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기독교의 문턱에 서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인생 6학년에 올라선 나와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이다. 그는 그 나이가 되도록 교감 자리도 승진하지 못해 평교사로 있다. 승진 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듯싶다. 젊은 시절 들꽃 사진에 미쳐 필름 카메라 들고 산과 들을 헤매느라 승진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매주 20만원씩이나 드는 비용을 월급으로 충당하다보니 가족에게까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렇게 들꽃을 담아 정리하여 2003년에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는데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지금은 그가 그렇게 모은 들꽃 및 생태사진이 무려 3만점이나 된다. 그 자신은 자신의 별호를 '들풀'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를 '들풀 박사'라고 부른다. 그가 한국의 야생화 이름표 도록만 만든 것이 1300여종이나 되고 그래서 아무 곳에서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야생화도 척척 이름을 대며 그 생태를 이야기 해 준다. 그는 학기 중에는 오히려 시간을 낼 수 있지만 방학이 되면 너무 바쁘다. 전국에서 특강을 해 달라고 해 스케줄이 꽉 차버려서 다음 방학으로 다시 그 다음 방학으로 미루기까지 하기도 한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오직 한 길을 달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교감보다도 교장보다도 평교사가 좋다고 한다. 실제로 그만큼 인기 있게 달리는 사람도 드물다. 그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크리스천과도 함께 잘 어울리는데 출사 후에 저녁을 함께 먹을라치면 그는 꼭 소주 한 병을 청한다. 그리고 잔을 채워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을 미리 알고 왼손에 잔을 잡고 오른 손에 술병을 들고는 “이 선생 한 잔 받으시오”한다. 처음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아무도 이씨 성을 가진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이내 오른 손에 잔을 잡고 왼손으로 술을 따르면서 “들풀 선생 한 잔 받으시오” 하면서 혼자 ‘이 선생, 들풀 선생’ 부르면서 혼자서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러는 그를 보며 우리는 박장대소한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쯤이면 한 병을 다 마신다. 그러면 마치 기분이 딱 좋아지나 보다. 흥겨운 콧소리가 넘쳐나면서 카메라를 들고 작별 인사를 한다. 그러던 술도 속탈이 나서 이제는 끊었다는 후문이다.
우리는 일 년에 두세 차례 정도만 얼굴로 만나지만 사진을 포스팅 하는 사이트에서는 매일 만난다. 그는 한 결 같이 아침 일찍 들어와 ‘좋은 아침 여십시오. 샬롬!’ 그렇게 인사를 던지고 나간다. 샬롬이라는 인사법을 내게서 배운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교회의 문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는 몇 번 나를 따라 교회에도 가곤 했으니 거부감은 없어 보인다. 그는 나에게 훌륭한 전도대상자이다.


외길을 걸어온 사람. 오직 들풀을 고집한 사람. 사진에 미처 집안에서 조차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산 사람. 그가 마지막에 빛나고 있다. 현대의 세상은 모두를 다 잘해야만 살아가는 시대는 아니다. 무엇이든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 아니 한 직종에서도 잘 할 수 있는 것만 잘해도 된다는 것이다. 전문성이 잘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한데 어울려 하모니를 이루면 그 사회는 정말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를 친구로 둔 나에게는 영원한 행복을 찾아주는 일이 숙제로 남아있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기독교에 귀의한 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혼자 바들바들 하며 살아온 내가 너무 불쌍했다”고 하면서 세례 후 가장 크게 바뀐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예로 들며 "세례받기 전까지 나는 토끼 인생이었다. 나는 잘났고,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거북이다. 그동안 얼마나 잘못 살아왔고 얼마나 많은 것이 부족했었는지…. 인간의 오만을 버리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가장 큰 변화다"고 말했는데 들풀 박사 역시 그런 후회를 하지 않도록 그의 손을 힘껏 잡아주어 진정한 행복을 나누어 주는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아직 내가 가진 진짜 행복을 알지 못해 교회 문밖에 서 있지만 그의 손을 붙들고 있는 것은 그래도 친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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