓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내 중심으로 내가 내 인생의 왕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한 하나님의 대답은 시원치 않을 것이다.

성경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만약에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 앞에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며 자신의 왕좌에서 내려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가 스스로 그의 왕관을 다윗에게 씌워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은총이 사울에게 임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급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새해에도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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