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생 시절에 [아우스비츠는 불타는가?]라는 책을 읽고 오랫동안 큰 혼란 속에 빠졌던 적이 있다. 첫 번째 혼란은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고 타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인간인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사람에 대한 나의 모든 기대와 희망을 송두리째 깨뜨려버렸다.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혼란이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극악무도한 일이 계속되는데도 침묵하고 계셨을까? 내가 만일 아우스비츠의 상황에 있었다면 과연 믿음을 끝까지 견지할 수 있었을까?’ 나의 믿음은 약해지고 회의와 혼란이 오랫동안 나를 감싸고 흔들어댔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더니 몇 달 지나고 나니까 충격의 여파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그런 책은 일부러 피했다. 그런 충격적인 내용들은 우선 내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쉰들러 리스트”란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우스비츠를 방문해서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 지옥보다 더 무섭고 잔인했던 아우스비츠, 그러나 그 낡은 막사들은 너무 조용했다. 사람을 수 없이 태워 없앴던 불가마 옆에서는 어느 영화사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다.
벽 앞에 줄줄이 세워놓고 총살을 했다던 소위 “사형장”은 따로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붐비며 오가는 막사들 사이 바로 거기 있었다. 산 사람들은, 뇌수가 터져 나오고 피가 튀면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사람들을 목매죽인 자리도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철봉처럼, 혹은 빨래를 널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대들처럼, 산 사람들이 줄지어 다니는 길옆에 역시 줄지어 서 있었다. 산 사람들은 거기서도 물론 매달려 죽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막사 안에 들어가니 몇몇 방들에는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서 빼앗을 소지품들이 쌓여 있었다. 손가방, 빗, 거울 등. 어느 방에 들어가니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잔뜩 쌓여있었다.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카펫들과 몇 가지 의류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색깔은 가지가지였다. 남녀 구별 없이 삭발기로 머리를 깎아버리고 줄무뉘 수의를 입히는 광경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구토가 나서 나는 급히 밖으로 나와야 했다. 정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광경들이었다.

신학교 시절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지옥 같은 곳을 만드셨을까?”라는 질문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아우스비츠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실 필요가 없겠다. 지옥에 간 사람들이 스스로 다 만들테니까?’라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에 나는 새터민(탈북자)들이 증언한 [아! 요덕]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우스비츠는 불타는가?]라는 책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아우스비츠와 같은 지옥이 이 대낮같은 21세기 문명 시대에, 그것도 바로 우리 강산 안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의 마음은 지금도 견딜 수가 없다.

내가 몇 해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자랑하는 곳들만 돌아보고서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기가 힘들었다. 동행이 분위기를 살리려고 농담을 하는 것까지도 짜증이 났다. 나에게 군대가 있다면 모두 데리고 올라와 하루라도 빨리 인민들을 구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솟구쳐 올랐다. 나도 전쟁광인가?
새터민들이 요덕에 있을 때 “우리는 죽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미 지옥에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한다. 아! 요덕수용소, 그 지옥이 언제 열리고 죽어가는 동포들이 한 두 사람이라도 더 살아날 수 있을까? 저들을 돈으로라도 사올 수 있다면 나도 쉰들러처럼 리스트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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